시집 『 게헨나』 펴낸 안민 시인

사진 / 최한나
사진 / 최한나

 

어제

-하나의 절망이 가고 하나의 절망이 흘러오던

 

 

잠들지 못한 어둠마다

폭우가 쏟아졌다

비는 포말이 되어 끓었고

그러한 어둠 저편,

사자(死者)가 버린 눈알 속에서

내 어린 날,

눈물 흘러가는 게 보였다

말보다 울음을 먼저 배웠던 게

금번 생에서의 가장 큰 실패,

한 번 흐느낄 적마다

누군가의 손에 끌려

먼 대륙의 우기에 다시 또 다녀와야 했다

띄워 보낸 종이배 행방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 안민 시집 『게헨나』(한국문연 2018)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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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쉼 없이 흐르고 흐른다. 개개인의 역사든 사회나 국가의 역사든 오늘을 지나 매 순간의 어제를 쌓아나간다. 그 어제들이 한 권의 삶이요 인생이 된다. 이 여정 속에서 기록된 모든 기억 혹은 추억들, 그 중에서도 환희보다 얼룩진 상흔을 남긴 절망과 고통, 무의식중에서도 지독한 통증으로 남아 현재 진행형으로 함께 호흡하는 아픔을 읽는다. 꿈이 순수하고 클수록 절망도 비례하는 것, ‘말보다 울음을 먼저 배웠던‘ 화자의 아픔을 가만히 응시하듯 공감해본다. 누구나 종이배 하나 띄워 보내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종이배로 환치되는 그 꿈을 안타깝게도 포기하거나 잃어버려야 했던 절망의 온도차는 각기 다를 것이다. 왜냐하면 저마다 자라온 토양과 환경 그리고 현재의 위치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감사하게도 우리 인간에게는 과거를 소환하여 거울인 듯 비춰보며 미래를 바라보는 능력이 있다. ’하나의 절망이 가고 하나의 절망이 흘러오던‘ 어제를 이처럼 시로 승화시킨 안민 시인의 폐부를 찌르는 시심처럼 말이다. 아직도 나는 이루지 못한 꿈들과 말 못할 트라우마에 쫓기며 폭우 쏟아지는 어둠 속에 흐느끼는 또 다른 나를 본다. 시인의 시집을 감상하다가 어쩌면 나의 심상을 보는 듯 섬찟했던 이 시의 매력에 한 동안 잠겨 있었다.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어제를 돌아보게 하여 먼 대륙의 우기에도 다녀오게도 하는, 참 이런 맛도 시의 맛이구나 싶다.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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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민 시인 /

본명 안병호

경남 김해 출생

2010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

2018년 부산문화재단 지역문화특성화지원 사업 수혜

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

현재 부산작가회의 회원 

시집  / 『 게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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