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과정비를 유치원에 쥐어줬기 때문 비리 유발 요인이 있어서 그랬다, 회계 감사를 피하려고 소송전까지 할 정도, 일부의 이야기인데 왜 집단적으로 움직이나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사립 유치원의 비리에 대해서는 어정쩡한 사과를 했지만 그 배경에 제도적 허점이 자리잡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립 유치원들의 연합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15일 오후 수원 경기경제과학진흥원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유를 막론하고 학부모들에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최근 사태와 관련 “회계·감사기준이 사립 유치원에 맞지 않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책임을 돌렸다.

이덕선 위원장은 사실상 코너로 몰린 상황에서 면피성 사과만 하고 뒤에서는 유치원의 사익 수호만 고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한유총은 현재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인데 이덕선 비대위원장(한국유아정책포럼 회장)은 “이번 일을 계기로 깊이 반성하고 유아 교육을 한 단계 발전시키겠다”고 전제를 내세웠지만 제도 탓으로 넘어갔다.

이 위원장은 “십 여년간 사립 유치원 운영에 맞지 않는 사학기관 재무회계규칙을 개정해달라고 정부와 정치권에 수차례 건의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사립 유치원에 맞지 않은 회계·감사기준에 의해 비리라는 오명을 썼다”고 주장했다. 

사립 유치원은 △교사 처우 개선비 △교재교구 구매비 △급식비 △누리과정비를 국가로부터 지원받지만 이 위원장은 “누리과정비를 학부모에게 직접 지원하도록 교육부에 여러 차례 요청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현행법에 따라 학부모에게 직접 지원해달라”고 요구했다.

다 국비 지원이기 때문에 해당 목적에 부합하는 용도로만 쓰고 명확한 회계 처리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비리 유발 요인이 있었다고 비리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누리과정은 만 3~5세 유아에게 공통적으로 제공하는 보육 과정이고 각 가정에만 맡기지 말고 국가 책임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 시대정신이 됨에 따라 누리과정비가 지급되고 있다. 현재 전국 유치원생의 75%가 사립 유치원(4200곳 이상)에 다니기 때문에 여기에도 누리과정비가 지원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원장 쌈짓돈으로 사용된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한 발 물러선 한유총. (사진=연합뉴스 제공)

누리과정비를 학부모에게 직접 지급해주지 않고 유치원에게 맡기니 비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예컨대 경기도 화성 환희 유치원의 경우 2년 누리과정비 25억원을 지원받고 대략 7억원을 자기 멋대로 사용했다. 법률적으로 유치원은 비영리법인이고 인건비 외에 그 어떤 수익도 편취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명품가방, 노래방, 미용실, 백화점, 술집, 숙박업소, 성인용품점 등에서 결제된 내역이 있고 1000만원 넘는 월급을 받고 있는 원장이 한 달에 두 번 월급을 타가고 각종 수당을 만들어 돈방석에 앉았다. 자기 아들을 사무직으로 채용해 쌈짓돈을 쥐어주고 727명에게 1억 9000만원의 수업료를 면제해줬다고 회계 기록이 돼 있는데 타 계좌로 수업료를 따로 챙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가장 심각한 사립 유치원의 사례라고 할 수 있지만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의 2014년 이후 유치원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부정 행위가 적발된 유치원은 1146곳이고 이중 95%인 1085곳이 사립 유치원이다. 사립 유치원 4개 중 1개가 비리를 저질렀다는 것인데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많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5일 방송된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정말 엉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형사처벌 대상이 되고 고발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엄중한 문제가 있다. 그 다음에 유치원 원장들이 제대로 회계 관리도 안 받고 교육도 안 받아서 벌어지는 일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심각한 것을 알고 있었는지 한유총 소속 원장 300여명은 5일 오후 박용진 의원실 주최로 열린 국회 토론회(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정책 토론회)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원장들은 구호와 야유를 일삼았고 고함을 쳤다. 

한유총은 보도자료를 내고 “극히 일부의 확정되지 않은 혐의로 우리나라 유아 교육의 75%를 책임지고 있는 사립 유치원 전체를 부정부패 적폐 집단으로 매도한 박 의원과 경기도교육청 시민감사관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일부라면서. 일부면 자기들이 그 일부를 드러내고 추방하고 시정하고 보완해내고 이렇게 하면 얼마나 좋은가. 그걸 왜 와서 우산으로 막고 단상을 점거하는가. 오히려 같이 해야 한다. 아니 투명하게 쓰여져야 우리 어머니들이 그 다음에 우리 국민들이 유치원에 우리 아이들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해주자라고 나서지. 이렇게 줄줄 새는 바가지에 누가 물을 담으려고 하는가. 그러니까 오히려 나는 그분들이 이번 기회에 잘 됐다. 함께 투명한 유치원 운영, 투명한 교육기관 운영을 우리가 할 테니까 우리의 이익을 침범하지 말되 국고가 새는 일을 없도록 함께 노력하자. 이러면 된다”고 제언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토론회를 방해하고 있는 원장들. (사진=연합뉴스 제공)

흔히 모든 이익집단은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일부만 그런 것이라는 ‘일부론’을 들고 나오는데 윤성혜 한유총 언론홍보이사는 “법을 어긴 유치원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유치원이 비리를 저지른 것은 아니지 않느냐. 당당하게 우리 입장을 이야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과잉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면 박 의원의 말대로 일부가 아니고 다수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위원장은 “공립과 달리 사립은 원아 모집이 안 되거나 교사 급여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으면 모든 재정 부담을 원장이 져야 한다. 재무회계규칙에 공립과 차별화되는 내용이 반영되도록 교육부와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것이 비리를 정당화할 명분이 될 수는 없다. 박 의원의 제언대로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지원 확대를 요구할 수도 있다.

상황이 이 지경이니 실태 파악을 위한 감사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는데 한유총 비대위는 감사는 유치원 운영에 지장없는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심지어 박 의원의 비리 명단 공개를 두고 법적 조치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립학교법 4조 1항에 따르면 “유치원 및 이들에 준하는 각종 학교는 시도 교육감의 지도·감독을 받는다”고 명시돼 있다. 사립 유치원이 감사 대상이라는 것은 명확하다. 피감기관이 감사의 방식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헌법재판소의 2000년 판례, 일부 원장의 경기교육감에 제기한 직권남용 고소고발, 감사 자체를 문제시한 행정소송 등이 있었지만 모든 사법적 판단은 사립 유치원에 대한 공적 감독과 통제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박 의원은 “교육부가 2016년 이런 투명 회계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해서 예산 6억6000만원 정도가 배정됐다. 그런데 2017년에 (사립) 유치원이 휴원을 결의하고 집단행동에 나섰고 이것이 유야무야 되기 시작해서 돈 배정받은 것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돈을 쓰지 않아서 부동 처리됐다. 그래서 올해 원래 시범 실시를 하기로 했는데 벌써 10월인데 지금까지도 회계시스템이 도입되지 않았다”고 환기했다.

이 위원장은 이사들의 다수결에 따라 한유총의 비상체제를 이끌게 됐는데 2017년 집단 휴업을 주도해 회계시스템 도입을 무마한 강경 행동파로 분류된다. 한유총의 의사가 이번 사태를 통해 거듭나겠다는 것 보다는 어떻게든 사익 수호를 해보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박 의원이 전사처럼 맞서고 있는데 교육부와 전국 교육감들이 이번 기회로 제대로 된 감사 회계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박 의원이 전사처럼 맞서고 있는데 교육부와 전국 교육감들이 이번 기회로 제대로 된 감사 회계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16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충남의 한 유치원 원장은 학부모들에게 “좌파 국회의원 그리고 좌파 성향의 시민단체가 공모해 국감 기간 사립 유치원을 비리집단으로 모는 노이즈마케팅”이라는 편지를 보냈다.

이렇게 문제는 종교 집단에 버금가는 사익 결성체로서 유치원 집단의 실력 행사가 선출직 공무원에게 미치는 영향력이다. 

박 의원은 “내가 실핏줄이 터졌다. 여러 고민이 많다. 이 일이 터지고 나서도 압력이 오고 터지기 전에도 압력이 왔는데. 제일 걱정되는 것은 지금 막 모든 언론과 국민들이 박용진이 잘했다고 얘기하지만 시간이 좀 흘러가고 2020년 선거가 오면 (유치원) 원장들은 다 (보팅 파워의 행사 차원에서) 두고 봐야겠다”라고 할 수 있다면서 “여러 각오를 했는데 두렵고 약간 쫄았다. 삼성(의 문제점을 용기있게 지적)했을 때도 이렇게 쫄지는 않았다, 잊지 말고 좀 (이렇게 유치원 비리와 맞서는 나를) 지켜달라. 그리고 교육감들이 더 힘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문제시 된 유치원들이 '배째라' 차원의 폐원을 해버리는 경우 학부모들이 겪게 될 어려움도 걱정거리다. 어린이집(보건복지부 관리) →사립 유치원(교육부 관리) →국공립 유치원(교육부 관리) 순으로 입학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전학을 가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환희 유치원의 경우 이슈화 된 이후 학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원장이 폐원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사립 유치원의 파렴치함에 국가적 보육 시스템이 교란되고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