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법관들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영장에 적시, 방탄판사들 속 영장 발부 가능성이 좀 있는 판사 2명, 직권남용의 틈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검찰이 사법농단의 핵심 책임자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공식 지목했다.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한동훈 3차장검사)은 23일 저녁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임종헌 전 차장이 15일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했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임 전 차장은 2012년~2017년까지 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차장을 두루 거친 그야말로 사법농단의 A to Z이자 양 전 원장으로 가는 키맨이다. 양 전 원장과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연결고리 역할을 수행했고 후배 판사들에게 월권적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법관 사찰 문제에서도 사실상 총책을 맡았다.

임 전 차장은 30년 경력 판사 출신이기 때문에 직권남용죄가 적용될 때 직무 범위의 맹점을 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근거로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수사팀이 확보한 구체적인 증언·증거도 만만치 않다. 특히 “방탄 판사들”로 불리는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판사들의 연이은 영장 기각에 맞서기 위해 꽤 구체적인 혐의들을 완성시켜놨을 것으로 보인다. 

받고 있는 혐의들을 보면 △직권남용(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교감하면서 하위 심의관을 시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소송에 개입/법관 사찰 문건 작성하도록 지시) △비밀누설(사법부의 내부 자료를 청와대에 넘김) △허위공문서 작성·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상 국고손실(전국 법원의 공보관실 운영비를 양 전 원장 비자금으로 조성하기 위해 허위 증빙서류 청구) 등이 있다. △직무유기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도 있다.

핵심은 직권남용이다. 

하지만 법률적으로 직권남용은 당사자가 보유한 직무 권한이 있고 이를 통해 남용을 해야 성립한다. 이를테면 임 전 차장이 재판 개입 및 법관 사찰을 지시했다면 그게 행정처 차장으로서의 권한과 직결돼야 하는 것이다. 임 전 차장도 자기 권한이 아니라는 점을 어필하고 있다. 물론 법명이 직권남용이라 그렇지 직권으로 남용한 것과 직권이 아님에도 지시를 내리는 것의 비난가능성은 후자가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임 전 차장은 “부적절하고 비판받을 소지는 있지만 제기된 혐의들이 행정처 차장의 직무 범위에 있지 않기 때문에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며 항변하고 있다.

수사팀은 행정처 자체가 전국 법원에 대해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고 보고 임 전 차장의 직권남용 혐의는 입증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법농단 수사를 이끌고 있는 한동훈 3차장 검사. (사진=연합뉴스 제공)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6월1일 성남 자택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양 전 원장은 40년 넘게 법관 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수많은 의혹을 무작정 부인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수사팀은 영장에 사실상 직접 지시하고 보고받은 공범으로 양 전 대법원장을 적시했다. 임 전 차장은 사법농단 정국 초기에 유일하게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당한 꼬리자르기 취급을 받은 바 있다. 지난주 4차례의 검찰 소환조사에서 임 전 차장이 자기 책임을 피하기 위해 양 전 원장에 떠넘겼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수사팀은 구체적으로 △2015년 행정처가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한 판사들의 요구를 무마시킨 것 △진보 성향 판사들에 대한 사찰 등이 모두 양 전 원장의 지시에서 시작됐다고 보고있다. 더불어 임 전 차장의 직속 상관인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전 행정처장)도 양 전 원장과 같이 공범으로 영장에 적시됐다.

특히 박 전 대법관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의료진 박채윤씨의 특허소송 정보를 빼내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고, 고 전 대법관은 부산 법조비리 사건의 당사자인 건설업자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임 전 차장의 영장에 이 두 혐의도 적시됐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19일 국정감사에서 사법농단 관련 수사에 대해 “5부 능선은 넘어가지 않았나”라며 “행정처 근무 심의관 등 몇 년 사이에 근무했던 인물들은 대부분 왔다고 보면 된다. 한 80명 정도 왔던 것 같다”고 밝혔다. 

특히 윤 지검장은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의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수사없이 사건 종결을 상상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어려울 것 같다”고 밝혀 곧 소환이 임박했음을 암시했다. 

임 전 차장의 영장 발부 여부에 따라 양 전 원장의 소환 일정이 구체화 될 것인데 그 전에 차한성·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을 소환한 뒤 양 전 원장을 마지막에 부를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박범석·이언학·명재권·허경호 판사. (사진=연합뉴스 제공)

25일 구속영장실질심사가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데 방탄 판사들 중 그나마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한 적 있는 명재권 판사가 맡을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서울중앙지법에는 5명(박범석·이언학·허경호·명재권·임민성)의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있는데 이중 1명이 무작위 전산 배당에 따라 임 전 차장의 영장심사를 맡게 된다. 

평소 법원은 압수수색 영장 기각 결정을 거의 내리지 않음에도(지난 5년간 압수수색 영장 기각률 1% 수준) 이들은 사법농단 관련 압수수색 영장에 90%의 기각률을 보이고 있다. 

박 판사는 이미 수 차례 전현직 대법관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한 바 있고, 이 판사도 행정처 비자금 조성 관련 영장 등 여러 차례 사법농단 수사에 훼방을 놨다. 허 판사는 법원 자료를 맘대로 가져가서 증거인멸까지 자행한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A4 2장 분량의 사유서를 제시했다. 제식구 감싸기로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인데 한동훈 검사는 “기각을 위한 기각”이라고 반발했다.

그나마 검사 출신인 명 판사가 차한성·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과 양 전 원장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해 최초로 윗선에 대한 강제수사가 가능하도록 했는데, 차량에만 발부해주는 등 이해할 수 없는 대목도 있었다. 그럼에도 서울중앙지법의 방탄적 분위기를 깨는 의미가 있어 명 판사가 맡게 된다면 임 전 차장의 구속 가능성이 좀 더 높아진다. 
 
임 판사도 10월에 새로 영장 업무에 투입됐는데 행정처나 대법원에서 일한 경력이 없어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즉 방탄을 자행한 60%(박범석·이언학·허경호)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40%(명재권·임민성)의 확률로 임 전 차장의 운명이 갈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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