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병역거부자에 대한 전원합의체 무죄 판결, 헌법재판소의 판단과 결 맞춰, 우려하는 논리에 대한 반박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분단 국가의 고착화된 판단이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대법원은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정에서 현역 군인으로 입대하라는 영장을 받고도 불복종한 ‘여호와의 증인’ 신자 오승헌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오승헌씨가 대법원에 출석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오승헌씨가 대법원에 출석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헌법재판소는 6월28일 병역법 5조에 대해 “병역거부자는 병역의 의무를 회피하려는 게 아닌 신념을 지키려는 것인데 대체복무를 마련하지 않고 처벌만 규정해두고 있다”며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린 바 있는데 대법원도 이러한 방향성에 결을 맞췄다. 

오씨와 같은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은 명백히 신념상 총을 들 수가 없어서 자동적으로 병역거부를 해왔었는데 이들을 무조건적으로 처벌했던 사법부의 판단이 뒤집어 진 것이다. 전원합의체 판결을 새로 내린 것이기 때문에 지난 2004년 유죄 입장을 고수한 뒤 14년만이다. 

13명의 대법관 중 무죄가 9명 유죄가 4명으로 선진국들의 보편적 법의식을 우리 대법원도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확하게는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을 결정한 것이라 창원지방법원 형사항소부에서 이를 확정하는 선고를 내리는 절차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무난하게 수용될 것으로 보인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병역거부자를 무죄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다수 의견이라고 밝혔다. (사진=박효영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은 병역거부자를 무죄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다수 의견이라고 밝혔다. (사진=박효영 기자)

병역법 88조 1항에 따르면 “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없이 입영하지 아니하거나 소집에 응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돼 있는데 그동안 관건은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지의 여부였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소극적 양심 실현의 자유에 대해) 형사처벌을 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에 과도한 제한을 하거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 된다. 일률적으로 병역의 의무를 강제하고 불이행에 대한 형사처벌 등으로 제재하는 것은 소수자에 대한 관용이라는 자유민주주의에 반한다. 종교나 양심적 병역거부는 병역법에서 규정한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소극적 양심 실현의 자유는 언행으로 표출된 적극적 양심 실현의 자유와 달리 내적으로 지니고 있는 일반 소신으로 해석되는데. 군대에 입대하라는 국가의 강제 명령을 이행할 경우 이러한 소극적 양심 실현은 복무 기간 내내 철저히 짓밟히게 될 것이 뻔하다. 그래서 입대를 거부할 수밖에 없는데 이런 사람을 감옥에 보내는 일은 과잉 처벌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병역 거부와 달리 ‘병역 기피’는 양심과 신념에 따른 것이 아닌 단순히 군대에 가기 싫어서 꾀를 부리는 경우인데 이렇게 병역 거부에 대한 국가적 인정이 악용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김 대법원장은 “그 신념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해야 한다”는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삶의 일부가 아닌 전부가 그 신념의 영향력 아래 있어야 하고 좀처럼 쉽게 바뀌지 않는 신념이어야 하며 상황에 따라 타협적이거나 전략적이지 않은 신념이어야 한다. 병역거부자가 내세운 신념을 살펴볼 때는 피고인의 가정환경, 성장과정, 학교생활, 사회경험 등 전반적인 삶의 모습도 아울러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앞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대법원 판결에 대해 관련 시민사회 단체에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런 기준으로 봤을 때 오씨는 △여호와의 증인 신자인 부친의 영향으로 만13세에 신봉하게 됐고 △2003년 최초로 입대 거부를 감행한 이후 이런 의사를 일관되게 유지했고 △이미 부친과 동생도 똑같은 사유로 형사처벌을 받았고 △배우자와 자녀가 있음에도 형사처벌을 받아 들이고서라도 기존의 신념을 유지하려고 한 점 등을 고려해봤을 때 명백한 병역거부자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다.

물론 반대 여론이 바로 제기됐다.

우선 김소영·조희대·박상옥·이기택 대법관 등은 “기존 법리를 변경해야 할 명백한 규범적이고 현실적인 변화가 없음에도 무죄를 선고하는 것은 혼란을 초래한다. 대체복무제 도입으로 해결해야 할 국가 정책의 문제다. 이 사건은 헌재 결정으로 사실상 위헌성을 갖게 된 현행 병역법을 적용해 서둘러 판단할 것이 아니라 대체복무제에 대한 국회 입법을 기다리는 것이 마땅하다. 심사 판단 기준으로 고집하면 여호와의 증인 신도와 같은 특정 종교에 특혜가 될 수 있다. 이는 양심의 자유의 한계를 벗어나고 정교 분리원칙에도 위배돼 중대한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고 견해를 피력했다.

자유한국당도 반대 논리를 제시했다.

송희경 한국당 원내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부작용을 최소화 할 제도적 보완장치가 미비된 상황에서의 이번 결정은 다소 성급한 측면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당장 진정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판단할 객관적 잣대와 검증 절차도 마련하지 못 한 상황에서 종교와 양심이 병역 기피자들의 도피처로 악용된다면 엄청난 사회적 갈등 비용만 키우게 될 것이다. 남북 분단이라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수성도 간과해선 안 된다. 북핵 위협은 여전히 상존하고 남북은 대치하고 있다. 북한의 조선노동당 규약에는 적화통일이 버젓이 명시돼 있다. 현역 장병들의 박탈감과 사기 저하도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크게 보면 △현역 입대자의 박탈감 △악용 가능성 △분단 특수성 등이 있다. 

하지만 그동안 전과자의 오명을 썼던 1만9000명의 병역거부자들이 막대한 희생을 감내해왔던 점, 기를 쓰고 속이지 않는 이상 삶의 궤적까지 거짓으로 관리해서 병역 회피를 꾀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 북한과 미국이 만나는 등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 북한의 위협이 있다고 해도 징병제로 언제까지 군사 안보적 효율성을 추구하기 어렵다는 점, 저출산에 따른 입대자 부족으로 어차피 모병제로의 전환이 불가피하게 된 점 등 모두 반박될 수 있다. 

한편, 현재 대법원에서 재판이 진행 중인 병역거부 사건은 총 227건으로 향후 큰 틀에서 무죄 선고가 내려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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