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새벽에 올라와 김병준 비대위원장·손학규 대표 면담, 초월회와 여야정 상설협의체를 통해 12월 정기국회 통과 약속, 손학규 대표와 배현진 대변인의 실언과 보도 행태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당초 예상과는 달리 언론의 관심이 쏟아졌다.

친구들은 5일 새벽 부산에서 KTX를 타고 서울 여의도 국회에 도착했다. 10시반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기로 했고, 11시에는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만나기로 했다.

아침 일찍 국회에 와서 19시반 저녁이 되어서야 국회를 나선 윤창호 친구들 4명. 왼쪽부터 김주환, 김민진, 손희원, 이소연. (사진=박효영 기자)

이날을 택한 이유가 있다. 점심 때 문재인 대통령은 5당 원내대표와 회동하고(여야정 상설협의체), 문희상 국회의장은 5당 대표와 회동을 하기(초월회) 때문이다. 이번만큼은 굵직한 여야 쟁점 이슈들에 묻혀 윤창호법(음주운전을 살인죄로 처벌하고 음주 측정기준 강화)이 제대로 논의되지 못 하는 현실을 두고 볼 수 없었다. 

꼭 윤창호법만이 아니더라도 여야가 무쟁점 사안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협치 정신을 발휘하는 좋은 사례를 남길 필요가 있다. 

김민진씨는 기자에게 ”국회에 더 많은 국민들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각자 고민거리와 걱정을 들고 국회에 와서 활발하게 공론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결론부터 살펴보면 성공적이다. 

문 의장은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초월회 정리 발언을 통해 “윤창호법을 비롯한 여야의 (핵심 쟁점과) 관련이 크게 없는 민생 법안들에 만장일치로 이번 정기 국회에 입법하자는데 다들 이의없는가”라고 물었고 5당 대표들은 “네”라고 동의 의사를 밝혔다.

청와대에서 열린 협의체 첫 번째 모임의 합의문 5항을 읽은 김삼화 바른미래당 수석대변인은 “국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국회가 최선을 다하기로 한다. 불법촬영 유포 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 강서 PC방 대책 후속 입법,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 등을 공동으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사진=박효영 기자)
초월회에 모인 5당 대표들과 문희상 국회의장의 모습. (사진=박효영 기자)

윤창호씨가 지난 9월25일 부산에서 음주운전 범죄자에 의해 봉변을 당했다가 동갑내기(96년생) 친구들 10명(이소연·예지희·손희원·박주연·진태경·손현수·윤지환·이영광·김주환·김민진)의 눈물겨운 노력이 시작된지 43일만에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아직 윤씨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두 가지다. 

윤씨는 현재 의학적으로 뇌사 상태인데 간절한 이들의 마음이 모여 깨어나는 것이 하나이고, 윤창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으로써 음주운전에 대한 의식 개선이 이뤄지는 게 또 하나다. 이 두 가지는 아직 멀었다. 특히 2017년에만 439명이 음주운전 범죄로 인해 사망했는데 이런 비극을 끝내기 위해 친구들은 오늘도 힘을 내고 있다. 

홍철호 한국당 의원(김 위원장의 비서실장)은 “죽었다 깨어나도 12월3일(예산안 법정처리 시한 하루 뒤)에는 본회의가 열린다. 이때 한 꼭지로 가니까 시간에 대한 걱정은 하지 말고 우리 위원장을 만난 것처럼 각 당을 한 번씩 푸시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국회 선진화법 체제 이후 모든 의사일정은 여야 합의에 따라 이뤄지지만 예산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는 12월3일로 예정돼 있으니 적어도 무쟁점 윤창호법은 그때 통과시킬 수 있다는 취지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날 면담은 당초 단촐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많은 취재진이 몰렸다. (사진=박효영 기자)

첫 시작부터 좋은 메시지를 듣게 된 친구들은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 했다. 사실 비대위원장실로 들어서자 생각보다 기자들이 무척 많아 당황스러웠다. 쉴새없이 터지는 플래시 소리에 어리둥절해졌다. 

손씨는 “이 많은 카메라들이 우리를 찍으러 온 건지 몰랐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친구들의 5가지 요구사항을 전달받고 “올해 안에 통과시키는 걸 당론으로 확정하는 것은 별 문제가 없다. 사실 당론이 돼 있다”고 답했다. 

5가지 요구사항은 ①여러 큰 쟁점 이슈들(예산안·채용비리 국정조사·특별재판부)과 무쟁점 사안인 윤창호법을 분리 처리해서 국회 역사에 좋은 선례를 남겨달라 ②윤창호 관계법(시동잠금장치부착 법률 등) 조속히 검토 ③올해 안에 본회의 통과를 당론으로 채택 ④양형 형평성 문제는 윤창호법을 통해 다른 법률들이 함께 상향 평준화되는 시작점이 됐으면 ⑤초월회 때 모두발언으로 윤창호법을 언급해달라 등이다.

김 위원장은 실제 초월회에서 “윤창호 친구들이 꼭 그 법이 통과되도록 하자고 모두발언으로 해달라고 약속했다. 그 말씀을 전달한다. 양형을 가지고 이야기가 있을 것이지만 이 법이 그야말로 여야 합의로 빠른 시간에 처리돼서 젊은이들의 마음과 개인적인 바람을 섞어서 말씀드린다”고 발언했다. 

손 대표도 “윤창호군이 뇌사 상태로 사경을 헤매고 있다. 그 지역구가 우리 당의 하태경 의원이다. 쟁점 법안이 아닌 만큼 이번 정기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손학규 대표가 김민진씨의 말을 듣고 있는데 젊은 시절 음주운전 사실을 거론하는 실수를 했다. 부적절한 발언이 분명하다. (사진=박효영 기자)

사실 친구들이 제일 걱정하는 것은 ④과 ① 때문에 ③이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이다. 일단 이날 정치권이 확약했음에도 걱정이 없는 게 아니다. 예컨대 ④의 측면에서 형법 259조 1항은 상해치사 혐의에 대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음주운전 범죄에 의한 사망자를 냈다고 해서 형법 250조 1항에 따라 살인죄(징역 5년 이상)로 의율하는 게 형평성이 맞냐는 차원이다. 

만약 ④에 걸려서 논의가 턱에 걸리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①의 요소로 여야 분위기가 냉각되면 ③을 약속대로 추진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김씨는 “사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쪽에서 법적 형평성에 우려를 표하시는 부분을 저희가 아예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다.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그런데 사실 며칠 전에 이용주 민주평화당 의원의 음주운전도 있었는데 검사 출신이다. 이 일을 추진함에 있어서 법조계 출신 의원들이 본의 아니게 많이 소극적이었고 저희가 많이 만나 뵀는데 그 과정에서 저희한테는 큰 걸림돌이었다. 이번 이 의원 사건을 통해서라도 같은 법조계 출신 의원으로서 연대 책임을 그렇게라도 져줬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김 위원장도 ④이 걸릴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내가 바로 대답을 하기가 힘든데 이런 부분은 전문적인 영역이 있으니까 그 형평성만 고려해야 하는지 아니면 이런 음주운전에 대해 엄격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지. 나는 별 문제가 없으리라고 보는데 이것은 법학자들이나 의원들 사이에 토론이 있겠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맞다”고 힘을 실어줬다.

김 위원장이 친구들의 요구사항을 열심히 받아 적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김 위원장이 친구들의 요구사항을 열심히 받아 적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손 대표를 만나는 자리에서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법사위 소속)도 ④과 관련 “(법률이 규정하는 양형도 양형이지만 중요한 건) 법원의 양형 기준이다. (음주운전 범죄에 따른) 상해는 아무리 가중해도 2년 이하의 징역이다. 사망하면 3년 이하다. 전반적인 범죄 행위와 함께 논의해야 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논의하고 이번 윤씨 사고 때문이라도 경각심을 가지면서 국회에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김씨는 “법원의 양형 기준에 대해서는 우리도 고민이 많다. 법원이 산정한 양형 기준 자체도 형평성 문제를 갖고 있다. 법원을 움직이기 위해서라도 입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줘야 한다”고 말했다.

친구들의 요구는 ④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있다 하더라도 음주운전 엄벌주의의 기조에 맞게 최대한 이 대목에서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④외에는 대한민국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윤창호법에 대해 조속히 통과시켰으면 하는데 혹시나 ④ 핑계로 시간이 지체되면 언제 ①이 비집고 들어와 영향을 미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손 대표는 “무쟁점 사안이니까 국회 본회의에서 12월 안에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공언했다. 

김민지 기자는 정치인들의 실언을 꼬집었지만 너무 과한 평가를 내려 친구들의 우려를 현실로 드러냈다. (캡처사진=채널A)

친구들은 분명 ①에 대해 우려하는 마음이 크다. 이날 배현진 한국당 대변인과 손 대표의 실언이 있었는데 김민지 채널A 기자는 이를 보도하면서 “과연 국회 방문이 도움이 된 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피해자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도 모른채 쇼만 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손 대표는 친구들과의 면담 자리에서 “요즘은 음주운전을 조심하는데 나도 젊었을 때는 음주운전을 좀 했었다. 그러나 최근 이 의원이 음주운전 적발되고 다행히 다른 사람이 신고를 해서 사고를 내지 않았지만. 음주운전 사고는 살인 행위나 다름없다. 경각심을 아주 높여야 한다”고 발언했고 배 대변인은 “윤창호 군이 음주운전 사고로 고귀한 목숨을 잃은 사고가 있었다”고 말했다.

소중한 사람이 음주운전 범죄로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데 자신의 음주운전 경험을 무용담 고백하듯이 말하거나, 투병 중인 생존자를 사망 피해자로 규정해버리는 것은 분명 잘못됐다. 하지만 친구들이 이날 힘들게 당대표 면담 일정을 잡고 서울까지 올라온 것은 ①을 최소화시켜서 조속한 논의를 촉구하기 위해서이고 그런 목적에 부합하도록 손 대표와 배 대변인에 크로스체크를 해서 사과를 실어주는 방식으로 보도를 할 수 있었는데 만남 자체의 무용함이나 지엽적인 대목을 부각하는 것은 친구들의 목적에 별로 부합하지 않는다. 

(사진=박효영 기자)
친구들은 이날 하태경 의원실에서 회의를 하고 여러 언론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실제 배 대변인과 손 대표는 바쁜 일정 속에도 이날 면담이 성사되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김씨는 김 기자의 연락을 받고 말 실수에 대한 심경까지 물어서 부응해 답변을 했지만 이런 지엽적인 지점에 초점을 맞춰 보도가 나올까봐 걱정스럽다고 기자에게 설명했다.   

추후 손 대표는 면담에 참석한 김씨를 비롯 이소연·손희원·김주환씨에 대해 일일이 직접 전화를 걸어 사과의 뜻을 밝혔고, 배 대변인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너무 경황이 없고 얼떨떨해서 내가 말실수를 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친구들이나 윤씨 가족들이 놀라셨을까봐 속상하다. 죄송하다고 꼭 전해달라”고 말했다.

사실 친구들은 정치인을 욕하거나 이 의원을 비롯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인식 개선’과 ‘제도 변화’ 두 가지가 상호 영향을 미치면서 발전한다고 했을 때 후자를 현실화 할 국회의 협상 효율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이와 동시에 친구들은 전자의 관점에서도 음주운전 예방을 위해 토론회와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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