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내에서 한국당만 선거권 18세 하향에 학제개편을 조건으로 걸어 반대, 김병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서 변화 조짐, 김선동 여의도연구원장과 정현호 비대위원은 찬성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학제개편을 먼저 하는 것을 조건으로 선거권 연령을 만 18세로 낮추자고 당론으로 정했던 자유한국당이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당의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는 김선동 의원은 16일 오후 기자와의 통화에서 “나는 뭐 우리가 야당이 돼서 (학제개편 이전에도 선거권 18세 하향을) 해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열어 제끼자 그런 식으로 스스로 혁신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연구원장으로서 당 지도부에 학제개편 이전에 18세 하향을 제안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제안할 수 있다. 학제개편을 하려면 시간이 되게 많이 걸릴 것이다. 그래서 이 안 자체를 (당내에서 제대로) 한 번 논의를 해야 한다. 우리가 그 문제를 전향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여의도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강석호 의원은 학제개편을 하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그 전에 선거권 18세 하향을 할 수 있고 그렇게 전향적으로 한국당이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여의도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강석호 의원은 학제개편을 하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그 전에 선거권 18세 하향을 할 수 있고 그렇게 전향적으로 한국당이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물론 김 의원은 “그게 당론으로 당에서 받아 들여질지는 논의를 해야하는데 그건 아직이다. 아마 의원총회에서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논의될 선거권 연령이나 이런 걸 다 올려서 같이 논의해야 할 것이다. 우리 의원들은 학교의 정치화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라며 기존 한국당의 당론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다고 밝혔지만 “(의총에서 의제로 나오면) 나는 (학제개편 이전에 해보자고) 얘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8월20일 경기도 과천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에서 ‘책임과 혁신’을 주제로 열린 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의 연찬회에 참석한 김 의원은 비대위 산하 좌표와 가치 재정립 소위 논의 결과를 브리핑하면서 선거권과 피선거권 연령 하향를 제안한 바 있다. 여기서 학제개편을 단서로 달지 않았었다.

사실 6.13 지방선거 이전까지 원내 4당(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은 조건없이 바로 선거권 연령을 18세로 하향하자는 것에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오직 한국당만 학제개편을 전제조건으로 내걸어서 선거권 연령 하향을 방해했었다. 만 18세의 나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도록 학제를 개편한 뒤에 선거권을 주자는 논리다. 

한국당은 18세 연령 하향에는 동의한다면서도 학제개편(초등 6년-중학 2년-고등 3년)을 내세웠고. 후자를 추진해서 실제 전자를 실현하려는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시민사회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래서 이 문제를 요구해왔던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한국당이 학제개편을 핑계로 선거권 연령 하향을 안 하려고 하는 것 같다고 그 속내를 꼬집었다. 보수 정당으로서 젊은 층에게 지지를 못 받을 것이라는 정치적 판단이 자리잡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제정연대는 한국당의 태도를 비판하는 여러 이벤트를 자주 개최했었다. (사진=박효영 기자)

제정연대는 지방선거 내에 18세 선거권을 쟁취하기 위해 국회 앞에서 삭발식, 노숙농성, 정치인 면담, 기습시위, 문화제 등 모든 노력을 다했지만 끝내 한국당의 당론을 변화시키지 못 했다.

선거권 연령을 18세로 낮추자는 담론은 이미 보편적 컨센서스가 형성돼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중 유일하게 만 19세인 국가도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피선거권과 정당 가입 및 선거운동 연령을 낮추자는 법안도 발의됐고, 만 19세로 규정한 공직선거법에 대한 헌법소원도 진행 중이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14일 오전 국회에서 제정연대 사람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오래전부터 논의해 온 사안으로 국회가 여러분이 나서기 전에 마무리했어야 할 일인데 여러분이 애쓰고 있는 점은 미안하고 아쉽게 생각한다. 정말 미안하고 부끄럽다. 나도 만 18세 선거권 문제는 정치인으로서 반드시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오늘 얘기를 듣다 보니 난 뭘 했나 반성하게 된다. 이번 정개특위에서 다른 법안은 좀 안 되더라도 선거연령 인하는 합의하는 대로 입법하려고 한다. 나도 원내대표 때 만 18세 선거연령 인하라는 업적이라도 하나 만들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우리가 작전을 잘 짜서 이 법안을 우선적으로 통과하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 여러분도 밖에서 고생 많이 했지만 좀 더 응원해주고 함께 해달라”

충남 지역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김다빈씨는 홍 원내대표에게 “주변 청소년이나 활동가들이 볼 때 한국당이 큰 발목이긴 하나 민주당도 선거연령 하향에 눈에 띄는 활동을 못 했다. 선거연령 하향에 국민적 관심을 끌기 위해 민주당이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 했다”고 밝혔다.

지난 5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정 국정 상설협의체(문재인 대통령 주재의 5당 원내대표 분기 회동) 합의문을 보면 “선거연령 18세 인하를 논의하고 대표성과 비례성을 확대하는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이 포함됐고 문 대통령은 “선거연령 인하를 국회에서 논의해 달라”고 주문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도 이런 합의문에 동의했다. 이번에는 정말 달라지는 걸까.

정현호 한국당 비대위원은 16일 오후 기자와의 통화에서 “우리 당에서도 비대위 청소년특별위원회 위원을 구성할 때 청소년 참정권 하향을 위해 최민창 위원을 참여시켰다. 비대위의 첫 사업으로 이 문제를 생각하고 있고 나는 만 18세 하향에 대해서는 그렇게 가야 할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과거 혁신위원회 2기에서도 청소년 참정권을 제안했었다”고 강조했다.

정현호 비대위원은 학제개편 이전에 선거권 연령 하향을 시행하고 이후 다시 통합해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정 비대위원은 분명 “(선거권 연령 하향과 학제개편을)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밝혔고 다만 “(선거권 18세 하향이 완료되면) 통합적으로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선거권 하향이 이뤄지면) 그 다음에 (자연스럽게) 교육개편을 논의할 수밖에 없고 교육 모델을 바꿔야 할 시점이 온다”고 역설했다.

이를테면 “(18세 하향과 학제개편 추진을) 동시에 해야 하는 조건부라기 보다는 선거권 연령 하향에 대한 논지에 학제개편이 붙는 순간 조금 본래 취지와는 다르게 느껴질 것 같다”는 것이다.

정 비대위원은 “개인적으로 (둘을) 분리해서 보자는 주의이고 (이후에) 다시 통합적으로 봐야한다. 일단 분리해서 보고 그 다음에 교육개편 논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앞두고 지금 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교육과 지식이 과연 미래에 필요로 하고 있는 역량인지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정 비대위원은 김병준 비대위원장도 이 문제에서 만큼은 열려있다고 강조했다. 

“(김 비대위원장도 이 문제에서는) 열려 있다. 왜냐면 비대위 청년특위를 인선할 때 청소년 참정권을 다루고 그런 인물로서 위원 선임을 할 것이라고 했을 때 좋다 우리도 다뤄야 한다고 이렇게 말했다. 그 다음에 여러 요구들이 (국민들로부터) 올라왔을 때 우리 당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 그걸 빠르게 제도권에서 받아주는 게 필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청소년들이 끊임없이 요구해왔던 그런 것들(선거권 18세 하향)은 빨리 (한국당이) 반영해서 제도권에서 논의해야 한다. 김 비대위원장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김병준 비대위원장도 선거권 연령 하향에 대해 학제개편 이전에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김병준 비대위원장도 선거권 연령 하향에 대해 학제개편 이전에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마침 3선의 강석호 의원(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이 차기 한국당 원내대표 주자(김학용·나경원 의원 등과 함께)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라 희망적이다. 

강 의원은 2017년 1월9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현재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소위(안전및선거법심사소위원회)에서 한국당의 입장을 대표해서 선거권 18세 하향을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동의한 바 있다. 

이재정 민주당 의원(당시도 현재도 행안위 소속)은 4월11일 국회에서 기자와 만나 “(상임위 법안소위→상임위 전체회의→법제사법위원회→본회의→대통령 공포의 절차 중에서 법안소위가 제일 중요한 것이냐는 물음에) 법안소위에서는 다수결도 아니고 전원 합의다. 법안소위에서 통과가 안 되니까 문제인 거지 법안소위에서 통과된 뒤에는 사실상 아무 무리없이 본회의까지 통과된다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현재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강석호 의원. 강 의원은 차기 한국당 원내대표의 유력 주자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현재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강석호 의원. 강 의원은 차기 한국당 원내대표의 유력 주자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그때 한국당 112명 의원들에게 전수조사를 해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몇몇 의원들은 조건없는 선거권 연령 하향에 찬성하고 있고 법안소위에서 합의해 줄 정도로 당 전체의 입장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걸 실행했던 인물이 강 의원이고 만약 원내대표가 된다면 선거권 18세 하향에 더욱 탄력이 붙을 수 있다. 

제정연대는 18세 하향은 하나의 시작일 뿐이고 만 16세까지 낮춰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조만간 청소년 참정권이 확대되는 첫 테이프가 끊어질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