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부산에서 서명운동을 하는 이유, 법률 통과 임박했어도 움직여야, 청와대 비서관의 음주운전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확성기 메가폰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윤창호군이 우리 곁을 떠난 지 아직 2주 밖에 안 됐다. 그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음주운전이 끊이지 않고 있다. 청와대 의전비서관(김종천)이 술을 먹고 운전대를 잡았다. 의전비서관은 주변에 음주운전 하는 걸 말려야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런 사람이 음주운전을 했다는 건 그만큼 우리 사회에 음주운전의 (인식) 뿌리가 깊다는 것이다.”

하 의원은 23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윤창호법(음주운전 처벌 강화) 통과 촉구 서명운동에 동참했고 “연내에는 반드시 통과가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 국회 일이라는 게 꺼진불도 다시 보자는 것처럼 각 당 대표들이 합의했지만 눈길을 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하태경 의원은 윤창호법을 대표 발의하고 104명의 동료 의원들에게 일일이 서명을 받았다. (사진=박효영 기자)

음주운전 범죄 희생자인 故 윤창호씨(23세)의 친구들(김민진·김주환·박주연·손현수·손희원·예지희·이소연·이영광·윤지환·진태경)은 이미 수많은 노력으로 국민 여론을 일깨웠고 연내 법 통과에 대한 정치권의 확약을 받았지만 하 의원이 우려한대로 방심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이날도 급격히 날씨가 추워졌지만 서울의 심장에서 서명운동을 했다. 24일에는 부산 해운대구 센텀시티역에서 진행했다. 곧 법률 통과가 예상되지만 서명운동을 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①여전히 끊임없이 발생하는 음주운전 범죄의 심각성
②고질적으로 더딜 수밖에 없는 국회의 정치협상 과정

친구들은 1만명의 국민 서명을 받아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전달하고 조속한 법 처리를 요구할 계획이다. 국회 정론관에서 다시 기자회견을 열 계획도 세워놨다. 

광화문 광장에서 강추위에도 서명운동을 진행한 친구들과 하태경 의원. (사진=박효영 기자)
광화문 광장에서 강추위에도 서명운동을 진행한 친구들(왼쪽부터 예지희·김주환·하 의원·김민진)과 하태경 의원. (사진=박효영 기자)

사실 친구들이 윤창호법 제정을 위해 노력하는 기간 동안 ①은 계속됐다. 

이용주 민주평화당 의원이 윤창호법에 서명하고 힘을 실어줬음에도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사건은 상징적이다. 23일 자정에는 김종천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도 음주운전으로 적발됐다. 김 전 비서관은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엄중한 상황을 고려해 바로 직권 면직 처리를 했다. 김 전 비서관의 혈중알콜농도가 0.12% 면허 취소 수준이었다. 

청와대 비서관도 그렇고 이 의원도 그렇고 대리운전을 불렀다고는 하지만 짧은 거리는 음주운전을 해도 괜찮다는 안일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 술을 마셨다면 대리 운전기사를 맞이하는 장소까지 운전을 하면 안 되고, 회식 장소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운전대를 잡으면 안 된다. 윤씨를 들이받은 범죄자는 고작 400m를 운행하다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윤창호법의 부각으로 국민 여론은 뜨겁지만 공인의 일탈은 계속되고 있고 전국 각지에서 황당한 음주운전 범죄도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다. △차 문을 열고 운전하고 △지하 주차장으로 꼬불꼬불 들어가다가 온갖 곳을 들이박았고 △한 40대는 만취 상태로 18km를 달렸고 △대학생은 렌트 차량을 몰다가 또래 친구 2명을 사망하게 만들었다. 

음주운전 범죄는 ‘성범죄·절도·사기·살인’과 같이 범행 자체로 타인에게 명백한 피해 결과를 야기할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다. 범행과 결과 사이에 임의성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저 운으로 생각하고 경각심을 갖지 않게 되는 것이다. 윤씨 친구들은 “음주운전은 살인”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대국민 인식 개선을 위해 발로 뛰고 있다. 

김종천 전 비서관은 대리운전을 부르고 기사를 맞이하러 가는 장소까지 운전을 했다고 하지만 짧은 거리를 주행하더라도 큰 사고가 날 수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②과 관련해서 보면 윤씨가 범행을 당했을 때가 9월25일이고 두 달만에 정치권이 이렇게 반응한 사례는 흔치 않다. 하지만 윤창호법을 시작으로 다른 많은 개혁 과제들도 조속히 논의되는 정치권의 문화를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 쟁점 이슈와 무쟁점 이슈의 분리 처리가 핵심이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최초 제안했던 윤창호법의 본회의 통과 날짜는 11월15일이었다. 하지만 여야는 실무 절차를 전혀 진행하지 않았고 손을 놓고 있었다. 그렇게 한 주를 보내고 19일 월요일부터는 여야 정세가 얼어붙어 끝내 보이콧 상태가 돼 버렸다. 이로인해 20일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소위에서 윤창호법의 한 파트인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로 했었는데 무산됐다.   

나머지 한 파트인 특정범죄가중법이 법제사법위원회 제1소위에서 논의된 뒤 법사위 전체회의를 거쳐 본회의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예상 통과 시점은 11월말과 12월 초중순이다. 

△11월26일 10시 행안위 법안소위 
△11월27일 10시 법사위 1소위 
△11월28일 10시 행안위 전체회의와 법사위 전체회의 
△11월29일 본회의

회의 개최 직전에 그날 논의될 상정 안건 리스트가 공표되는데 우려되는 날은 행안위·법사위 전체회의가 동시에 열리는 28일이다. 국회는 모든 게 정치적 협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당일 실시간으로 안건을 처리할 수 있지만 그날의 변수와 관행에 따라 지연될 수도 있다.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도로교통법을 의결시켜서 당일 법사위 전체회의에 올릴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무리다.

현행 특가법 5조의11에 따르면 음주운전 범죄를 일으켜서 사람을 사망하게 하면 징역 1년 이상의 처벌을 받게 돼 있다. 하지만 너무 낮은 형량에 따라 설정된 대법원 양형위원회 기준이나 판사의 작량감경 등으로 집행유예 선고가 자주 일어난다. 음주운전으로 사람이 죽어도 집행유예 선고가 주를 이루다 보니 음주운전은 범죄로 인식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음주운전 하면 바로 감옥에 갈 수 있다는 경각심을 주도록 양형을 살인죄에 버금가는 5년 이상으로 상향하는 것이 친구들의 뜻이다.  

하지만 여기서 다른 범죄들의 양형보다 음주운전치사의 양형이 높을 수 있느냐를 두고 법사위 내에서 형평성 논의를 해봐야 하는 지점이 있다. 

권은희 의원은 이날 서명운동 현장에 나와 기자와 만나 통과 절차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장 왼쪽에 서명 용지를 보고 있는 권 의원. (사진=박효영 기자)

서명운동 현장에서 기자와 만난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행안위 법안소위 소속)은 “법사위 1소위 논의가 중요하다. 법무부는 처음 논의할 때 입장을 안 가지고 왔다. 그래서 (법사위원들이) 입장을 다시 가지고 오라고 해서 순연됐다. 사실 상한선(살인죄에 사형과 무기징역 명시)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하한선(5년)이 중요하지”라고 말했다.

특히 “행안위 전체회의가 늦어지긴 했지만 (도로교통법 개정안에 대해 여야) 이견이 없다. (최종 통과 시점은) 법사위 지나고 숙려기간을 생각하면 12월 초중순 본회의를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0일 민주당 소속 행안위 법안소위 의원들(홍익표·김민기·김영호·김한정·이재정)은 야당 의원들 없이 단독 심사를 마쳤는데 기존의 윤창호법 보다 음주수치 기준을 더 강화했다. 

△0.03%~0.08%(100일 면허 정지에 1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
△0.08%~(면허 취소에 1~4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1000만원 이하 벌금)

​0.03%로 낮췄다는 것은 보통 성인 기준 소주 3잔이면 나오는 수치다. 술을 조금이라도 마셨으면 음주운전으로 처벌되는 것이다. 면허 취소 기준 0.08%는 윤창호법이 명시한 0.09% 보다 더 낮아진 기준이다. 법 개정 이후 유예기간 역시 애초 행안위 전문위원이 제시한 1년이 아닌 6개월로 줄여서 최대한 빨리 시행되도록 규정했다. 음주운전 전력자의 면허 재취득이 가능한 기간도 더 늘렸다. 

예지희씨는 작은 행동들이 보여 세상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윤씨의 고등학교 동창 예지희씨는 메가폰을 잡고 이렇게 호소했다. 

“3년 전 임신한 아내에게 크림빵을 사주기 위해 가고 있던 남편이 음주운전 차량 때문에 사망했고, 올해 여름엔 음주운전 차량에 동승한 20대 대학생과 30대 뮤지컬 배우가 숨졌다. 그로부터 2개월 후 군복무 중 휴가를 나온 내 친구가 음주운전 차량에 치어 세상을 떠났다. 이제 안일함을 버리고 모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술마신 상태로 운전하지 않겠다는 다짐 한 번, 음주운전 차량을 신고하는 용기, 음주운전을 하는 사람을 말리는 말 한 마디가 모여서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세상이 바뀔 것이다.”
  
윤창호법의 본회의 통과도 그렇고 대국민 인식 개선이나 향후 예방 정책도 그렇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