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정치의 깍쟁이 이미지 나경원이 보여줄 협상력, 김성태 보다 치열할 수 있을지 우려, 중립을 표방해 비박계의 부상을 방지하려는 친박계의 지지, 당장 협상할 이슈 쌓여있어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자유한국당의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된 나경원 의원(4선)이 맞닥뜨릴 정국은 만만치 않다. 당장 3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이 사활을 걸고 요구하고 있는 선거제도 개혁, 더불어민주당을 비롯 4당이 국민 여론에 힘입어 밀고 있는 유치원 3법에 대해 나 원내대표가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11일 17시 나 의원과 정용기 의원(재선)이 한국당의 차기 원내 사령탑으로 선출됐다. 복당파 비박계가 당권과 원내 지도부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 의원의 당선은 의미심장하다. 정 의원은 러닝메이트로서 정책위원회 의장이 됐다. 나 원내대표가 보수 정당 최초로 여성 원내대표에 오른 것도 상징적이다.

나경원 신임 원내대표와 정용기 신임 정책위의장이 앞으로 1년간 한국당의 원내 전략을 이끌게 됐다. (사진=박효영 기자)
나경원 신임 원내대표와 정용기 신임 정책위의장이 앞으로 1년간 한국당의 원내 전략을 이끌게 됐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제 한국당의 원내 사령탑이 결정됐으니 바로 12월 임시국회 개최 여부를 놓고 여야 협상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박효영 기자)

나 원내대표는 총 103표 중 68표를 얻었고 경쟁 후보였던 김학용 의원(3선)·김종석 의원(초선)은 35표를 얻는데 그쳐 당초 예상보다 원내 당심이 나 원내대표에게 기울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사실 10일까지 한국당 의원들의 마음은 비박계조차 나 원내대표가 유리하다는 판세를 점치기도 했었다. 

나 원내대표는 사실상 4수(정진석·정우택·김성태) 끝에 원내 사령탑에 올랐다. 

당선 직후 기자회견에서 나 원내대표는 “우리 당이 통합과 변화를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예전의 계파 프레임에 갇혀서 과거에 갇히지 않고 미래를 선택했고 그 과정에서 선거 결과처럼 통합을 선택한 게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친이계(이명박 전 대통령)였던 나 원내대표는 박근혜 정부에서 당내 요직에 오를 수 없었는데 이를 두고 스스로 “정치적 흙수저”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이후에는 친박계와 비박계 사이에서 명확한 진영에 소속돼서 활동하지 않아 중립파로 분류됐다.  

나 원내대표는 2016년 말 국정농단 정국이 열렸던 때에 새누리당 비상시국회의를 주도해서 친박계에 맞섰고 탈당해서 바른정당에 합류하려고 고심한 적도 있었지만 이번 원내대표 경선에서는 사실상 친박계의 지지에 힘입어 당선됐다. 정확하게 보면 친박계의 미움을 받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김 의원이 명확한 비박계인 점과 대비됐고 그런만큼 계파 싸움에 질려버린 초재선 의원 74명의 지지를 받은 것이 주효했다.  

나 원내대표가 향후 어떤 정치력을 보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박효영 기자)

또 다시 비박계인 김 의원이 원내 사령탑으로 오르면 홍문종 의원(4선)이 군불을 지폈듯이 친박계 신당 창당이 가시화 될 수 있고 그러면 한국당의 반토막이 우려되는데 그걸 방지하려는 의원들의 위기감도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분석된다.

무엇보다 김성태 전 원내대표는 소위 “들개”로 불렸던 만큼 화끈한 협상력과 투쟁력을 보여줬는데 나 의원이 어떤 정치력을 발휘할지에 따라 지지를 밀어줬던 잔류파 친박계의 입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4일 방송된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이번에 보면 나경원 의원은 세련된 면은 있지만 깍쟁이의 맛이 좀 지나치다”고 평가했는데 김 의원도 경선 과정에서 나 의원에 대해 “주인공 정치만 해왔다”고 규정했다. 

실제 나 원내대표는 2004년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정계에 입문한 이후로 큰 주목을 받았다. 

스스로도 3일 방송된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내가 이제 소위 이름이 알려진 스타 정치인이다. 이런 말씀들을 많이 한다. 그래서 이미 가지고 있는 이 대중성이 우리 당의 이미지 제고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뿐더러 이제 나는 더 이상 인지도 올리려고 자기 정치를 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요새 정치권에 자기 정치가 화두다. 그래서 나는 자기 정치를 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다른 의원들을 모두 정말 빛나게 해 드리겠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오히려 내가 적임자”라고 강조했다.

당의 장래를 위해 움직이기 보다는 자기 정치를 하는 것은 물론 문제지만 그것이 당을 위한 적극적 움직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나 의원처럼 이미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충분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면 원내대표로서 의원들 개개인을 위해 움직일 동기가 약하다고 볼 수도 있다. 

나 원내대표는 그동안 2번이나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한 바 있고 2017년 12월에는 중립파 후보 단일화에 앞장 서서 한선교 후보를 밀었으나 사실상 힘도 못 쓰고 실패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김 전 원내대표가 나 원내대표보다 인지도가 떨어진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드루킹 특검을 위한 단식 감행 등 1년간 극적으로 움직여 한국당의 존재감을 드러낸 측면이 있다. 그렇게 보면 나 의원이 과연 보수의 위기, 한국당의 위기 국면에서 김 전 원내대표 만큼 치열하게 활동할 수 있을지는 아직까지 물음표다. 

김 전 원내대표는 한국노총(한국노동조합총연맹) 출신으로 일생 협상을 해오면서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온 인물이라 살벌한 정치권에서 제1야당 원내 사령탑으로서 협상력을 잘 발휘해서 더불어민주당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5일 3당이 요구하는 선거제도 개혁 합의문을 성안할 때도 도농복합형 선거구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문구를 줄기차게 주장해서 타결을 물건너가게 만들었는데 이것도 김 전 원내대표의 계략으로 해석된다. 

한국당 내 대도시와 농촌 지역구 의원들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라 도농복합형에 대한 당론이 확실치 않음에도 그걸 끼워넣자고 주장해서 3당의 요구가 물건너가도록 민주당에 명분을 준 것이다. 

나 원내대표가 김 전 원내대표 만큼 투쟁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도 관심거리다. (사진=박효영 기자)

하지만 나 원내대표는 스스로 규정한 중립파 정체성에 따라서 당내 여러 세력들에게 손을 벌렸던 만큼 민주당·바른미래당과 협상에 임할 때마다 이리저리 휘둘릴 가능성이 있다.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는 2일 페이스북을 통해 나 의원의 중립 표방에 대해 “중립이란 세가 유리한 쪽으로 이쪽에 붙었다가 저쪽에 붙었다가 하는 소신 없는 기회주의자를 이르는 것인데 한국당에는 그런 의원이 단 한 사람도 없다”며 “선거가 좋기는 참 좋다. 내내 당내 총질만 하다가 선거철이 되니 대여 전사로 나서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젠 의원 대부분이 계파없는 비박이다. 몰락한 친박에 붙어 봐야 정치적으로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계파를 떠나 싸울 수 있는 용장을 원내대표로 선출하라”고 저격한 바 있다.

타 정당들과 협상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당내 이슈와 관련 나 원내대표는 △2019년 2월 예정된 전당대회 룰을 결정하고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의 조직강화특별위원회가 감행할 인적 청산에 따른 잡음을 관리하는 역할도 맡아야 한다. 

나 원내대표가 단식 중인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를 비롯 4당 원내대표를 관례적으로 예방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때 12월 임시국회 개최에 대한 논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나 원내대표의 정치력이 바로 시험대에 오를 것인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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