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 사장에 대한 동향 파악은 기재부의 정당한 권한인가, 국채 추가 발행은 정권의 이익 차원인가 객관적인 재정 정책인가, 기재부의 긴급 해명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서울중앙지검 수사관)의 폭로전에 이어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도 연일 청와대를 향해 폭로전을 펼치고 있다.

신 전 사무관은 지난달 29일 개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①KT&G(한국담배인삼공사)의 사장 인사에 청와대가 부당 개입했다는 1차 의혹을 제기했고 30일에는 모교 고려대 웹 커뮤니티에 게시물을 올리고 ②적자 국채를 신규 발행하도록 강요했다는 2차 의혹을 제기했다.

신재민 전 사무관은 기재부를 나와 여러 의문점을 폭로했다. (캡처사진=유튜브)

일단 구윤철 기재부 2차관은 31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담당 사무관이 아니고 왔다 갔다 이야기하는 것들을 정확한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신 전 사무관에 대해서는 여러 법적인 검토를 거쳐 요건에 해당한다면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①의 핵심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박근혜 정부 때 선임된 입사 25년차 백복인 KT&G 사장을 쫓아내려고 했다는 것이다. 

신 전 사무관은 “2018년 3월 정부서울청사 차관 부속실에서 문서 작업을 위해 컴퓨터를 켰다가 <대외주의 차관보고>라고 적힌 문건을 발견했다. 이런 문건이 왜 남아있는지 열어봤다가 이러한 내용을 확인했다. 그 문건 안에는 KT&G의 2대 주주인 기업은행을 통해 경영진 교체를 압박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사후 청와대 지시에 따라 작성된 문건이라고 들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가 기업은행을 압박해서 민간 기업의 수장을 교체하려고 시도했고 그 증거가 문건으로 남아 있다는 의혹 제기다. 

구 차관은 “KT&G 사장 인사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청와대 지시가 있었다는 주장 역시 사실과 다르다. 2018년 1월 당시 KT&G 사장이 셀프 연임하겠다는 보고가 있는 가운데 인도네시아 담배 회사 인수 관련 금융감독원 조사가 진행되고 검찰 고발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담배사업법상 관리감독 기관으로서 모니터링을 할 필요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구윤철 차관은 정당하게 토론해서 정권 차원의 이익이 아니라 국가 재정 정책을 취했다고 설명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구 차관은 “(신 전 사무관이 지목한) 자료에도 사장 선임에 개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언급돼 있다. 사장추천위원회가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문서의 기본 취지였다”며 “담배사업 관련 업무를 하는 담당과(기재부 출자관리과)로서는 충분히 모니터링 할 수 있었던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의 압력과 무관하게 기재부가 백 사장의 경영 실태를 합법적으로 관리감독 했을 뿐이지 교체하기 위한 밑작업이 아니라는 취지다.

이어 “(법적 근거가 있는 민간 기업이 여러 문제를 일으키는 등) 그렇지 않으면 동향이나 현황 파악도 절대 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구 차관은 “(김용진 전 기재부 2차관에게 확인한 결과) 당시 언론에서 KT&G 관련 보도가 되는 상황에서 김 전 차관이 현황을 문의한 적이 있었고 담당과에서 기업은행을 통해 동향을 파악했지만 차관에게 최종적으로 보고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문서가 유출된 것으로 파악된다. 차관 일정이 바쁘다 보니 보고가 안 된 것”이라며 기재부 윗선까지 백 사장에 대한 정보가 전달되지 않았고 그런 만큼 부당한 교체 지시는 없었다는 점을 환기했다.

②은 2017년의 국가 부채 규모를 겉보기에 최대한 나쁘게 유지해야 나중에 문재인 정부의 경제 운용 지표상 유리하다는 정무적 판단을 했다는 차원이다. 박근혜 정부가 나랏빚이 많은 상태로 국가 재정을 운용했다는 점을 과장해야 나중에 문재인 정부가 재정 운용면에서 훨씬 운신의 폭이 넓어지고 또한 채무 규모를 감축하게 될 때도 좋은 평가를 받기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런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느라 청와대가 기재부의 실무팀에게 강압적인 지시를 내렸다는 주장이다. 

신 전 사무관은 “정권 교체기인 2017년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채무 비율을 낮추면 향후 (문재인) 정권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판단 때문에 세수가 20조 이상 남았지만 국채 조기 상환을 취소했다. 그리고 국채 발행을 늘리라는 (청와대의) 주문이 있었다. 기재부 국고국 등이 나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를 설득했지만 청와대에서 (국고) 국장님을 소환해 적자 국채의 추가 발행을 강하게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기재부는 2017년 11월 대략 1조원의 국채 조기 상환 계획을 급 취소했었는데 구 차관은 “실무적으로 상환 시기를 조정했다. 연말 세수 등 자금사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내부적으로 토론해 결정했다”며 석연치 않은 해명을 했다.

신 전 사무관이 주목하는 ②의 핀트는 △국가 재정 운용상의 객관적 판단 △정권 이익상의 정무적 판단 중에 후자만 고려했다는 도덕적 해이를 꼬집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 차관은 그게 아니고 전자 차원이었다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구 차관은 “적자 국채의 발행 규모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을 놓고 관련 기관이 다양하게 논의한 결과 발행하지 않기로 의사결정을 한 것이다. 내가 그 당시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사실관계는 모르겠지만 치열한 토론 과정에서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왔을 걸로 판단된다. 2017년 연말 세수여건이 좋았다. 당초 국채 발행 규모가 28조 7000억원이었는데 20조원이 발행된 뒤엔 세수여건 좋아서 추가 발행할 필요 있는지 논의한 결과 하지 않기로 결론이 났다”고 설명했다.

적자 국채를 계획에 따라 발행했다가 세수여건이 양호해서 중단했다는 것인데 신 전 사무관은 애초에 적자 국채를 발행할 필요가 없었는데 왜 발행했냐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고 이에 대한 답변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에 대해 구 차관은 “국채 시장이라는 것이 한편으로는 물량을 공급하는 측면이 있고 국채를 발행하고 이자가 투입되기 때문에 세입 여건이 좋으면 발행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논의를 거쳐서 안 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 정도로 정부 내에선 의사결정에 치열한 논의와 토론을 거친다는 반증이 되겠다고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기재부 국고국 직원들은 아무래도 기재부 최윗선이나 청와대의 정무적 판단 이전에 객관적인 조치를 모색하기 마련이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물론 국채 발행은 양적완화 등 시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내려지는 정부의 재정 정책의 일환일 수 있다. 그러나 구 차관은 1년여 전 시장에 국채 물량을 늘릴 필요가 있었다는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그걸 발행했다가 중도에 중단했다는 점만 거듭 강조했다. 정권의 이익이 고려되지 않았고 국가 재정 정책에 대한 치열한 토론으로 정책 변경이 이뤄졌다는 점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한편, 정현호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은 31일 열린 비대위회의에서 “세수가 더 걷혀서 국가 채무를 덜어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무적 판단으로 채무를 발행하라고 지시했다는 게 정말 말이 되지 않는다. 나라를 두고 국민을 위해서 또는 장래를 위해서 책임져야 할 정부가 정무적으로 부채를 늘리고 또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다는 점은 목적과 수단을 결여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내고 “청와대가 취할 수 있는 여러 재정 정책의 수단 중 하나이자 일종의 권한이라고도 할 수 있는 국채 발행을 두고 거꾸로 청와대가 국채 발행에 압력을 가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심각한 언어도단”이라며 “문건의 무단 유출과 국가공무원상 비밀유지의무 위반만큼은 명백한 불법이자 가짜뉴스 배포와 거짓 주장에는 철저한 책임이 뒤따른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