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입법과 절차를 바꾸기 위한 개혁론, 국민 설득에 초점이 맞춰져, 증원론에 대해 확신 부족해서 결국 국회 합의에는 무신경, 1당으로서의 이해관계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국회 개혁안’을 먼저 마련해야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국민 설득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홍 원내대표의 국회 개혁론은 꼭 의원정수 증원을 전제해놓는 것이 아니라 개혁 입법 등 일하는 국회 차원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에 방점이 찍혀있다. 

홍 원내대표는 3일 오전 국회에서 신년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회가 국민과 국가를 위해서 일하는 곳이라는 신뢰를 어떻게 늘리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국회 개혁론을 설파했고 개혁안을 내놔야 선거제도 개혁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홍 원내대표의 국민 신뢰 상승을 위한 개혁론은 이런 거다.

①국회 선진화법과 법제사법위원회 등 절차적 합리화
②개혁 입법 완수
③국회의원 기득권 내려놓기

홍 원내대표는 “국회 선진화법도 좀 바꾸고 법사위 운영도 바꾸고 뿐만 아니라 정말 우리 사회를 좀 더 공정하고 투명하게 하기 위한 여러 개혁 입법을 좀 처리를 하고 이런 것들을 하고 국민들한테 우리가 이렇게 할테니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조건에 동의해줬으면 한다) 이렇게 접근을 하지 않으면 어려울 거다. 그렇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어려운 게 이런 거다. 지금 현재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현역 의원들이 자기 지역구를 내놓기 싫어하니 그러면 방법이 (정수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접근하면 안 된다고 본다. 기득권 세력들이 자기 기득권을 하나도 안 내려놓고 숫자만 늘리자. 우린 못 받겠다. 지금 국민들은 그런 뜻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의원들이 절대 내 것을 못 내려놓겠어. 줄이지마. 이렇게 하면 국민들이 동의하겠나”라고 밝혔다.

즉 ①②③을 주 내용으로 하는 개혁안을 먼저 제시할 수 있어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정수 증원도 가능하고 국민 설득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홍 원내대표는 “정말 정수를 늘리는 것을 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이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지만 그걸 하기 위해서 국회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어떤 제도적 개혁이 필요한지 이런 것들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다만 “꼭 정수를 늘려야 된다. 지금 300명 안에서는 연동형을 못 한다. 이렇게 (야당이) 가정을 하는 것 같은데 지난번(2015년)에 선관위(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0(지역구)대 100(비례대표)이라는 안을 제시했다. 그런 방법이 있는 것이다. 지난번 정기국회 때 한국당이 절대 못 늘린다. 그러면 230대 70이나 220대 80으로 조정하자. 나는 그런 다양한 안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안 늘리고”라며 정수 증원론을 꼭 상수로 볼 것까지는 없다고 말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신년 기자간담회를 통해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소신을 밝힌 홍 원내대표. (사진=박효영 기자)

3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도 홍 원내대표의 주장처럼 증원론에 기대지 않고 연동형을 도입할 수 있다고 판단하지만 문제는 현행 253석의 지역구를 줄이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비현실적이라고 보고 있다. 

선관위의 200대 100 모델로 가려면 53개의 지역구가 사라진다. 그러면 전체 지역구 획정 작업을 완전히 새롭게 해야 한다. 즉 253명 전체 지역구 의원의 이해관계에 중대한 위기감이 드리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3당은 증원론에 힘을 싣고 있고 지난달 정치개혁특별위원회 1소위가 제시한 3가지 모델 중 C안(정수를 330석으로 증원하되 220대 110으로 비율을 맞추고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하고 지역구 선거는 소선거구제로 치르는 것)에 공감하고 있다.

물론 C안도 33석의 지역구가 사라지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 더불어 정수 30석을 증원해서 비례대표 63석을 늘리는 것이다. 

홍 원내대표는 여당 원내사령탑 입장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국정 지지율이 날로 떨어지고 있고 결국 개혁 입법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예컨대 홍 원내대표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법 △검경 수사권 조정법 △지방 분권법 △경제민주화 관련 법 △유치원 3법 등을 처리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제도적 문제에서부터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이번에 유치원 3법에서도 봤지만 의원 한 명과 한 정당이 반대하면 과반수가 넘어도 법을 통과시킬 수 없다. 선진화법에 의한 의사결정 구조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이번에) 재확인했다. 선진화법을 어떻게 다시 바꿀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현재 선진화법에 의하면 신속처리(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되면 330일에 걸쳐서 처리하게 돼 있지만 최재성 의원(민주당)이 60일 내 처리하는 법안을 냈다. 여야가 논의해서 처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야가 상임위에서 합의한 법안도 법사위에서 단 한 명의 위원이 반대하면 사실상 폐기처분되는 이런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법사위 운영에 대한 개선도 반드시 하겠다”고 강조했다.

과거 ‘동물 국회’로 대변되는 다수당의 날치기 관행을 막기 위해 2012년 이후 선진화법이 도입됐지만 이제는 교섭단체 한 정당만 반대하면 사실상 국민 대다수가 찬성하는 입법도 어려워진 ‘식물 국회’ 현실이 됐고, 법사위가 사실상의 상원 갑질을 펼치면서 마찬가지로 입법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112석의 한국당이 제1야당으로서 문재인 정부의 발목을 잡으면 거의 모든 것을 방해할 수 있어서 홍 원내대표의 이런 발언이 나온 것인데 문제는 두 절차법을 바꾸려면 현행 절차에 종속된 상황에서 한국당을 뚫어야 한다는 점이다.

1등만 당선되는 승자독식 선거제도에서는 적대적 양당 체제가 고착화되고 이런 상황에서 동물 국회나 식물 국회는 예견된 수순이다.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타협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방해하고 밀어붙이기 위해 사생결단 할 수밖에 없는 게 적대적 양당 체제이기 때문이다.

홍 원내대표의 순서는 개혁 입법이 가능한 국회를 만들어놓고 선거제도 개혁을 하자는 것이지만 3당의 관점은 선거제도 개혁을 해야 개혁 입법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 단순히 민주당이 1당으로서 차기 총선 기대 의석수 감소만 볼 게 아니라 적대 체제 해소를 꾀해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③도 홍 원내대표의 주장처럼 현실적으로 희박한 지역구 소멸 차원으로 보는 게 아니라 3당은 국회 예산을 동결하고 국회의원 특권을 대폭 줄여서 증원론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힘을 싣고 있다.   

홍 원내대표는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 80%는 (증원을) 반대하고 있다. 의원수를 늘리더라도 지금 (예산) 총액을 변화하지 않고 그대로 심지어는 의원들 현재 보좌관 수를 줄여서 이런 것들을 (야당이 주장하고 있는데). 지금 비용 문제도 있지만 그런 것을 한다고 하더라도 의원 정수를 늘리는 것에 반대하는 여론이 80%”라고 밝혔다. 

연동형이 실현되려면 △국민 여론 △국회 합의 둘 다 넘어서야 하는데 홍 원내대표의 로드맵에 있는 ①②③은 전자만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고 후자는 거의 신경쓰지 않고 있다. 
 
그나마 “(나는) 사실 좀 (정수를) 늘리는 것도 고려를 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거기에 맞춰서 우리도 뭔가를 어떻게 내려놓을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발언했기 때문에 증원론을 위한 ①②③으로 해석될 여지는 충분하다.

(사진=박효영 기자)
의원수 증원 보다는 먼저 국회다운 입법 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홍 원내대표. (사진=박효영 기자)

그럼에도 홍 원내대표는 아직까지 1당으로서 정치적 손해 가정법에서 자유롭지 않다.

즉 “지금 독일식 그대로 도입하면 정말 우리 당에서 필요한 소외된 계층을 대변할 수 있는 비례대표 의원들을 한 명도 확보할 수가 없다. 또 하나 지역구 85%(253석)인데 이들의 의견을 전혀 무시하고 15%(47석)인 비례대표의 의견만 100% 받아서 뽑는 것도 불합리하다. 그러니까 그것을 어떻게 조정할 거냐 하는 문제가 하나 있다”라는 것이다.

홍 원내대표는 “선거법은 어떻게 하면 우리 실정에 맞게 만들어낼 것인지”라고 말했고 기자간담회 직후 진행된 점심 오찬에서는 “한국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거론했다.

외국의 선진 제도를 한국적 상황에 맞게 도입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여기서 “한국식”이라는 형용사가 거대 정당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차원으로 붙는다면 속이 뻔히 드러나는 것이다.

정동영 평화당 대표는 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체제를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규정한 것에 비유해서 민주당의 이런 표현을 비판한 바 있다. 거대 정당의 이해관계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지만 정당 득표율로 확보 의석수를 픽스하는 연동형의 대원칙을 훼손하기 위해 한국식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라는 취지다. 절반만 연동하고 절반은 연동하지 않는 절충형(현행 병립형 50%+연동형 50%) 모델이나 아예 연동하지 않고 비례대표 의석수만 늘리는 모델을 놓고 한국식으로 퉁치려고 한다는 우려감이 있기 때문이다.

홍 원내대표의 임기는 5월10일까지라 역사적 과제로 평가받는 선거제도 개혁 작업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마무리지을 수밖에 없는 처지인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