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위 의견서 360석 증원 제안, 양당의 안 할 명분 제시 및 방해의 역사, 김관영 원내대표는 일단 협상에 집중하고 정동영 대표는 플랜B 제시, 1월20일까지 합의 못 하면 패스트트랙 추진해야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는 예상대로 의원정수 360석을 제안했다. 현행에서 60석을 더 늘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정수 증원에 대한 위헌 논란에 군불을 지핀 상황이다. 그동안 양당은 마치 상호 순번제로 편을 먹은 것처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하지 않을 명분을 제시해왔다. 

결국 3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이 2018년 연말 두 가지(예산안과 연계·단식) 실력행사로 양당을 견인했듯이 정개특위 협상과 동시에 플랜B를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12일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한창 단식 중일 때 민주당은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로드맵을 발표했다. 2019년 1월 합의와 2월 본회의 처리는 이때 처음 나왔다. (사진=박효영 기자)

자문위는 9일 오전 국회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에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관련 종합 의견서를 전달했다. 자문위는 정세균 전 국회의장,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 등 16명으로 구성됐고 그동안 치열하게 선거제도 개혁 방안에 대해 논의해왔다. 의견서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공천 시스템을 비롯 정당 개혁 △360명으로 의원정수 증원 △선거권 연령 18세 하향 조정 등이 담겨있다.

정당 득표율로 확보 의석수를 픽스해야 하기 때문에 핵심은 증원론이다. 

의견서의 제언 4항을 보면 “한국 국회의원의 수는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과 비교할 때 적은 편이며 더욱이 우리 국회의 역사를 보더라도 국회의원 1인이 대표하는 인구 수는 현 20대 국회가 제일 많다(인구가 5000만명으로 증가하는 동안 국회의원 수는 오래 전부터 300명으로 고정돼 있음). 국회의원 수는 360명 규모로 증원하는 것이 적정하다. 증가하더라도 국회 예산은 동결하고 국회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강력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정개특위는 이것이 구호에 그치지 않도록 실질적인 방안을 제도 개혁 속에 담아내야 한다”고 돼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자문위는 의견서로 연동형의 핵심인 증원론에 힘을 실어줬다. (사진=박효영 기자)

문 의장은 축사를 통해 “더 이상 미룰 시간이 없다”며 “국회의장으로서 뼈를 깎는 노력으로 선거구제 개혁에 힘을 보태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8일 열린 정개특위 제1소위원회 회의에서 김재원 한국당 의원은 “헌법상 국회의원 정수를 200석 이상으로 한다고 돼 있다. 299석이 한계라는 전제로 300석이 위헌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헌법상 300석 이상으로 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따져봐야 할 문제다. 200인 이상이면 무한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최소한 200명에서 299명 안에서 하는 게 기본적인 헌법의 생각”이라고 밝혔다.

말미에는 “국민이 원한다면 정치권에서 논의할 수는 있지만 의석수를 늘리는 게 헌정 역사나 법 개정에서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헌법 41조 2항에 “국회의원의 수는 법률로 정하되 200인 이상으로 한다”고 돼 있지 300인을 넘지 말라고 규정한 것이 전혀 아니다. 즉 200인 이하로 정하지 말라고 하한선을 둔 것이지 그 이상으로 숫자를 어떻게 정할지에 대해서는 사회적 조건에 따라 법률로 정하라는 게 헌법학자의 다수 의견이다. 

1소위에 참석한 민주당 의원들(김종민·원혜영·이철희)을 비롯 3당 의원들은 김재원 의원의 주장에 반대 의견을 명확히 밝혔다. 

하지만 회의가 끝나고 1소위원장인 김종민 의원은 기자들에게 “위헌 쟁점이 정수 문제나 연동형 방식 등이 있는데 앞으로 선관위와 상의해서 어떻게 할지 결정할 것”이라며 김재원 의원의 소수 의견을 쟁점 사항으로 받아안는 발언을 했다.

이해찬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과 30년 정치적 동지였지만 선거제도 개혁에서만큼은 많이 망설이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해찬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과 30년 정치적 동지였지만 선거제도 개혁에서만큼은 많이 망설이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여기서 양당의 선거제도 개혁 방해 히스토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실 1998년 8월15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최초로 “독일식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20년 넘도록 선거제도 개혁은 양당의 소극성으로 요원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5년 당시 제1야당이던 한나라당에 반대급부로 대연정까지 제안하면서 선거제도 개혁을 관철하고자 했으나 한나라당의 거부로 좌절됐다. 2008년~2017년 보수 정권 시대 때 민주당은 각종 선거에서 쪽박을 차던 암흑기였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독일식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당론으로 채택하는 과정을 밟았다. 

박근혜 정부가 탄핵된 뒤 문재인 정부는 집권했고 민주당은 2018년 지방선거에서 압승했다. 그동안 줄기차게 연동형을 반대해왔던 한국당이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보수의 몰락 앞에서 김성태 전 한국당 원내대표는 클리셰처럼 “(선거제도의) 대표성과 비례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해왔고 지난해 11월29일에는 “(3당의 연동형 도입 촉구에 대해) 한국당도 원칙적으로 동감의 뜻을 표한다”고 분명히 밝혔다.

하지만 2018년 8월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당권 경쟁을 하던 때부터 보면 양당의 핑퐁 게임은 지속돼 왔다. 

①(8월9일) 이해찬 대표가 아침 라디오와 기자간담회에서 개헌과 선거제도의 연계설, 야당이 대통령제 개헌에 동의해주면 선거제도 논의 가능 시사, 지역구 의석수 축소의 어려움 등 언급
②(7월 중순 이후 10월 중순까지) 한국당이 故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의 타계로 교섭단체가 무너진 평화와정의를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정개특위 명단 미제출로 3개월 시간 허비
③(10월 말~11월 초중순) 한국당의 정유섭 의원 등이 정개특위 회의에서 연동형은 대통령제와 어울리지 않다고 하거나 연동형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하고 중대선거구제 도입 주장 
④(11월16일) 이해찬 대표가 문 의장 주재로 열린 5당 대표 부부 회동에서 1당은 지역구 당선자가 많으니 비례대표 의석을 갖기 어렵다며 연동형에 손사레
⑤(11월23일) 이해찬 대표가 기자간담회에서 어느정도 양보한다는 취지였지 비례대표로 몰아주는 것은 아니고 민주당의 공약은 권역별이었지 연동형이 아니라는 식으로 발언 
⑥(12월5일) 김성태 전 원내대표는 3당의 예산안과 선거제도 동시 타결 주장과 관련 교섭단체 3개 정당끼리 협상하는 중에 도농복합형을 합의문에 명시하자고 강력 주장했고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를 명분으로 협상 결렬 선언
⑦(12월6일) 홍 원내대표와 김 전 원내대표가 3당을 배제한 채 예산안 통과에 합의
⑧(12월7일~29일) 나경원 현 한국당 원내대표를 비롯 소속 의원들이 선거제도로 연동형을 검토할 수 있고 증원 여부를 검토한다는 합의문이라는 점을 내세워 연동형에 합의한 게 아니라고 항변하고 민주당 내부에서도 증원론에 대한 국민 반대 여론을 무기로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회의론 적극 설파
⑨(12월8일 새벽) 양당만으로 2019년도 예산안 469조6000억원이 본회의 통과
⑩(~현재) 민주당이 꾸역꾸역 국회 선진화법 등 입법 절차적 국회 개혁을 핵심으로 증원론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으로 다가왔음에도 장제원 의원 등 한국당은 증원 반대 여론을 신줏단지 삼아 지역구 감소를 비현실적으로 주장하거나 연동형에 대해 회의론 고수  

이런 역경을 거치고 3당은 일단 양당과 함께 1소위에서 1월20일까지 합의문 초안을 도출하기로 데드라인을 설정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①~⑩만 보더라도 양당의 핑퐁이 언제 재현될지 모르기 때문에 1소위 협상만 지켜볼 수 없는 노릇이다. 당장 김재원 의원이 위헌 주장을 꺼내든 것만 봐도 조짐이 없는 게 아니다. 

(사진=박효영 기자)
정동영 대표는 지난해 8월 초 당대표로 취임하자 마자 선거제도 개혁을 제1의 과제로 천명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에 정동영 평화당 대표는 지난 2일 광주광역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20일까지 합의가 불발될 경우를 전제하고 △한국당을 제외하고 4당만의 패스트트랙(신속안건처리) 추진 △공론화위원회 방식의 시민 대표단에 맡기기 등 2가지 플랜B를 제시했다.

정 대표는 “무작위로 5000만 국민 가운데 지역별, 계층별, 나이별, 성별로 300명의 시민 대표단을 구성해서 대통령 직속으로 올 3월부터 11월까지 9개월 동안 3단계로 나눠서 진행하는 것이다. 1단계 3~5월은 집중 학습 기간으로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 미국식 선거제도, 일본식 선거제도, 뉴질랜드 선거제도, 북유럽 선거제도, 네델란드 선거제도 등에 대해 각 나라의 장단점을 충분히 학습한 뒤에 2단계 6~8월 3개월 동안은 사회 경제적 각 집단과 우리 사회 각계각층으로부터 집중적으로 의견을 청취하고 3단계로 9~11월 3개월 동안은 미디어 중계 속 집중 토론을 벌인 뒤 300명 시민 대표단이 투표를 통해서 국회 개혁안과 선거제도 개혁안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단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7일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아직까지는 플랜B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1월20일까지 합의안 초안을 만들어내겠다고 그래도 시한을 얘기한 1소위의 결정에 대해 존중하고 그때까지 정개특위의 논의에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며 합의주의적 신중한 면모를 보여줬다. 

즉 “어느정도 가닥이 잡히면 결단의 문제가 남기 때문에 정개특위 간사들과 원내대표들이 모여서 결단할 필요가 있다”며 “3당이 같이 의논하지만 협상장에는 나 혼자 들어가기 때문에 거대 두 당의 원내대표들을 설득하고 이번에도 선거제도 개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임기가 아직 많이 남은 김관영 원내대표는 3당 중 유일한 교섭단체 원내사령탑으로서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협상의 키를 쥐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임기가 아직 많이 남은 김관영 원내대표는 3당 중 유일한 교섭단체 원내사령탑으로서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협상의 키를 쥐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정개특위 협상을 치열하게 하는 것과 만약을 대비해서 플랜B를 준비하는 것 둘 다 어찌보면 3당의 역할 분담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봐야할 것 같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8일 오전 기자에게 메시지를 보내 “패스트트랙 얘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인 것 같다”며 그날 예정된 바른미래연구원 선거제도 토론회에서 패널로 발표할 토론문을 미리 보내줬다.

하승수 위원장은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을 만큼 그동안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누구보다 노력해왔다. (사진=박효영 기자)
하승수 위원장은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을 만큼 그동안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누구보다 노력해왔다. (사진=박효영 기자)

하 위원장은 토론문을 통해 “선거제도는 합의 처리를 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지만 헌법과 국회법을 보면 아무런 근거가 없는 얘기다. 따라서 2019년 1월 말로 정해진 5당의 선거제도 개혁 합의 시한이 지나면 합의에 얽매일 이유가 없다. 그때에는 패스트트랙을 추진해야 한다. 정개특위 5분의 3의 동의가 있으면 된다. 결국 선거제도 개혁은 민주당의 의지에 달려있다. 유치원 3법을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할 수 있다면 공직선거법도 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의지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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