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운대학교 베트남학과 이윤범 교수(자료사진)
이윤범 청운대 교수

[중앙뉴스=이윤범] 지난 1월 26일 태국 공항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태국에서 출국하는 한국 여성이 보안대를 빠져나오면서 검색대의 보안요원의 뺨을 때리는 동영상이 한국 모 TV방송 뉴스시간에 방영되었다.

여성 보안요원의 뺨을 왜 때렸는지 자세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서양에서는 바로 체포로 이어 질 수 있는 공무 근무자 폭행 사건이었다. 그 때 뉴스 내용에 의하면 태국 공항 당국에서는 국격을 고려해서 한화 약 3만 5천 원 정도의 벌금을 받고 한국인을 출국시켰다고 한다.

또 지난 1월 초 베트남 호찌민 공항에서 직접 목격한 일이다. 밤늦게 한국으로 출발하는 베트남 국적 비행기를 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승객은 대부분 한국인들이었다.

그런데 개찰구 입구가 매우 소란스러웠다. 갑자기 중년의 한국인 승객이 베트남인 여승무원에게 한국말로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놀라서 어리둥절하게 쳐다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승객은 표를 낚아채듯이 하여 들어가 버렸다.

최근 몇 년 동안 베트남에는 한국인 방문자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거주하는 한국인도 공식적으로는 하노이에 5만 명 정도, 호찌민시에 10만 명 정도로 발표되고 있다. 한국의 기업 5000개 이상이 베트남에서 활동을 하고 있으니 한국인이 증가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기업 활동과는 관계없이 마치 한국인에게는 베트남이 블루오션 같은 의미로 인식되어 비공식적으로 25~30만 명 정도의 한국인들이 베트남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사실 한국이 베트남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한국군이 베트남 전에 참전하였지만 참전 용사들의 피와 땀은 잊히고, 현지인들에게 행했던 영웅담만 난무하였다. 다분히 개인적인 그런 이야기들은 베트남인들 입장에서 보면 굴욕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1975년 베트남이 통일을 이루었을 때 반공 의식이 철저한 우리에게는 남부베트남이 망했다는 시각으로 보여 졌고, 베트남은 영영 먼 나라가 되어 우리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1986년 베트남이 경제개혁과 개방정책을 발표하면서 베트남은 다시 우리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남북베트남을 사회주의화 시키는 통합 과정에서 경제에 실패한 베트남 정부가 경제부문에 자본주의를 도입한 것이다. 다시 베트남은 서서히 우리의 관심을 받는 국가로 부상하였고, 저임금과 노동의 질이 우수하다고 알려지면서 한국기업들이 대거 베트남으로 진출하였다.

뒤이어 수많은 한국인들이 베트남을 방문하기 시작했고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도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그 중에서는 접대문화도 한 몫을 했다. 이런 문화는 마치 베트남 전쟁에서 일어났던 영웅담처럼 한국인에게 입소문으로 퍼져나갔다. 이런 형태는 바로 갑질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는 비단 베트남뿐만 아니다. 이미 동남아 필리핀에서 보여준 일부 한국인들의 추태가 무수히 전파를 타기도 했다.

한국인들이 필리핀에서 보여준 추태는 한마디로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오만함이 그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이런 행위는 베트남에서도 크게 차이가 없다.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나라도 아닌데도 한국은 부자의 나라이고 동남아시아 국가는 가난하다는 일부 한국인의 선입견과 고정관념이 크게 작용하였다. 이런 관념은 곧 상대를 비하하는 행위로 이어졌다. 아마 전쟁을 겪으면서 지독히 가난했던 나라가 급속히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잠재되었던 열등감이 약한 상대를 만났을 때 표출되는 오만함이 아닐까도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가 외국인을 대하는 모습을 잘 나타내주는 동영상이 우리의 이중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강남 큰 거리에서 길을 물어보는 백인과 동남아인에게 보여주는 한국인의 반응을 조사한 영상인데 우리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다. 길을 물어보는 백인에 대해서는 과도한 친절을 베풀면서 동남아인에게는 거의 무반응 내지는 무시하는 것을 보여주는 생생한 영상이다.

우리는 70년대에 일본인들이 기생관광이라는 명목으로 한국을 대거 방문한 적이 있다. 달러를 벌어들인다는 현실 때문에 정부도 손을 놓고 바라보기만 했어야 했던 아픈 기억이 생생하다. 이제 경제발전을 이룬 우리가 똑같은 모습으로 좀 더 약한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산업화 과정에서 세계적으로 유래가 드물 정도로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이 성장통과 같은 이런 어두운 모습을 치유할 의식이 있었는지도 되돌아 볼 문제다. 물론 우리의 경제적인 성취는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극복하고 이루어낸 쾌거가 아닐 수 없다. 단지 그 이면에 잠재된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한 채 우리의 의식이 경제발전의 속도를  쫒아가지 못했다.

요즘에 베트남전쟁 동안 한국군에 당한 베트남인들의 기사가 서서히 노출되고 있다. 한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 사례며, 한국군에 당한 성폭력 사건들이 줄을 잇고 있다. 심지어 아이 3명 모두 한국군의 강간에 의해 출생했다는 기사도 나오고 있다. 우리의 과거를 한번 돌이켜 볼 시점이다.

세계적으로 높은 산을 오를 때 등산가들은 모두 산에 오르는 이유를 설명한다. 어떤 이는 정복한다 하고, 어떤 이는 입산한다고 하고, 어떤 이는 산이 있어서 오른다고 한다. 각자의 말은 달라도 이들 모두 한결같이 대자연 앞에서 경외심을 느낀다고 한다. 그 말은 겸손해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높은 산을 오를 때 겸손의 의미로 “극복”이라고 하면 어떨까? 우리 모두가 대자연을 정복하기보다 극복하는 과정이라 겸손해 한다면 우리의 갑질도 사라질 것이다.

이 윤 범

청운대학교 베트남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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