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욱, 김병옥, 손승원, 부장판사의 사례
음주운전에 대한 동정론
참작될 음주운전은 없다
징역 5년과 3년의 중요성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최근 배우 안재욱씨(10일)와 김병옥씨(12일)가 음주운전으로 적발됐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13일에는 대법원이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김모 부장판사를 감봉 1개월에 처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솜방망이 처분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지난해 12월28일 음주운전 뺑소니로 적발된 배우 손승원씨는 11일 열린 첫 공판에서 보석을 요청해 논란이 됐다. 

윤창호법이 통과됐음에도 연예인들의 음주운전 적발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안재욱씨, 김병옥씨, 손승원씨. (사진=연합뉴스 제공)

4가지 사건 모두 음주운전 범죄의 특성과 직결돼 있다. 작년 말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던 윤창호법은 음주운전치사의 하한선을 징역 3년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故 윤창호씨의 친구들은 윤창호법 제정을 주도하면서 거듭 징역 5년 이상을 하한선으로 요구했었다. 3년과 5년의 차이는 결국 법적 처벌의 실효성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음주운전에 대한 사회의 인식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음주운전 범죄는 다른 범죄와 달리 행위 자체가 타인의 피해로 직결되지 않고 중간에 임의성이 개입한다. 음주운전을 하면 의도치 않게 누군가를 죽게 하거나 다치게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현저히 높아지지만 그것은 운이 좋으면 아무도 안 다칠 수 있다는 말도 된다. 

사실 법적으로 누군가를 해칠 고의를 갖고 음주운전을 했다는 것은 입증되기 어렵고 실제 그런 사람도 없다. 형법은 고의성이 없으면 강하게 처벌하지 않고 있고 음주운전 범죄는 솜방망이로 처벌되기 일쑤다. 범죄 내용 면에서도 누구나 술먹고 운전대를 잡을 수 있다는 정상이 참작될 여지가 많아서 근절되지 않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두 번의 음주운전을 저지른 안재욱씨. (사진=연합뉴스 제공)

안씨는 9일 전북 전주에서 뮤지컬 공연을 마치고 동료들과 뒤풀이 술자리를 가졌다. 한 숨 잤는지 사실상 밤을 샜는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다음날(10일) 오전 차를 몰고 서울로 향하다가 적발됐다. 

안씨와 소속사는 임박한 부산 뮤지컬 공연 외에는 예정된 공연 일정 모두를 취소했고 입장문을 내고 거듭 사과 의사를 표했다. 하루 지나고 운전대를 잡았다는 점에서 일부 동정론도 있지만 스스로 “숙소로 복귀 후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라고 밝혔고 혈중알콜농도 0.096%가 말해주듯 전혀 술이 깨지 않은 상태로 200km를 운전했기 때문에 변명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이영미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지난해 12월19일 방송된 tvn <쿨까당>에서 “(과음한 다음날) 16시~17시쯤 되면 (알콜) 분해가 됐다고 보면 된다. 체중 70kg의 성인 남성 기준으로 했을 때 소주 한 병에 들어있는 알콜이 분해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잔수 시간 정도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소주잔 기준으로 소주 1병은 8잔이다. 즉 소주 1병 반을 마셨다면 12시간 정도 지나야 운전대를 잡을 수 있다.

술을 먹지 않고 운전해도 언제든지 사고가 날 수 있다. 또한 술을 먹고 몇 백미터만 운전해도 사고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안씨의 음주운전 사례는 결코 가볍게 여기기 어렵다. 더구나 안씨는 이미 2003년에 음주운전 사고를 낸 전력이 있다. 

김병옥씨는 대리운전으로 주차장까지 왔지만 주차를 하기 위해 음주운전을 했다. (캡처사진=KBS)
김병옥씨는 대리운전으로 주차장까지 왔지만 주차를 하기 위해 음주운전을 했다. (캡처사진=KBS)

김씨에게도 동정론이 일고 있다. 

김씨는 12일 새벽 1시 즈음 경기도 부천 아파트 지상 주차장에서 주차를 하기 위해 음주운전을 하다가 적발됐다. 알콜농도는 0.085%였다. 김씨는 대리운전을 불러서 주차장까지 왔다고 진술했다. 이런 전후 관계가 알려지자 대리기사가 팁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해서 일부러 신고했다는 등의 동정론이 형성됐다. 확인된 사실은 없다. 김씨의 소속사도 변명의 여지없이 책임을 통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생각해보면 대리기사가 부당한 요구를 했더라도 그게 음주운전을 정당화해줄 수 없다. 소위 문콕(문을 열다가 옆 차 문에 흠집내기)이나 작은 접촉 피해를 야기할 수 있고 그때 어린 아이가 주차장을 지나가고 있었다면 얼마든지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야간 근무 경비원에게 부탁하거나 집에 다른 운전 가능자를 불렀을 수도 있었다. 더구나 김씨의 차량이 너무 비정상적으로 주차돼 있어서 신고됐기 때문에 이미 음주 주차의 피해는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음주운전에 적발되기 전에 많은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인지도를 쌓고 있었던 손씨. (캡처사진=jtbc)

손씨는 2018년 12월26일 새벽 4시20분 서울 강남구 사거리에서 술을 먹고 부친 소유 벤츠 차량을 몰다가 다른 차를 들이받았다. 극장 건물 골목에서 5차로 도로로 좌회전을 하려다가 들이받은 것인데 손씨는 △알콜농도 0.206% 심각한 만취 상태였고 △차에 타고 있던 사람 2명에게 경미한 부상을 입혔고 △뒤처리 없이 150m를 도망갔고 △급하게 도망치느라 중앙선을 넘어 난폭운전을 했고 △무면허 상태였고 △이번이 4번째 음주운전이었다. 손씨 차량은 이를 목격한 시민과 택시에 가로막혔고 바로 경찰에 인계됐다. 죄질이 심히 불량했기 때문에 지난 1월2일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손씨와 변호인은 11일 열린 공판에서 재판부에 보석을 요청했다. 공소 사실을 다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고 다시는 음주운전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고 공황장애로 인해 입대도 무산됐다는 점이 거론됐다. 하지만 4번의 음주운전 끝에 첫 윤창호법 적용 대상이 된 연예인이라는 점에서 비난가능성이 매우 높다. 무엇보다 △과거 음주운전이 적발된지 얼마 안 돼서 뮤지컬 출연 강행 △동승자였던 후배 뮤지컬 배우 정휘씨에게 이번에 걸리면 큰 일나니 음주운전 사실을 떠넘기려했다는 점 등이 알려져서 재판부가 보석 신청을 받아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손씨는 차를 몰고 술 자리에 다녔던 습관이 형성된지 오래이고 이번에 경미한 인명 피해를 내서 그렇지 얼마든지 누군가를 죽게 만들 수도 있었다. 그 전에 강력하게 처벌됐다면 손씨는 4번이나 음주운전을 반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 젊은 배우 손씨의 남은 삶을 위해서라도 이번에 제대로 처벌받고 보석 신청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윤창호법 통과를 위해 작년 말 국회를 수 차례 찾았던 윤씨의 친구들. (사진=박효영 기자)

김 판사는 2018년 7월3일 자정이 넘은 시각 서울에서 경기 시흥까지 무려 15km를 음주운전했다. 알콜농도는 0.092%였다. 대법원은 판사로서 법원의 품위를 손상했다면서도 고작 감봉 1개월 처분을 내렸다. 보통 0.1%에 가까울수록 술에 상당히 취했다고 여겨지는데 김 판사는 운이 좋아서 그렇지 누군가를 중상해에 이르게 할 수도 있었다. 앞서 연예인들은 그저 유명인에 불과하고 김 판사는 명백한 공인인데 언론상에 익명으로만 알려졌다. 정직이 아닌 감봉이기 때문에 김 판사는 음주운전 사건의 재판을 얼마든지 맡을 수도 있다. 음주운전 전력이 있는 판사가 음주운전 피고인을 재판한다면 과연 그게 적절한 것인지 의문이다. 

일련의 사건들을 토대로 봤을 때 결국 음주운전에 대한 인식이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음주운전은 살인 행위”라는 구호가 자주 회자되지만 아직까지 실수라고 보는 인식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법제사법위원회 간사)은 지난해 11월28일 열린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음주운전치사죄의 경우에도 사망의 결과에 대해서는 과실범임이 명백하고 현재 우리 형법 체계 하에서 같은 사망의 결과가 발생한 상해치사죄, 유기치사죄 등의 법정형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해당되기 때문에 적어도 과실범인 음주운전치사죄의 형량이 고의형에 가까운 상해치사죄나 아니면 유기치사죄의 형량보다 초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송 의원은 과실범이라는 이유로 법적 형평성을 주장했지만 故 윤창호씨의 친구 김민진씨는 11월29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지금 법사위에서 3년으로 낮춘 것은 법적 형평성 때문이라고 알고 있는데 사실 저희가 처음부터 5년 이상을 주장했던 것도 다른 관점에서의 법적 형평성 때문이었다”며 “법사위 위원께서 주장하는 법적 형평성은 법 조문상의 형평성을 말하는 거고 저희는 양형 기준에서 실제 판례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를 착안해서 형평을 주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상해치사는 살인에 대한 고의는 없지만 상해를 입힐 때 고의는 인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똑같이 하한선이 3년이어도 집행유예가 아니라 실형을 받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런데 이렇게 같은 하한선을 했을 경우 음주운전치사는 그 고의성을 입증하기가 매우 어렵다. 과실범으로 분류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저희가 상해치사보다 법 조문상에서 하한선은 높지만 실제 양형에 들어갔을 때 집행유예가 선고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처음부터 5년을 주장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직접 법안을 만들어서 299명 국회의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던 친구들. 그 메일에 호응했던 하태경 의원. (사진=박효영 기자)

친구들이 보기에 음주운전 범죄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과실로 치부돼 법적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인데 가장 무거운 음주운전치사의 경우에도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아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사례가 잦다. 술을 먹고 운전대를 잡는 순간 사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용인했다고 보고(미필적 고의) 그에 맞게 제대로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 친구들의 주장이다. 

작가 조승연씨는 지난해 12월2일 방송된 jtbc <썰전>에서 “내가 미시간주(미국)에서 운전면허를 딸 때 그때 운전 선생님이 해준 이야기가 술을 먹고 운전대를 잡는 건 사람을 죽일 의도가 있다고 해석한다. 법 해석을. 그래서 혈중알콜농도가 0.1%가 넘는다고 하면 미시간주에서는 음주운전죄로 처벌이 되는 게 아니라 살인미수로 처벌된다. 그 얘기를 갖다가 운전 교육 때 한 번 해주고 난 다음에 내 친구들 중에 음주운전을 한 친구는 아무도 없다. 살인미수죄를 무릅쓰고 한 잔 먹었으니까 괜찮아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밝혔다.

현재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과 친구들은 예방에 초점을 맞춘 윤창호법 2를 준비하고 있는데 윤창호법 1의 인식 기반이 여전히 음주운전은 과실이라는 것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동시에 재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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