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미래당의 신중론 
민주당의 진의 파악 기준
먼저 패스트트랙 올리고 협상
일단 올리면 다른 안 협상 어려워
오세훈도 전면 거부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바른미래당은 신중했다. 21일 아침 국회에서 바른미래당 의원총회가 열렸다. 선거제도 개혁안을 패스트트랙(지정 이후 330일 지나면 본회의 의무 표결)에 올릴지 말지가 의제였다. 유일하게 자체 모델을 내지 않고 있는 자유한국당을 더 이상 기다리기 어렵고 더불어민주당까지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진의를 쉽게 믿을 수 없다는 것이 바른미래당의 잠정 결론이었다. 

시민사회에서 선거제도 개혁 이슈를 주도하고 있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정치개혁공동행동 공동대표)은 더 이상 기다리기 어렵고 하루 빨리 패스트트랙에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었지만 이날 바른미래당 지도부와 면담을 한 뒤 바른미래당의 입장을 존중하고 싶다고 전했다.

하 위원장은 기자와의 메시지 교환을 통해 “바른미래당 입장에 공감가는 면이 있다. 민주당이 짝퉁 연동형이 아니라 온전한 연동형에 근접한 방안을 제시하고 끝까지 관철시키겠다는 진정성만 보여주면 얼마든지 패스트트랙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라서 결국 민주당의 의지에 달려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하승수 위원장은 패스트트랙을 오래 전부터 주장해왔지만 바른미래당의 현실적 고민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직후 기자들에게 “지금은 너무 포괄적이다. 최종적으로 패스트트랙 지정에 동참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당 지도부와 원내 지도부가 긴밀하게 의논한 다음 조만간 의총을 다시 열고 의견을 모아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가 민주당으로부터 확인할 사항은 ①구체적으로 어떤 선거제도 안을 제시할지(의원정수와 지역구 의석 감축 방안 등) ②패스트트랙 이후 2020년 본회의에서 표결에 동참해서 의결정족수를 채울 수 있을지 등이다. 

이미 민주당은 소위 한국식 연동형 비례대표제(준·복합·보정)를 당론으로 제시했지만 3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의 온전한 연동형(정당 득표율로 확보 의석수를 픽스)과는 차이가 크다. 

김 원내대표는 “기존 3당이 주장한 안과 민주당의 안을 갖고 이야기를 해봐야할 것이다. 단일안을 만드는 것은 사실 결단만 내리면 하루면 된다”고 강조했다. 

하 위원장도 기자와의 통화에서 패스트트랙으로 가게 되면 민주당의 짝퉁 연동형 3가지 중 하나로 갈 수밖에 없는 지점이 있지만 시민사회와 원외 정당은 총력을 다해 최대한 온전한 연동형으로 협상될 수 있도록 압박하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김관영 원내대표는 국회 안에서 그동안 협상과 중재를 중시해왔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한국당은 이미 논외로 된지 오래다. 전당대회 시즌이라 선거제도 모델을 논의할 여유가 없을뿐더러 당권 주자들도 전혀 언급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극우 친박 후보인 황교안 전 국무총리와 김진태 의원은 물론이고 개혁 보수를 내세우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마저 15일 보도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총선 전에 선거제 개혁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하면 우리 당 의석수가 줄어드는데 어느 당이 제도를 바꿔 의석수를 거저 내주나”라고 밝혔다.

이런 상황이라 한국당을 배제하는 패스트트랙이 거론됐는데 정작 이 소식이 알려지자 한국당으로부터 “의회 민주주의 문 닫는 일”이라거나 “의원직 총사퇴”라는 강경 반응이 나왔다. 

작년 12월 5당 원내대표의 합의문에 따르면 1월 임시국회 안(2월17일까지)에 선거제도 개혁안을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돼 있다. 

정의당 소속 이기중 구의원(서울시 관악구의회)은 19일 페이스북을 통해 “약속 시간은 다가오는데 무슨 메뉴를 먹고 싶다 말도 안하고 있던 사람이 나머지 사람들이 이제 빨리 결정하자고 하니까 왜 나만 빼놓고 니들끼리 메뉴를 정하냐. 난 밥 안 먹겠다. 아니 거기 가서 밥상 엎어버리겠다고 화를 내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21일 심상정 정개특위위원장이 국회에서 '선거제도 개혁 실현을 위한 시민단체 간담회'에 앞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1일 심상정 의원이 <선거제도 개혁 실현을 위한 시민단체 간담회>에 앞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도 21일 오전 <선거제도 개혁 실현을 위한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당의 몽니와 개혁 외면에 끌려다닐 수 없다. 한국당이 계속 내부 일정을 이유로 미루지 말고 선거제 개혁에 대한 입장과 타임 스케줄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지금 일방적으로 빗장을 걸어 잠그고 개혁을 발목 잡아 미래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게 도대체 누구냐.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패스트트랙 제도도 불법이나 탈법이 아닌 합법적 수단이다.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차이를 좁혀간다는 전제 위에 합의 정신이 있는 것이다. 한국당은 안도 내놓지 않고 1월 말까지 합의하기로 한 것을 이행하지 못한 데 대해 어떤 사과나 유감 표명도 없고 전당대회가 끝나고 보자는 막연한 이야기만 하고 있다. 특히 한국당 당권 주자들 입에서 선거제도의 ‘선’자도 들어보지 못 했다. 선거제는 경쟁의 룰이니 합의를 통해서 하자고 하지만 그것도 링 안에 들어올 때 합의를 하는 것이지 아예 안도 내놓지 않고 어깃장 놓으며 논의 자체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합의 전통을 말할 자격이 없다. 패스트트랙을 하기 위해서 선거법 개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개혁의 실종을 막기 위한 장치가 패스트트랙이다.” 

하 위원장도 17일 출고된 경향신문 기고를 통해 “한국당과 협상하려고 해도 이 정도의 카드를 밀어붙여야 협상이 된다. 패스트트랙으로 접어들었는데도 한국당이 협상에 참여하지 않으면 한국당의 의견은 배제될 수밖에 없다. 국회 본회의 표결은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이므로 한국당을 빼고도 통과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한국당이 이런 상황을 견디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즉 “한국당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서라도 패스트트랙이라는 카드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김수민 원내대변인은 바른미래당의 정국 주도권에 대한 현실론을 설명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결국 민주당이 얼마나 전향적인 태도로 나오느냐가 중요하겠지만 바른미래당이 어떤 결단을 내릴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수민 바른미래당 원내대변인은 20일 저녁 기자와의 통화에서 “우리가 민주당이랑 3당과 공조를 하게 되면 앞으로 패스트트랙 기간에는 주도권을 민주당이 끌고 가는 것이다. 민주당이 제일 크니까. 바른미래당이 양당을 조율할 수 있는 중간자로서의 레버리지(지렛대)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바른미래당이 그동안 공전되는 국회를 정상화시켜왔고 양당이 서로 싸울 때마다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는데 그걸 할 수 없게 된다”며 현실적인 고민을 이야기했다. 

향후 △패스트트랙을 올리기 전 민주당과 3당의 합의 △한국당 반발에 대응 등 바른미래당이 역할을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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