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이 투표하는 것이 의미있어
학제개편 논리는 매우 고약
청소년 참정권의 의미
학교의 정치화에 대한 우려 속뜻은?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작년 2월1일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연설을 통해서 이렇게 말했다.

“선거 연령 하향과 사회적 평등권 확대에 결코 소흘하지 않을 것이다. 선거 연령 하향에 따른 학교의 정치화에 대한 우려는 취학 연령 하향으로 불식해 가도록 할 것이다. 조기 취학은 18세 유권자가 교복입고 투표하는 상황도 초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유아 학부모들의 보육 부담을 완화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당시 보수 정당이 선거권 연령을 18세로 하향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한 것에 반색해서 전향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청소년 인권 운동가의 입장에서 보면 더 고약해졌다. 김 전 원내대표의 연설 이후 이러한 한국당의 당론이 공식화됐다. 즉 취학 연령을 1년 낮추거나 중학교 기간을 2년으로 줄이는 학제개편을 완료한 뒤 18세로 하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민진 위원장은 청소년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강민진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5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교실의 정치화 논란과 청소년 참정권>에 발제자로 참석해서 “(한국당이) 해외나 다른 여타 권리나 의무를 보더라도 선거권을 18세로 낮추면 안 되는 논리적 근거들을 찾을 수 없으니까 18세는 투표할 수 있는데 고등학생은 안 된다. 학생이니까 교육을 받아야 하니까. 이 논리로 전환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강 위원장은 이런 한국당의 주장에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먼저 “학제개편이 다 완료된 뒤에 선거 연령을 하향한다고 하면 초등학교 입학 연령부터 당겨져야 하니까 (한국 나이 기준) 8세에 입학해서 18세에 졸업하려면 시간이 10년 걸린다. 선거 연령은 10년 후에나 하겠다는 것”이라는 지점이 있고 두 번째는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투표하면 우리는 청소년 인권과 지위를 위해 선거연령 하향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것은 청소년의 범주가 옮겨지는 그런 결과가 된다”는 설명이다.  

강 위원장은 “그런 측면에서 (한국당이) 우리 운동을 어떻게 무력화시키는지 잘 알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한국당이 학제개편 로드맵을 제시하거나 정말 선거권 연령을 하향하겠다고 의지를 보인 것도 전혀 아니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날 토론회에서는 한국당의 학교의 정치화 주장을 반박하는 논리들이 넘쳐났다. (사진=박효영 기자)

장능인 전 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 청년 대변인은 2월13일 국회에서 기자와 만나 “원래 그 학제개편과 연계해서 18세로 하향하자는 당론을 처음 만들 때 그 아이디어를 내가 냈다. 인명진 비대위원장(2016년 12월23일~2017년 3월29일)이 있었을 때”라고 말했고 강 위원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청년 대변인이 뭔가 절충 아이디어를 낸 것 같지만) 더 야속하고 얄밉다”고 평했다. 

참정권은 단순히 투표할 수 있는 권리를 넘어 당사자의 자기결정권 및 국가로부터 보장받아야 할 주권적 가치와 결부된다. 100여년 전 유럽 사회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은 여성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 전반을 맥락으로 담고 있다. 작년 상반기에 6.13 지방선거 투표권 쟁취를 위해 활동했던 청소년들은 이런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한국 청소년은 입시위주교육에 따른 일상적 폭력의 피해자로서 권리 실현의 유예를 강요받고 있기 때문에 선거권을 하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만 졸업하고 성인이 되면 끝이라는 것이 아니라 지속되는 청소년의 권리 침해 상태를 바로잡기 위한 차원으로 일종의 선구자(Pioneer) 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제정연대는 청소년을 억압하는 공간으로서 학교, 신분으로서 학생, 유니폼인 교복의 테두리를 유지하면서 투표를 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고 그런만큼 한국당의 논리와 정면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일부 전향적인 판단을 하는 구성원들도 있지만 한국당은 아직 뭘 모르고 미성숙한 학생에게 투표권을 주면 안 되고 더구나 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그러면 정치적 편향성에 휩쓸린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청소년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선거권 연령 하향 운동을 하고 있다는 강 위원장. (사진=박효영 기자)
청소년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선거권 연령 하향 운동을 하고 있다는 강 위원장. (사진=박효영 기자)

강 위원장은 “한국보다 고등학교 졸업 연령이 빠른 국가들도 있지만 더 늦은 국가들도 있다. 18세인 국가들과 더불어서 지방선거 투표권은 16세 등 더 낮게 부여하는 국가들이 많다. 이미 전세계적으로도 투표하는 고등학생들은 많다”고 밝혔다.

현재 상황을 보면 선거제도 개혁과 선거권 연령 하향은 묶여서 가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한국당을 제외한 4당의 패스트트랙(지정하고 330일 이후 본회의 표결) 대상이 됐고 곧 현실화 될 것으로 보인다. 심상정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이미 연동형과 18세 하향 개정안을 동시에 패스트트랙에 올려야 한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럼에도 강 위원장은 “(패스트트랙이 가시화되면 한국당과 접촉할 필요가 없는 것인지에 대해) 그렇지 않다. 330일 이전에라도 빨리 합의돼서 처리될 수도 있고 무엇보다 한국당의 인식 변화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한국당 전당대회 현장에서 피켓 시위를 한 강 위원장과 활동가. (사진=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제공)

그런 차원에서 강 위원장은 2월27일 열린 한국당 전당대회(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 가서 피켓 시위를 했다. 사전에 청년 최고위원 후보자들에게 이메일 질의서를 보냈지만 그 누구에게도 답장을 받지 못 했다.

무엇보다 정현호 전 청년 비대위원, 최민창 전 청소년특별위원회 위원, 김선동 의원(전 여의도연구원장) 등이 한국당의 기존 입장과는 달리 학제개편 없이도 하향할 수 있다는 목소리를 낸 것으로 확인됐지만 청소년 운동가들과의 면담 제안에는 다들 소극적이었다. 

이와 관련 강 위원장은 “한국당을 비롯해서 반대쪽에서는 한국 교육의 특수성을 부각한다. 중요한 것은 선거 연령을 하향해서 청소년의 지위를 변화시키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한국 학교 환경의 변화를 말한다. 학교 현실이 변화해야 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더 많은 권리가 부여돼야 하고 청소년 참정권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반대쪽에서는 한국 학교가 이렇기 때문에 참정권을 주면 안 된다고 한다”고 꼬집었다. 

학교의 정치화 우려에 대해 강 위원장은 “이전에는 무정치의 공간이었던 학교가 새롭게 정치화된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정치적 몫이 없었던 학생들이 그 몫을 쟁취해나가면서 학교를 둘러싼 정치적 판도를 변화시키는 문제이고 이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당의) 속뜻은 이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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