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로서 여성의 권리를 위하여
노회찬의 뜻 이어가는 재단
정의당에게 찾아와라
청소노동자의 기억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故 노회찬 의원은 2005년부터 매년 3월8일 여성의날에 장미꽃을 준비했다. 노 의원이 여성들에게 건네는 장미꽃은 성평등의 가치를 일깨우고 사회적 약자로서 여성들과 연대하겠다는 마음이 담겨있다. 노회찬재단이 올해 여성의날을 맞아 노 의원의 뜻을 이어가기로 했다.

조승수 노회찬재단 사무총장과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는 7일 오전 국회도서관에서 청소 노동자들에게 장미꽃을 전달했다. 국회 청소 노동자의 대다수는 중년 여성이다.

윤소하 원내대표는 노회찬 의원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장미꽃을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윤 원내대표는 연단에 서서 “말로만 지구의 절반이 여성이라고 하지 말고 실천해야 한다”며 장미꽃을 전달했던 노 의원의 메시지를 풀어냈다.

윤 원내대표는 “(100여년 전 미국) 섬유공장에서 여성 노동자가 화재가 나서 돌아가셨다. 그 당시 뉴욕에서 여성들이 든 한 손의 빵은 노동자의 임금을 이야기한 것이고 한 손의 꽃은 선거권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여성의날을 기념하면서 여러분들도 모두가 같이 평등하게 잘 살아가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908년 3월8일 뉴욕 러트거스 광장에 모인 1만여명의 여성 노동자들은 참정권과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했다. 그날의 상징성을 기리기 위해 여성의날이 탄생했다. 4년 후 1912년 미국 로렌스 섬유공장에서는 파업을 선언한 여성 노동자들이 빵과 장미꽃을 원한다고 외쳤다. 윤 원내대표의 설명처럼 빵은 차별받지 않는 노동권을, 장미꽃은 여성에게 없었던 참정권을 의미했다. 노 의원이 건네준 장미꽃은 그런 뜻을 담고 있다.

윤 원내대표는 “정의당이 그렇게 하겠다. 노회찬 의원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여러분들을 찾아왔다. 여러분들 앞에 서있는 사람이 노회찬이다. 이렇게 생각해주시고 마음을 받아주셨으면 좋겠다. 여러분 어려울 때 와달라. 노동조합이든 처우든 인권이든 국회에서도 제대로 안 되는 게 많다. 오셔서 정의당과 늘 상의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내가 제일 처음 국회에 들어왔을 때 여러분에게 장아찌를 조금 갖다줬더니 저쪽에서는 왜 우리는 안 주는가 그러더라. 그거 지리산에서 온 것이다. 그때 못 드린 장아찌를 준비해서 여러분들에게 다시 드리겠다. 여러분들 늘 고생하시는데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드리겠다”면서 웃음을 보였다.  

장미꽃을 받고 있는 모습. (사진=박효영 기자)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윤 원내대표. (사진=박효영 기자)
노동자의 민원을 들어주고 있는 윤 원내대표. (사진=박효영 기자)

윤 원내대표는 강당을 나오는 청소 노동자들에게 일일이 장미꽃을 건네며 정답게 웃었다.

노 의원은 2012년 정의당 초대 당대표를 수락하면서 매일 새벽 고단한 몸을 이끌고 6411번 버스에 올라타는 노동자들의 삶을 묘사했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 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이분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 같은 사람을 찾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들 눈앞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손이 닿는 곳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소리가 들리는 곳에 과연 있었습니까. 그 누구 탓도 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만들어 나가는 이 진보정당. 대한민국을 실제로 움직여온 수많은 투명인간들을 위해 존재할 때 그 일말의 의의를 우리는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매년 노 의원에게 장미꽃을 받았다던 청소 노동자 A씨는 기자에게 “(노 의원을 생전에) 많이 만났다. 식당에서 밥도 같이 먹고 많이 사주시고 그랬다. 여기 노동자들은 많이 뵙고 해마다 챙겨주시고 그랬다. 10년 전부터 봤고 그분은 우리와 많이 접하려고 그랬다. 항상 가까이에 있으려고 하셨다. 가장 친밀하게 해마다 그러셨다. 함께하셨다. 그들(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하려고 했다”며 노 의원에 대한 기억을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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