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여당의 원내대표
3개 채널 소통 전략과 포부
기본소득 언급
386 운동권 이미지 탈피 노력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역시 선거 중에 가장 예측이 어려운 것이 원내대표 선거다. 당초 기자들 사이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차기 원내대표로 김태년 의원(3선)이 유력했지만 결과는 그게 아니었다. 이인영 의원(3선)이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이 원내대표는 8일 오후 국회에서 진행된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 결과(1차 54표·2차 76표) 모두의 예상을 깨고 원내 사령탑 자리에 올랐다.

이인영 신임 원내대표가 당선 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노웅래 의원(3선)을 비롯 세 후보는 정견 발표 때까지 혼신의 힘을 다했다. 노 의원은 세 번째 도전인 만큼 당선을 위해 별도의 팜플렛을 제작해 배포하고 목청껏 “이해찬 대표의 한 푼 줍쇼”를 패러디하면서 호소했지만 1차 투표에서 3위로 고배를 마셨다. 

이 의원은 “말 잘 듣는 남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원내대표 출마한다고 하니까 머리부터 발 끝까지 너부터 바뀌어라. 이렇게 말씀하더라. 보시라. 머리부터 바꿨다. 벌써 말 잘 듣지 않는가. 발 끝까지 바꾸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원내대표는 의원들 개개인에게 역할을 잘 부여해야 하는데 이 원내대표는 “젊은 층의 요구를 더 민감하게 수용해야 한다”면서 “프랑스의 디지털경제 장관은 38세의 세드리크 오이다. 한 마디로 박주민·김해영 최고위원, 강병원·강훈식·김병관·박용진·이재정·전재수·제윤경 의원이 그보다 못 할 이유가 없다. 우리 당의 70년대생 의원들의 이름은 우리 당의 또 다른 이름 미래”라고 추켜세웠고 좌중에서는 폭소가 터져나왔다.

이어 “여러분들이 미래의 행동 그룹을 조직하면 나는 돕겠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3D 프린터, 자율주행자동차, 드론, 로봇, 공유경제가 몰고 올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과제를 주도하도록 뒷받침하겠다. 규제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제약이 된다면 최운열 의원이 말씀했듯이 규제 빅딜을 추진해서라도 길을 열어 주겠다”고 공언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투표를 하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 법률에 따라 현직 의원은 장관직을 겸할 수 있는 만큼 원내대표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날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유은혜 교육부 장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직접 투표를 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원내대표의 소통 능력은 크게 △소속 의원 △정부와 청와대 △야당 등 3가지 채널로 발휘될 필요가 있는데 이 원내대표는 “원내대표 개인의 독주를 절대 고독한 결단이라 포장하지 않겠다. 의원총회는 꼬박꼬박 하고 무슨 얘기도 다 할 수 있도록 실질화하겠다. 일상에서 소통하기 위해 하루 한 끼는 반드시 의원들과 개별적으로 나누겠다”고 약속했다.

더 나아가 “나한테 늘 걱정하는 게 협상 잘 할 거냐. 이런 것인데 내가 협상하지 않고 우리 의원들 128명 전체가 협상한다는 이런 마음으로 움직이겠다. 늘 지혜를 구하고 우리 의총이 협상이 마지막 단계가 될 수 있도록 집단 사고와 집단 생각을 통해 협상을 펴나가도록 하겠다. 그러면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이 패스트트랙(지정하고 330일 이후 본회의 표결) 정국 이후 대외 투쟁에 올인하면서 야당과의 관계 설정이 중요해졌는데 이 원내대표는 “원내대표의 또 다른 이름은 협상이라는 걸 잘 안다. 여당의 품격을 지키면서도 반드시 야당과 공존·협치의 정신을 실천하겠다. 야당이 아무리 그래도 설득의 정치는 결국 여당의 몫이라는 노 의원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이다. 원칙에 격렬했던 만큼 때로는 놀라운 유연성도 발휘하겠다”고 천명했다.

이어 “탄탄한 국정 운영으로 일정한 시점이 되면 비쟁점 법안 전체를 놓고 그랜드 바게닝을 추진하겠다. 원내대표의 협상이 무능해서 총선에서 발목 잡힌다는 얘기가 절대로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 원내대표가 강고한 이미지를 탈피하고 어떤 협상 능력을 보여줄지 주목된다. (사진=박효영 기자)

민주당의 원내 전략이 패스트트랙 정국 이후 4당(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의 바운더리 안에서 합의되는 것은 처리하고 합의 안 되는 것은 추진하지 않는 방향으로 갈 건지, 한국당과의 협상 채널을 되살려서 갈 건지 이 원내대표의 향후 행보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김현아 한국당 원내대변인은 바로 논평을 내고 “대화와 타협이라는 의회 정신을 망각한 집권 여당 민주당이 독단과 독주를 멈추고 다시 국회를 정상화시켜야 한다”며 “민주당은 청와대 거수기도 청와대 수석의 하명을 수행하는 행동대장도 아니다. 청와대가 아닌 국민만 바라보고 국회를 함께 이끌어 나가는 책임있는 집권 여당의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고언했다.

이 원내대표는 당정청 관계에 대해 “소통의 출발은 상임위원회다. 주요 정책의 결정은 상임위가 해당 부처를 주도하고 이견이 생기면 청와대와 빈틈없이 조율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도록 당정청 시스템을 업그레이드 하겠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정책 기조는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 △혁신성장 이렇게 3가지인데 갈수록 불경기에 따른 민생 경제의 어려움이 부각되면서 사실상 규제 완화를 필두로 하는 혁신성장에 기울어져 있다. 

이와 관련 이 원내대표는 “여러분의 심장은 핀란드에서 이미 시작한 기본소득에 대한 준비도 잊지 않았을 거라 확신한다. 의원들은 우리 당의 미래 세대와 연대하는 신뢰의 상징이 될 것”이라며 규제 혁파와 함께 복지 국가 건설에도 힘을 쓰겠다고 역설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민주당의 지도부가 이해찬 대표, 이 원내대표 체제로 구축됐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 원내대표는 당선이 확정되고 재차 “내가 고집에 세다는 그런 평들을 원내대표를 하면서 깔끔하게 불식하겠다. 부드러운 남자가 돼야겠다는 그런 생각을 했다. 까칠하다는 그런 평가가 나에게도 따끔 따끔했다. 원래 내가 따듯한 사람인데 정치하면서 조금 내 천성을 잃어버린 것 같아 늘 속상했다. 의원들이 보내준 지지와 성원을 통해 다시 원래 따듯했던 나의 마음을 찾도록 노력하겠다”며 원칙주의 이미지를 타파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다시 까칠하거나 말을 안 듣고 고집부리거나 다시 차갑게 하면 언제든지 지적해주면 바로 고치겠다. 그때는 머리를 탈색해서라도 바로 잡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가 강골 이미지를 의식하는 발언을 반복하는 이유가 있다. 이 원내대표는 1964년생으로 전형적인 386 운동권 세대다. 1987년 고려대 총학생회장이 된 이 원내대표는 같은 해 직선제 투쟁을 격렬하게 전개했고 온갖 핍박을 받았다. 6.29 선언 이후에는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을 결성한 뒤 의장직에 올랐다. 이 원내대표는 전대협의 상징이자 운동권의 얼굴로 2000년대까지 정계에 진출하지 않고 재야 운동을 고수했다. 그러다가 같은 시기 연세대 총학생회장을 맡았고 전대협 부의장으로 활동했던 우상호 민주당 의원과 함께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스카웃을 통해 정치를 시작했다. 우 의원은 2016년 말 국정농단 정국 때 원내대표를 맡은 바 있다.

운동권의 강골 이미지가 자칫 원내대표로서의 역할 수행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을까 우려했던 것이다. 

실제 이 원내대표는 8일 방송된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로부터 “이 의원은 계속 대표로 출마하더니 갑자기 원내대표로 나왔고 또 출마 선언문을 봤더니 대선 후보급이다. 거대 담론을 거론하면서. 원내대표 나오면서 무슨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느냐. 딱딱하고 경직되어 보인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협상을 할 수 있겠느냐”라는 지적을 들었다.

이에 이 원내대표는 “당대표 계속 도전했다가 잘 안 됐다. 체급 조정을 해야 한다”며 “대체로 원칙이나 진보 정치에 대한 신념 이런 건 견고하게 해왔다. 그런데 실제로 일을 풀어가는 과정들은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해야 한다. 그런 합리성을 가지고 왔었고 그래서 우리 내에 컨센선스를 만드는 과정 이런 것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일을 풀어왔다”고 답했다.

마지막 소감으로 이 원내대표는 “이해찬 대표를 모시고 다시 일하게 돼서 기쁘다. 87년 6월 항쟁 때 이 대표 모시고 국민운동본부에서 일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고 회상했는데 향후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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