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수사권 조정 소나기에
모든 것은 검찰 잘못에서 잉태
검찰 개혁의 방향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
수사 착수와 수사 종결의 분리
경찰 권력도 분권화돼야
입법부 침해 및 항명 논란에 대해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문무일 검찰총장이 가장 먼저 꺼낸 말은 ‘반성’이었다. 검찰의 전횡으로 인해 위로는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아래로는 검경수사권 조정의 바람이 불게 됐기 때문이다. 검찰의 수사 지휘권이 폐지되고 경찰의 1차 수사종결권이 부여될 것만 같은 분위기에서 문 총장은 최대한 검찰의 자체 개혁 방안을 어필해야 한다.

문 총장은 16일 오전 대검찰청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검찰은 반성과 각성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며 “지금의 논의(검경수사권 조정 등)에 검찰이 적지 않은 원인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검경수사권 조정에 대해 여러 문제제기를 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문 총장이 보는 검찰의 대표적 과오는 △주요 사건에 대한 정치적 중립성 문제 △수사를 하지 않아서 또는 잘못된 수사의 피해자라서 억울해한 국민들의 호소에 부응하지 못 한 점 등이다.

예컨대 문 총장은 기자와의 질의응답을 통해 “수사 (결과나) 과정에서 검찰이 과도하게 미적거리는 모습을 보여서 중립성을 오해받는 경우가 있었다”며 “(그 원인과 배경에 대해) 사실 수사 착수 부분에 있다. 수사에 착수한 사람이 결론을 내리는 과정이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법률 개정과 관련해 공수처를 반대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기소 독점의 문제다. 수사에 착수한 사람이 기소까지 독점하는 것은 국민이 용납하기 어렵지 않은가”라고 발언했다.

아무래도 수사권을 갖고 있으면서도 기소권마저 독점한다면 자의적 결론 맺기의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보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문 총장이 공수처의 필요성을 인정한다는 지점까지 도달했다. 같은 맥락에서 문 총장은 “고소고발 사건에 관해 재정신청을 거의 전면적으로 확대해서 사후에 법원 심사를 한 번 더 받을 길을 열도록 법률 개정을 건의한 상태”라고 밝혔다.

그동안 논의된 검찰 개혁의 방향은 여타 선진국과 달리 대한민국 검찰에 부여된 독점적 권한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비롯됐다. 검찰은 △영장 청구권 △수사권 △수사지휘권 △기소 독점권 등 4대 권한을 독점하고 있다.

문 총장은 자체 검찰 개혁 차원에서 “수사의 착수, 진행, 결과를 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국 43곳의 특별수사 조직 폐지 △대검찰청에 인권부 설치 △검찰의 결정에 법률 외적 고려를 배제하기 위한 의사결정 과정 기록 △외부 전문가들의 점검을 통한 검찰 내부 순환논리 탈피 등을 추진했다.

이어 “수사는 진실을 밝히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의 기본권을 합법적으로 침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형사 사법제도의 개선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민주적 원칙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그렇기에 수사를 담당하는 어떠한 기관에도 통제받지 않는 권한이 확대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문 총장은 기소와 수사의 분리, 수사 종결과 수사 착수의 분리라는 두 가지 대원칙을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글로벌 트렌드는 수사와 기소의 분리다. 

문 총장은 한국적 사법 현실에 맞도록 하되 최대한 그 방향으로 개혁을 추진하겠다며 “검찰의 직접 수사 총량을 대폭 축소하겠다. 수사 착수 기능의 분권화를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를테면 △마약수사와 식품의약수사 등에 대한 분권화 △그밖의 독점적인 권능을 찾아서 개혁 △검찰이 종결한 고소고발 사건에 대한 재정신청(시민이 직접 법원에 공소제기 요청) 제도 전면 확대 △형사부와 공판부 중심으로 검찰 운영 등 이러한 것들을 현재 추진 중이라는 설명이다. 

문 총장이 검찰 조직의 분권화를 말하고 있지만 사실 언론에 비춰지는 것만 보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 오히려 비대해진 것 같다. 윤석열 지검장을 비롯 한동훈 3차장 검사 등이 연일 사법농단과 국정농단 수사를 진두지휘하면서 티비 화면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문 총장은 “중앙지검이 자체 수사에 착수한 건수는 사실 많지 않다. 보도 횟수가 많아서 수사를 많이 하는 것으로 보이는 면이 있고 과거보다 사건 규모가 커져서 투입 검사가 많기 때문에 특별수사가 확대된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제로 보면 전국적으로 건수가 약 3분의 2 수준으로 줄어든 상태다. 과거보다 수사 자체가 촘촘해졌고 감시와 통제 방식도 세밀해졌다. 같은 일을 해도 과거 검사 1명이 하던 것을 지금은 3명이 투입돼야 진행될 정도다. 또 과거보다 공판 절차가 거의 3배 이상 오래 걸린다”고 해명했다. 

연일 문 총장은 언론과 정치권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연일 문 총장은 언론과 정치권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과연 검찰이 직접 수사권을 행사하는 게 필요하느냐의 차원에서 문 총장은 “(이미 검찰의 직접 수사권은 많이 확보돼 있다면서) 역사적으로 범죄와의 전쟁(1990년 10월13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조직폭력배 등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10.13 특별선언)이 주요 계기였다. 범죄와의 전쟁 때 검찰이 동원돼 강력부가 만들어졌고 검찰의 수사 착수 기능이 대폭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가 취임하면서 (법무부 산하) 마약수사청 등으로 검찰의 수사권을 내놓는 방향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이 (직접 수사)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자꾸 특별수사청으로 (수사권의 범위를) 빼다 보면 내 생각에 남는 것은 중앙지검의 특수부와 지방 주요 검찰청의 특수부 몇 개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 기능마저 뺄지는 사실 국민적 결단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국민적 결단”에 대해 문 총장은 “현재까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해왔던 역사적 필요성이 있다. 국가적 사회적 역할을 해왔는데 과도하게 (수사권을 통해 그 역할 수행)하는 것을 막을 것이냐. (할 수 있도록) 하되 통제할 것이냐. 아니면 완전 빼볼 것이냐. 이를 고민해서 결정해야 한다”고 부연 설명했다.

문 총장은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더라도 “내부 규정을 바꿔서 착수할 때는 총장의 승인받는 것을 원칙으로 만들었다”며 “(개별 검사에게) 범죄정보가 들어오는 것을 세밀하게 보고 범죄정보를 수집한 사람은 수사에 착수 못 하게 막았다”고 밝혔다.

문 총장에 따르면 현재 검찰이 직접 수사하는 주요 분야는 △조세범죄 △식품의약 △금융증권범죄 등이다. 

대검찰청 기자실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문 총장은 패스트트랙(국회에서 지정하고 330일 이후 본회의 표결)에 공수처 설치법과 검경수사권 조정법이 올려진 직후 5월 초부터 연일 언론 플레이를 통해 우려를 표했다. 관계 당국의 수장으로서 정당한 견해 피력으로도 볼 수 있지만 법무부 장관에 대한 항명 논란이나 국회의 입법권에 과도한 영향력 행사로 비춰진 측면도 있다.

실제 문 총장은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이메일에서 세 가지를 말했는데 그런 식이면 검찰은 입 닫고 있어야 한다. 구체적 사례나 외국 사례도 말 못하면 무슨 말을 할 수 있나. 아무 말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며 불편한 심경을 내비쳤다.

특히 “정부안이 나올 때까지 사실상 검찰 의견을 안 듣는 방식으로 (논의가) 진행된 것은 다들 아는 것이다. 정부안이 나온 뒤로 저희 의견을 수 차례 제기했고 국회에서 논의가 시작되면 저희가 참여해서 논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논의가 중단된 상태에서 갑자기 패스트트랙에 올라갔다. 이제야 말씀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문 총장은 입법부의 권한을 침해하는 게 아니라면서 “삼권분립의 원칙상 국회에 위험성이 있다고 마지막으로 호소하는 거다. 검찰은 집행기관으로서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어떤 문제나 위험이 있다고 알리는 것이 역할이지 이후에는 집행기관으로서 소임을 다하겠다. 조직의 장으로 말씀드릴 수 있는 마지막 자리가 아닌가 한다”고 밝혔다. 

문 총장의 동기는 이런 거다. 

“셀프 개혁으로 부족하다는 말은 나도 공감한다. 현재 법 제도만으로는 최대한 성과를 거두는 것이 쉽지 않다. (경찰의 그 위험성이라는 게 결국) 실효적 자치경찰, 사법경찰, 행정경찰, 정보경찰의 분리 등이 직접적으로 수사권 조정과는 관련이 없다. 하지만 이런 권능들이 결합됐을 때 어떤 위험이 있을지 이 말씀은 드려야 하지 않을까.”

경찰의 중앙집권화 된 권력을 개혁하지 않고 수사권 차원의 권한을 확대해주면 문제가 생길 것이 눈에 보이기 때문에 입법부에 어드바이스를 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다.

좀 더 구체적으로 그 위험성에 대해 문 총장은 “민주주의의 발전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신체의 자유”라며 “현재 사개특위(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 오른 정부안(또는 여야 합의한)은 (경찰의 수사권에 대한 견제장치 없는) 전권적 권능을 확대하는 것이다. 검찰이 (기존에) 전권적 권능을 갖고 일했으니 경찰도 통제받지 않고 전권적 권능을 검찰 통제를 빼고 행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검찰의 수사지휘권 폐지와 직결된 문제다. 

문 총장의 생각은 경찰의 수사권이 사전에 견제되지 않으면 국민 기본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는 것인데 “사후에 고치자거나 나중에 이의제기로 고친다거나 (검찰) 송치 후에 문제를 살펴서 고친다는 등 이런 이야기는 굉장히 위험하다. 소 잃을 것을 예상하고 마구간을 만든다거나 병이 발생할 것을 알고 사후에 약 지어준다는 이야기와 같다”는 요지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문 총장과 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문 총장과 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현재 패스트트랙에 올려진 법안을 보면 수사지휘권을 폐지하는 대신 경찰의 수사권을 견제하기 위해 검찰은 △보완 수사 요구권 △보완 수사 불응에 따른 직무배제 및 징계 요구권 △시정조치 요구권 등을 갖게 된다. 하지만 문 총장은 이게 다 “사후 약방문”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문 총장은 더욱 간결하게 한 마디로 “착수하는 사람은 종결해서는 안 된다. 종결할 수 있는 사람은 착수하면 안 된다. 이 원칙을 보다 강화해야지 검찰이 (둘 다 독점을) 해봤으니 경찰도 해보라는 식은 안 맞다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기소와 수사의 분리를 논하기 이전에 한국적 사법 현실에서는 수사 착수와 수사 종결의 분리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천명한 것이다.

한편, 문 총장은 전날(15일) 강신명 전 경찰청장의 구속을 비롯 검경의 신경전이 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지금 진행되는 정보경찰 관련 (불법적 선거 개입) 사건은 경찰이 수사해서 송치한 이후에 그걸 검찰이 이어받아 수사하다가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검찰이 전직 고위 경찰 4명(강 전 청장·이철성 전 청장·박화진 경찰청 외사국장·김상운 전 경찰청 정보국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일괄적으로 청구한 것은 이례적이다. 반대로 경찰은 전날 김수남 전 검찰총장을 비롯 전현직 검찰 고위 간부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후배 검사의 비위를 알고도 제대로 조치하지 않은 직무유기 혐의다. 모양새는 임은정 충주지청 부장검사의 고발로 시작됐다고 하지만 누가 봐도 검찰을 견제하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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