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정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불거지고 있는 여성 귀갓길 범죄와 관련 입법 논의에 들어갔다. 

정 의원은 11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에서 기자와 만나 “진짜 바뀌어야 된다”며 “나도 사실 할 말이 많다. 생각해보니까 중고등학교 다닐 때도 맨날 집에 들어갈 때 실제 전화도 안 하고 있는데 전화하는 척 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엄마 나 집에 다왔어. 그렇게 10분을 허공에 대고 말했다. 근데 내가 왜 그러고 살아야 하는 것인가”라며 여성의 불안한 귀갓길 경험에 대해 풀어냈다. 

기자와 여성 안심 귀갓길 관련 입법 논의를 하고 있는 정은혜 의원(왼쪽). (사진=권오현 보좌관) 

지난 5월28일 발생한 ‘신림동 사건’ 이후에도 여성의 귀갓길을 노리는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이미 발의된 스토킹법 5건 등 관련 법 제도 정비를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날 정 의원은 비서관과 보좌관을 배석시키고 ①스토킹법 재발의 ②공연음란죄 처벌 강화 ③강간 목적 주거침입죄 등 3가지 대안에 대해 논의했다.

먼저 ①은 기존의 스토킹법이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괴롭힘”만 규정하고 있는 것의 한계를 보완하자는 취지다. 예컨대 성범죄 전과자나 보통 남성이 모르는 여성의 뒤를 쫓아가서 위협하는 경우에는 스토킹법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9월12일 발생한 ‘신림동 스토커’ 사건의 경우 남성 A씨가 서울 신림동에서 새벽에 한 여성의 뒤를 밟아 건물 공동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곳까지 쫓아갔다. 현관문이 열리자 같이 따라 들어갔다가 여성의 남자친구가 나와 있어서 추가 범행에는 실패했다. 

따라서 이를 막기 위해 2000년에 만들어진 일본의 ‘스토커 규제법’처럼 1회성 스토킹 행위 자체가 아니라 스토커로 발전할 수 없도록 처벌하는 것이 중요하다. 밤길을 같이 걷는 무고한 남성이 스토커로 누명을 쓸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최소 200m 이상 뒤를 밟아야 하고 △공동 현관문 앞까지 쫓아와 바짝 붙는 수준이어야 하는 등 명백한 경우에만 해당되기 때문에 막상 시행된다면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집 방향이 같은 남성은 보통 스마트폰을 하거나 음악을 듣고 가지만 뒤를 밟는 경우라면 여성이 불안감을 느끼고 멈출 때 같이 멈추거나 딴짓을 한다. 여성 입장에서 모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조애진 변호사(법률사무소 시대)는 지난 5일 저녁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냥 (수사기관이 CCTV 등 남성의 행적을) 조사해보면 다 나올 것이고 여성 입장에서 쫓아오는 것과 그냥 가는 것의 차이를 모를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도 “이런 거는 나도 어릴 때 많이 당했다”며 “아저씨들이 중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있는데 쫓아왔다”고 말했다.

②은 종종 스토커가 여성의 귀갓길을 따라붙다가 또는 혼자 걸어오는 여성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음란행위를 하는 경우다. 형법 245조에 규정된 공연음란죄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에서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지만 대낮에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것과 야밤에 여성 한 명을 노리고 공연음란죄를 범하는 경우를 구분해서 좀 더 세게 처벌할 필요성이 있다.

예컨대 지난 6월9일 자정을 넘긴 시각 서울 은평구의 한 골목에서 50대 남성 B씨가 여성에게 음란행위를 한 뒤 뒤쫓아갔다. 피해 여성은 골목길을 지나가다 음란행위를 한 B씨를 발견하고 돌아갔지만 B씨는 계속 접근했다. B씨는 여성을 260m 가량 쫓아갔다. 다행히도 여성은 스마트폰 ‘안심이 앱’을 통해 은평구 관제센터에 도움을 요청했고 B씨는 검거됐다. 

③은 신림동 사건이나 ‘알몸 침입 사건’ 등에 적용될 수 있는 법이다. 

전국민적 분노를 일으킨 신림동 사건. (캡처사진=유튜브)

C씨는 지난 8월19일 23시가 넘는 시각 옷을 다 벗은 몸으로 부산 사하구의 같은 오피스텔에서 혼자 살고 있는 여성의 집에 침입했다. C씨는 화장실 방충망을 뚫고 들어갔으나 인기척을 듣고 바로 경찰에 신고한 피해 여성의 기지로 인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여성은 화장실 문이 열리지 않게 밖에서 붙잡은 상태로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정성종 판사(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 형사4단독)는 11월1일 C씨에 대해 주거침입 혐의로 집행유예(징역 4개월 집행유예 1년)를 선고했다.
   
문고리를 잡고 열려고 한 것만으로도 징역 1년의 실형에 처해진 신림동 사건과 비교해봐도 형평성에 어긋난다. 애초에 ③이 있었다면 일반 주거침입죄와 달리 취급될 수 있었다.

실제 경찰청 범죄 통계에 따르면 주거침입을 통한 성범죄 건수는 △2016년 324건 △2017년 305건 △2018년 301건으로 매년 300건 가량 발생하고 있다. 또한 강지현 울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가 2017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발표한 ‘1인 가구의 범죄피해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33세 이하 기준 1인 가구를 상대로 한 주거침입 피해 가능성은 여성이 남성보다 11.26배에 달한다.

물론 우리 형법상 하지 않은 행위를 두고 목적을 추정해 처벌할 수는 없다. 주거침입 강간미수죄의 경우 집에 쳐들어 가서 강간미수를 범해야 해당된다. 즉 신체적 접촉이 있거나 옷을 벗기려고 해야 한다. 하지만 형법상 예비와 준비 단계만 거쳐도 중대한 범행(살인과 내란 등)인 경우 처벌 규정을 두고 있듯이 수사를 통해 누가 봐도 강간 목적으로 주거침입을 했다는 점이 입증된다면 그걸 따로 처벌하지 못 할 이유가 없다. 

③이 있어야 경찰과 검찰이 강간 목적임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수사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

외진 밤길을 지나 집에 가야 하는 여성은 매우 불안할 수밖에 없다. (사진=서울시)
외진 밤길을 지나 집에 가야 하는 여성은 매우 불안할 수밖에 없다. (사진=서울시)

보통 현대 사회에서 주거침입죄는 주로 상호 친밀한 관계에서 갑자기 관계가 틀어지거나 원한이 생겨 상대를 골탕먹이기 위해 고소해서 불거지는 경우가 많다. 

함께 자리한 권오현 보좌관은 주거침입범의 대다수는 “90% 이상이 아는 지인이 왔는데 꼴보기 싫어서 너 나가! 이런 경우”라고 설명했다.

그 외의 주거침입죄는 성범죄 목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절도나 강도 목적 또는 연쇄살인범이 살인 목적으로 주거침입을 하더라도 더 무거운 특수절도죄, 강도죄, 살인죄에 수렴된다. 하지만 신림동 사건이나 알몸 침입 사건은 사실상 성범죄 목적임이 거의 확실하더라도 오직 일반 주거침입 혐의로만 처벌됐다. 특히 후자는 집행유예로 감옥에 가지도 않았다.

그래서 ③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고 형량 범위는 물리적 접촉이 있는 형법 298조 강제추행죄를 기준으로 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강제추행죄는 징역 10년 이하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지는데 이를 기준으로 상향 또는 하향해서 결정하면 된다.

한편, 정 의원은 “사실 우리나라 성범죄 관련 법들이 처벌이 너무 약하다”며 “(실제 본인이 겪은 스토킹 피해를 경찰에) 신고하니까 10만원(경범죄처벌법 3조 1항 41호)이라고 하더라”라고 증언했다.

무엇보다 정 의원은 “정말 여성은 지속적인 스토킹이 아니라도 운이 나쁘면 성범죄자에 의해 한 번에 죽을 수도 있다”며 “실제로 또 그렇게 당한 사람을 주변에서 봤다”고 밝혔다.

이어 “여대 캠프에 가서 성추행 피해를 안 당해본 사람 손들어보라고 했는데 한 명이라도 손을 든 경우가 없었다. 그만큼 모든 여성이 불안에 떨고 있다”며 관련 입법 논의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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