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뉴스=박효영 기자] ‘DLF 사태’에 이어 ‘라임 사태’까지 금융시장 전체가 위축되는 분위기다. 펀드런(펀드에 투자한 사람들이 투자금을 회수하려는 집단 심리)을 예측하는 전문가들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금융권은 그야말로 “뒤숭숭” 한 상황이다.

단기 수익을 목적으로 국경을 넘어 여러 종목에 투자하는 ‘헤지펀드(hedge fund)’ 시장만 봐도 알 수 있다. 국내 헤지펀드 규모는 작년 35조원대에서 올 11월 들어 34조원대(34조6842억원)로 줄었다. 
 
사실 당연하다. 초저금리(한국은행 기준금리 1.25%) 시대로 시중에 1100조원이 풀렸다고 하지만 라임과 DLF 사태 등 무차별적인 투자자 모집으로 인한 대규모 피해 사례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DLF 사태는 지난 8월 독일 등 주요국의 국채 금리가 지속적으로 내려가면서 초래됐다. 우리·하나은행 등 국내 주요 은행들은 DLF(Derivative Linked Fund / 파생결합펀드)를 해외금리연계형으로 설계해 대대적으로 판매했다. DLF 투자액은 8224억원에 이르지만 거의 반토막(4558억원) 난 상태다. 금융당국은 은행들이 원금 손실 우려를 충분히 고지하지 않고 불완전판매를 했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

DLF 사태가 수습되기도 전에 라임 사태가 벌어져 금융권은 엎친데 덮친격이다.

없는 ‘유동성’ 인위적으로 만들어

헤지펀드 업계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투자를 진행하던 ‘라임자산운용(라임)’은 지난 10월14일 메자닌(Mezzanine) 펀드와 무역금융 펀드에 대한 환매 중단을 선언했다. 메자닌은 건물 층간 라운지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로 증권 시장에서는 주식과 채권을 결합해 놓은 상품이고 대표적으로 CB(Convertible Bond / 전환사채)와 BW(Bond with Warrant / 신주인수권부사채) 등이 있다. CB는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상품이고, BW는 정해진 가격에 새로 발행된 주식을 살 수 있는 채권이다.

원종준 라임 대표가 10월14일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에서 환매 연기 관련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원종준 라임 대표가 10월14일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에서 환매 연기 관련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라임이 메자닌 등 주요 종목에 대한 투자 고객들에게 투자금을 돌려주지 못 하겠다(환매)고 선언했다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확인했지만 인기있는 금융상품은 끊임없이 확산된다. 라임이 판매한 메자닌 펀드는 국내 주요 증권사와 은행에도 흘러들어가 재판매됐고 그런 만큼 환매 선언의 여파가 일반 금융권에도 미치고 있다.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가 한 달 전(10월14일)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환매 규모는 8466억원(사모채권 37개 3839억원+메자닌 18개 2191억원+무역금융 38개 2436억원)이다. 여기에 펀드 56개(4897억원)가 추가적으로 환매 중단될 수도 있다. 1조원 넘는 투자금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이렇게 된 배경의 핵심은 메자닌이다. 라임이 투자한 기업들이 위기를 겪게 되면 해당 주가가 떨어지고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해서 보유하고 있던 CB의 손실 규모가 늘어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은 CB는 채권 만기 1년~1년6개월 가량인데 위기에 바로 대응하기 어렵다. 라임은 CB의 단점인 유동성을 보완하기 위해 모펀드(母)와 자펀드(子)를 별도 신설했다. 모펀드와 자펀드를 통해 중간다리를 놓음으로써 발 빠르게 사고 빠지는 유동성을 인위적으로 부여한 것이다. 

문제는 손해가 나더라도 채권형인 CB와 BW는 본질적으로 바로 팔기 어렵다는 점이다. 만기까지 일정 기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기 전에 채권을 팔려고 해도 해당 기업이 불황을 겪고 있는 것을 뻔히 아는데 헐값에 팔지 않는 이상 누가 대신 사줄리도 만무하다.

라임은 결국 잠정적으로 환매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환매 중단 선언으로 인해 메자닌 펀드 투자자들의 불안은 극심해졌다. 

특히 라임은 △횡령과 배임을 범한 불량 기업의 BW와 CB에 투자 △코스닥 상장 기업이라도 성장 가능성이 제로인 부실 기업에 무리하게 투자 △모펀드에 수 백개의 자펀드를 연계시켜 지나치게 파생상품화 △수익률 돌려막기 △라임 주요 경영진의 배임과 횡령 등 많은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금융감독원도 라임 경영진을 비롯 라임의 투자 행태에 대해 들여다보고 있다. 라임은 개인의 일탈이라며 선을 긋고 있고 대외적으로 노코멘트를 천명하고 있다.

DLF 피해자들은 금융당국은 물론 가장 큰 피해를 초래한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에 대한 검찰 수사까지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DLF 피해자들은 금융당국은 물론 가장 큰 피해를 초래한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에 대한 검찰 수사까지 촉구하고 있다.

금융당국 뒤늦게 ‘부랴부랴’

라임 사태는 △투자사의 편법 거래 △모순적인 유동성 관리 △과도한 파생상품 설계 △은행의 불완전판매 △부실한 기업의 코스닥 상장 등 한국 금융권의 총체적 난국을 그대로 보여줬다. 이는 한국 금융사에서 커다란 사변과도 같았던 △신용카드 대란(2003년) △키코 사태(2008년) △저축은행 후순위채권 사기(2011년) △동양그룹의 계열사 어음 사기(2013년) 등에 버금가는 후유증을 남길 수도 있다.

일단 금감원은 라임의 메자닌 펀드를 받아서 판매한 은행과 증권사들을 대상으로 현장 점검에 나서고 있다. 무려 30곳(대신증권/우리은행/신한금융투자/KB증권/교보증권/신한은행/한국투자증권/하나은행/NH투자증권/신영증권/삼성증권)에 달한다. 금융위원회도 금감원과 긴밀히 소통하고 있고 내일(14일)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금감원은 대대적으로 현장 점검을 착수하고 있으면서도 혹시라도 대규모 펀드런을 유발해 시장 혼란이 가중될 수도 있어서 고민스럽다. 곧 만기가 다가오는 펀드 종목에 대한 환매가 또 연기되면 시장 혼란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라임은 그야말로 비상 체제이고 금감원과 대응 방식을 놓고 협력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말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금감원과 금융위가 호되게 질책을 받은 만큼 어물쩍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DLF와 라임으로 인해 피해를 본 고객들이 집단 대응을 모색하고 있어 사태의 추이를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사진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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