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완화와 경제민주화
현직 재벌 기업인이면서 정무적 감각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차기 국무총리로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회장이 거론됐고 무엇보다 청와대가 경제활성화를 위한 적임자로 판단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과 경제 철학의 면에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뉴스핌이 19일 오전 보도한 여권발 박용만 차기 총리설에 따르면 박 회장이 헌정사상 최초 경제계 출신 총리로 점쳐지는 분위기가 청와대에 흐르고 있다. 청와대가 불경기를 타파할 시그널을 부각하기 위해 박 회장을 입각시킨다는 내용인데 문재인 정부 들어 대한상의의 위상이 변화한 것과 맞물린다. 

박용만 회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자주 동행했다. (사진=대한상공회의소 제공)

지난 박근혜 정부 때 국정농단에 일조한 전국경제인연합회 대신 산업계를 대표해 정치권과 스킨십을 늘려온 것이 대한상의이고 박 회장의 리더십은 정치와 경제의 협력에 큰 기여를 했다.

박 회장은 두산인프라코어 오너로서 현직 기업인의 입장에서 ①근로시간 52시간제 예외 조치 ②규제 샌드박스(새로운 제품이 출시될 때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하고 유예) ③데이터 3법 통과(개인정보 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개정안으로 기업이 개인정보를 사업에 활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 등 사용자의 이혜관계에 맞는 주장들을 정치권에 전달해왔다. 내세웠던 명분은 경제활성화다.

이를 위해 박 회장은 매번 문재인 대통령의 순방 행사에 동행했고 국회에서 당대표들을 다 만났다.

총리는 경제부총리가 아니라서 이런 장점만으로는 부족하다. 청와대가 눈여겨 본 이유는 박 회장의 정무 감각과 유연한 태도로 풀이된다.

분명 규제완화를 위해 뛰고 있지만 박 회장은 지난 2018년 7월18일 열린 대한상의 하계포럼에서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의 양극화 심화가 근본 배경”이라며 “가구소득이 중위소득의 절반에 못 미치는 상대적 빈곤층이 1990년대 7.4%에서 현재 14%로 두 배로 높아지고 저임금 근로자 비중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에서 최하위권이다. 저소득층을 지원하면 다른 계층에 비해 한계소비성향(추가 소득 중 저축말고 소비하는 비율)이 높아 소비가 늘어난다”고 발언한 적이 있었다.

당시는 2019년 최저임금 시급이 8350원으로 10.9% 인상돼 자유한국당 등 보수진영에서 비난의 목소리를 강하게 내던 때였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공격 요소로만 활용하던 여타 보수 주체들과 달리 박 회장은 “최저임금 인상에만 의존하면 소상공인이 감내하기 어렵기 때문에 저소득 근로자의 소득 지원을 위한 근로장려금과 같은 직접적 분배정책을 보다 과감히 시행하는 등 다양한 정책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인의 관점으로만 보지 않고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흡사 중도 진보 정치인의 시각과 닮았다.

이어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도 필요하다”며 “사회안전망 투자가 OECD 36개 회원국 중 34위에 불과한 상황에서는 (노동 유연화 추진이) 어렵다. 사회보장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득주도성장과 경제민주화 정책의 방향에 대해서도 공감하고 있는 것인데 동시에 박 회장은 “대기업의 일탈 행위를 막는 게 기업 경쟁력을 해치거나 시장 질서 확립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재벌 개혁에도 공감했다. 

(사진=대한상공회의소 제공)
박 회장은 문 대통령과 경제 철학에서 공감할 수 있는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사진=대한상공회의소 제공)

문 대통령은 집권 초기 △소득주도성장 △공정 경제 △혁신성장 등을 대대적으로 내세웠고 한반도 정책과 맞물려 지지율이 고공행진 중일 때는 밸런스를 유지했다. 하지만 2018년 하반기부터 최저임금 인상 이슈와 함께 600만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부각되고 경기 불황이 떠오르면서 사실상 혁신성장을 위시한 규제 완화에 힘을 싣고 있다. 지지율도 1년 만에 반토막나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러다보니 문 대통령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아홉 번 만나서 대규모 투자를 독려했고, ①②③의 메시지를 쏟아냈고, 노동자의 희생만 압박하는 기업활성화에 기울게 됐다.

그런 맥락에서 박 회장도 “기업들이 일을 벌이기 좋도록 규제 완화가 시급하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박 회장은 규제완화의 방향에 대해서도 “국민은 규제를 없애면 일부 기업의 일탈 행위로 인해 혼란이 초래될 것으로 우려한다. 보다 과감히 규제개혁을 하고 부작용이 있으면 사후적으로 제재하면 된다”며 “공무원 때문에 규제개혁이 안 된다고 비판하지만 현실적으로 공무원이 규제를 완화하면 감사를 받는 등 불이익이 뒤따른다. 규제개혁을 한 공무원에 대한 보호장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결론적으로 박 회장은 문 대통령의 경제 살리기 올인 기조에 부합하고 정무적으로 합치되는 대목이 많다. 그래서 청와대가 입각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구미시의원을 지낸 김수민 시사평론가는 19일 저녁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박 회장을 총리로 선임하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보수화를 의미하진 않는다”며 “정부 노선이 박용만보다 딱히 진보적인 게 있었어야지. 박 회장은 탈규제와 증세 및 복지 강화를 교환하자는 이야기를 해왔다. 진보 코스프레를 하는 정치인들의 사기극보다는 대자본가의 등판이 덜 기만적일 것”이라고 현 여권을 꼬집었다. 

문제는 인사청문회와 국회의 동의다. 총리는 일반 국무위원인 장관과 달리 국회 과반 이상의 임명 동의가 필수적이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태를 목격했듯이 누구나 문재인 정부의 일꾼으로 합류하려면 어떻게든 발가벗겨질 수밖에 없다. 이런 배경 때문에 대한상의는 박 회장 스스로도 고심 중이지만 사실상 수락하기 어렵다는 뉘앙스를 언론에 전달하고 있는 눈치다.

박 회장이 차기 총리가 될 수 있을지 정치적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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