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라 숨진채 발견
우울증 견뎌내는 모습 보였지만
언론의 보도 관행 지적
악플에 대한 비판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또 한 명의 스타가 우리 곁을 떠났다. 

24일 19시반쯤 걸그룹 카라 출신 가수 겸 배우 구하라씨(29)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속보가 타전됐다. 서울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18시9분쯤 서울 청담동 자택에서 구씨가 숨졌다는 지인의 신고가 접수됐다. 아직 유서 여부는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고 정확한 사망 경위는 조사 중이다. 

구하라씨가 세상을 떠났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구씨는 하루 전날(23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사진과 함께 “잘 자”라는 짧은 문구를 남겼다. 이게 마지막 인사가 되어 버린 상황이다.

구씨는 2008년 카라의 새 멤버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카라는 Rock you, Pretty girl, 허니, 점핑, 미스터 등 연일 히트곡을 만들어냈고 소녀시대와 함께 당대 최고의 걸그룹으로 평가받았다. 인기는 일본에서도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카라는 2013년 10월 멤버 재계약 문제를 놓고 갈등을 겪었고 이후 멤버 교체 등 부침을 이어가다가 2016년 1월 해체됐다.

구씨는 2008년부터 크고 작은 역으로 연기 활동을 해왔고 2015년 7월 솔로 앨범을 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구씨는 작년 9월 전 남자친구 최종범씨와의 폭행 시비로 이슈화됐고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사실 최씨로부터 △불법촬영물 유포 협박 △상해 △강요 △재물손괴 등 피해를 당한 피해자였다. 지난 8월29일 1심 결과 오덕식 부장판사(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0단독)는 최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오 판사는 상해, 강요, 협박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로 인정했지만 불법촬영 혐의는 무죄로 판결했다. 

당시 구씨는 이미지상의 타격은 물론 △불법촬영물 △성형 등 온갖 악플에 시달렸다.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던 구씨는 지난 5월26일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시도를 하다가 경찰에 구조되기도 했다.  

건강을 회복한 뒤 구씨는 6월17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앞으로 악플 조치 들어가겠습니다. 악플 선처 없습니다”라며 아래와 같이 의미심장한 글을 남겼다.

“제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여러분들께서도 예쁜 말 고운 말 고운 시선으로 보일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네요. 우울증 쉽지 않은 거예요. 마음이 편해서 우울증이라고요? 열심히 일한 만큼 얻은 저의 노력입니다. 당신도 우울증일 수도 있다는 걸 아픈 사람이라는 걸 모르는 걸까요. 아픈 마음 서로 감싸주는 그런 예쁜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요? 극복하고 저도 노력해서 긍정적이게 좋은 모습 보여드리도록 노력할 거예요. 여러분도 노력하세요. 공인 연예인 그저 얻어먹고 사는 사람들 아닙니다. 그 누구보다 사생활 하나하나 다 조심해야 하고 그 누구보다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못 하는 고통을 앓고 있어요. 얘기해도 알아줄 수 없는 고통이요. 여러분의 표현은 자유입니다. 그렇지만 다시 악플 달기 전에 나는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볼 수 없을까요?”

구씨는 전 남자친구로 인한 피해를 겪고 건강을 회복하고 삶의 의지를 드러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구씨는 전 남자친구로 인한 피해를 겪고 건강을 회복하고 삶의 의지를 드러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동시에 구씨는 스스로를 다잡고 연예 활동에 매진하기 위해 애썼다. 구씨는 6월 일본의 ‘프로덕션 오기’와 전속계약을 체결했고 11월13일 일본에서 첫 솔로 앨범 <미드나잇 퀸>을 발매했다.

그런 구씨에게 가수 겸 배우이자 절친한 동료였던 최진리씨(26/설리)의 죽음(10월14일)은 큰 충격이었다. 

최진리씨가 세상을 떠난 다음날 구씨는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통해 “열심히 살겠다. 설리야. 언니가 일본에 있어서 못 가고 이렇게 인사할 수밖에 없는 거 너무 미안해. 그곳에 가서 정말 너가 하고 싶은 대로 잘 지내. 언니가 네 몫까지 열심히 살게. 열심히 살게”라고 추모하면서 삶의 의지를 다졌다. 

소속사 오기는 구씨의 소식이 알려진 직후 보도자료를 내고 “너무나 슬프고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게 됐다. 현재 구하라님 유족 외 지인들의 심리적 충격과 불안감이 크다. 이에 매체 관계자분들과 팬분들 조문을 비롯하여 루머 및 추측성 보도를 자제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최진리씨의 사망 이후 사회적으로도 많은 논의가 진행됐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지난 16일 ‘루머의 루머의 루머 누가 진리를 죽였나’ 편을 방송해 악플과 선정적인 언론 보도 관행 등을 공론화시켰다.

24일 방송된 KBS <거리의만찬>에 출연한 그룹 신화 소속 가수 겸 배우 김동완씨는 “저희 때만 해도 유명세를 타는 속도가 완만했던 것 같다. 저희가 많이 나와 봤자 방송 3사나 잡지 라디오에 나온 것 같은데. 지금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면 너무 많은 매체들에 내 얼굴과 사생활이 공개되고. 그니까 이게 한 번 꼬이기 시작하면 감당하지 못 할 정도가 되어버린다”고 강조했다.

같은 방송에 출연한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디어를 통해서 연예인에 대해서는 우리가 사실 불필요한 너무나 많은 정보를 습득한다”며 “이걸 유사 친밀성이라고 한다. 실제로 그 사람은 잘 모르는 사람이다. 근데 머릿 속에서 착각이 벌어진다”고 정리했다.

이어 “주로 악플의 소재가 되는 것은 그 사람이 연기했던 것 그 사람의 노래 내용이 소재가 되기 보다는 그 사람이 리얼리티 쇼에 나와서 했던 발언들 SNS에서 했던 이야기들이 악플의 소재가 된다. 그런 면에서 악플 문제를 다룬다면 미디어의 측면에서 반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강성현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교수는 24일 저녁 페이스북에서 “피해자들의 절망과 고통이 외면되고 억압되고 조소를 당하고 심지어 거래되는 한국에서 곧 구제불능의 엉망진창 댓글들도 가득하겠지”라며 “폭력 가해자와 그 카르텔 뿐 아니라 이에 책임있는 위정자들의 목구멍에 관련 뉴스 페이퍼들을 처넣고 싶다”고 분노를 드러냈다.

구씨에 대한 애도의 마음과 분노감을 동시에 표출한 이들도 있다.

구씨는 끝내 눈을 감았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TV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이승한 작가는 페이스북을 통해 “연예인 걱정이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거라는 소리, 부와 인기를 얻었으니 악플 정도는 견뎌야 하는 거 아니냐는 소리 하는 사람들 좀 닥쳤으면 좋겠다. 젊은 여자 연예인을 몇을 더 죽여야 멈출 셈인가”라고 비판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도 페이스북에서 “또 한명의 여성이 또 하나의 별이 한 인간의 존엄을 짓밟고 성적 공격을 감행하고 입을 막고 무릎 꿇리고 그러고도 조롱하고 마침내 생을 송두리째 앗아가고도 너희는 내일도 목 뻣뻣히 세우고 살아가겠지”라며 “너희만 멀쩡한 세상, 여성들의 고통에 눈감고 귀닫고 고개 돌리는 세상, 마침내 여성들이 죽어나가는 세상. 그대로 두고 보진 않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하늘에선 행복하게 웃을 수 있길”이라고 밝혔다.

정신적 고통을 나누고 어떻게든 살아남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이 작가는 힘들어하는 연예인 또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죄송하지만 악착같이 버텨주세요. 좋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사라지고 나면 악당들만 활보하게 됩니다. 제발 악착같이 살아남아 주세요”라고 호소했다.

관련해서 <거리의만찬>에 출연한 정신과 전문의 양재웅씨는 “상처는 묻어두고 덮어둬봤자 언젠가는 터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부정하거나 회피하는 것보다는 (자기 고통을 고백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연예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내 동료 연예인이나 내 친구한테 얘기를 해야 되는데 그걸 너무 못 하는 사회가 됐다. ‘위로포비아’라고 한다. 누구한테 위로받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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