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리 안건 순서
예산안 1조 7000억원 감액
한국당 신임 원내대표와 민주당의 타협
선거제도 개혁에 망설이는 민주당 
왜 선거제도 바꿔야 하는가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주말 내내 자유한국당의 맹공격에도 불구하고 4+1 협의체(더불어민주당·대안신당·바른미래당 당권파·정의당·민주평화당)는 빅딜을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협상했다. 

그 결과 4가지의 시나리오로 가닥이 잡혔다. 거의 합의에 이른 것도 있고 아직 이견이 존재해 합의하지 못 한 것도 있다.

①본회의 처리 안건의 순서(2020년 예산안 →선거법 →검찰개혁법 →유치원 3법) ‘합의’ 
②정부 예산안 513조 5000억원에서 1조 7000억원 감액 및 4000억원 증액 ‘공감대 형성’
③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법안 설계는 ‘백혜련 의원 안’을 골자로 기소심의위원회를 두되 의결권을 뺀 자문기구화 하고 대통령의 임명권 인정 ‘거의 합의’ 
④선거법은 지역구 250석 대 비례대표 50석에서 25석만 연동률에 따라 배분하고 25석은 기존 병립형으로 배분하는 안을 민주당이 주장하고 있고 다른 4개 정치세력은 반대 ‘합의 불발’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8일 오후 4+1 협의체에 참석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8일 오후 4+1 협의체에 참석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실 금요일(6일) 15시 이후 민주당, 한국당, 바른미래당 변혁(변화와혁신을위한 비상행동)이 국회 정상화 합의안을 도출했다는 뉴스가 타전됐지만 이내 바로 합의는 불발됐고 문희상 국회의장이 예정대로 오는 9일과 10일 본회의를 열겠다는 뉴스로 업데이트 됐다.

즉 한국당이 199개 법안에 신청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를 철회한다는 전제 아래 민주당은 패스트트랙(지정되면 본회의 표결 보장) 법안을 정기국회 안에 처리하지 않겠다는 중재안이 물건너 간 것이다. 문 의장은 여야 합의를 최대한 기다린다고 했지만 끝내 합의가 불발되면 무조건 9일과 10일에 본회의를 열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문 의장과 두 당의 협상안을 제안받고 고심한 끝에 최종적으로 거절한 것인데 9일 오전 신임 원내대표가 곧 선출되는데 자신이 중대한 국회 정상화 방안을 합의할 수 없다는 부담감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한국당 차기 원내대표 공식 후보들(강석호·유기준·김선동·심재철) 중에 패스트트랙에 올라간 ③이나 ④을 놓고 타협해야 한다는 견해를 보이는 인사는 없다. 그렇지만 국회 5분의 3을 차지하는 세력이 반드시 추진하고자 하는 만큼 한국당이 둘 중에 하나를 놓고 타협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일찍이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가 대대적으로 밝혔듯이 ③을 내주고 ④을 막아야 한다는 가설이 유력하다. 

민주당 역시 거대 정당으로서 승자독식의 현행 선거제도를 고수하거나 정당 득표율의 반영률을 최대한 낮추는 것이 정치적 이익이 되기 때문에 한국당과의 타협 여지를 열어놓고 4+1을 무력화 할 가능성이 있다. 지역구 투표 위주의 현행 선거제도에서는 거대 양당이 각각 유리한 지역에서 1표만 더 많이 받아 1등을 차지하면 의석을 독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요일에 국회 정상화 소식이 들려오자 정의당 소속 정치인들이나 진보적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일제히 “더불어한국당의 재현”이라고 비판을 가한 이유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일단 민주당은 9일 14시 예정된 본회의에서 예산안을 통과시킬 방침이고 8일 오후부터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시작했다. 4+1 협의체가 합의한 예산안대로 기재부는 ‘시트 작업(예산명세서 작성)’을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만약 한국당이 9일 아침 신임 원내 지도부를 선출하고 바로 첫 메시지로 협상 전선을 되살리는 유화적인 내용을 내놓는다면 민주당은 바로 손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정춘숙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8일 오후 논평을 내고 “세금 도둑질”이라고 공격하는 한국당을 반박하면서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한국당은 199개 안건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철회하고 4+1 공조에 들어간 패스트트랙 법안과 예산 처리에 협조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정국이 매우 엄중하기 때문에 한국당 신임 원내대표가 선출되자마자 당일에 곧바로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와 회동하고 막판 협상 타전을 모색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나경원 원내대표는 전임 김성태 원내대표와 달리 1년의 임기동안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 철저히 반대해왔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결국 민주당이 4+1로 가느냐 한국당과 손을 잡느냐 둘 중의 어떤 쪽을 택하느냐가 관건이다.

민주당이 전자를 택하면 ①②③④을 통과시킬 수 있다. 우선 9일 본회의에서 예산안과 부수 법안을 통과시킨 뒤 ④을 본회의에 상정할 수 있다. 예산과 관련된 안건에 대해서는 국회법상 필리버스터가 불가능하다. ④이 본회의에 상정됐다는 것이 알려지는 순간 한국당은 바로 필리버스터를 걸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10일 이후 정기국회가 끝나면 필리버스터도 종료된다. 국회법 106조2에 따르면 “무제한 토론을 실시하는 중에 해당 회기가 끝나는 경우에는 무제한 토론의 종결이 선포된 것으로 본다. 이 경우 해당 안건은 바로 다음 회기에서 지체 없이 표결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그래서 한국당이 지난 11월29일 선제적으로 모든 안건에 필리버스터를 걸어서 한 회기를 무한정 가져가려고 한 것이다. 패스트트랙 법안이 본회의에 상정되는 것 자체를 막으려는 계산이다.

민주당은 이미 소집 신청을 해놓은 11일 임시국회 본회의를 열어 ④을 통과시킬 수 있고 그 다음 순차적으로 ③을 상정하고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하면 회기를 종료시켜서 무력화시킨 뒤 다시 임시국회 본회의를 열고 ③을 의결하면 된다. 일명 쪼개기 임시국회를 활용해 안건을 하나씩 통과시키는 것이다. 국회법 7조 1항과 2항에 따르면 “회기는 의결로 정하되 의결로 연장할 수 있고 회기는 집회 후 즉시 정해야 한다”고 돼 있어서 문 의장과 4+1 협의체가 맘만 먹으면 한국당의 필리버스터를 뛰어넘을 수 있다.

4+1 협의체는 주말 내내 치열하게 논의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다만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회복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 ④으로 인한 내년 총선에서의 부진이 두려울 뿐이다. 한국당을 유인해서 한국당 때문에 ④을 누더기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면피하고 선거제도 개혁을 불발시키는 것이다.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8일 오후 출고된 경향신문 기고문을 통해 “민주당은 여전히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 하고 있다. 비례대표 의석 몇 자리를 더 얻겠다고 끊임없이 개혁안을 후퇴시키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공수처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한국당과의 타협 가능성에 미련을 두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한국당과의) 타협이 잘 되면 개혁과는 거리가 먼 누더기 입법이 될 것이고 타협이 안 되면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칠 뿐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한국당과 타협을 하겠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 역시 8일 오후 출고된 <정치 막전막후 298번째> 칼럼을 통해 “이른바 보수 기득권 세력이 선거법 개정을 반대하는 이유가 뭘까요? 승자독식의 현행 선거제도가 자신들에게 훨씬 더 유리하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유불리를 떠나서 기세 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라고 지적했다.

하 위원장은 무엇보다 민주당과 한국당이 운운하는 “선거법은 여야 합의 처리 관행”에 대해 “아무런 근거 없는 관행보다 중요한 것은 헌법이다. 대한민국 헌법 49조는 국회는 헌법과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못 박고 있다”고 환기했다. 

또한 “선거법은 게임의 룰이니까. 합의가 필요하다는 엉터리 같은 얘기는 언급할 가치도 없다. 야구 게임의 룰을 야구선수들끼리 합의해서 정하는가? 사실 국민의 대표자를 뽑는 선거의 룰은 국회의원들끼리 정할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기구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옳다. 그런데 2015년 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치권에 연동형 비례대표제(지역구 200대 비례대표 100 100% 연동률 적용) 도입을 권고했다. 이런 권고를 따르는 것이 맞다”고 주문했다.

하승수 위원장은 국회 정문 앞에 농성장을 차려놓고 매일 오전 선거제도 개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궁극적으로 하 위원장은 민주당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는 것은 국민들을 속이려는 것”이라며 “(선거제도에) 연동형 개념이 도입되면 정당 득표를 많이 하면 의석을 더 얻을 수 있다. 민주당도 내년 총선에서 정당 득표율을 더 끌어올리면 비례대표 의석을 더 받을 수 있다. 그것이 정정당당한 것이지 선거법을 누더기로 만드는 꼼수로 의석을 더 얻겠다는 것이 노무현 정신을 따른다는 정당이 할 일인가”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성 기자는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현행 선거제도를 유지하는 한 (1등만 생존하고 나머지는 다 죽기 때문에) 증오를 부추기고 갈등과 분노를 조직화해서 정권을 잡는 극한 대결의 정치를 멈출 수 없습니다”라며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어느 정당도 과반 의석을 차지하기 어렵게 됩니다. 교섭단체가 4개 정도로 늘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 정당 구조로 보면 민주당, 한국당, 바른미래당, 정의당이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4당 체제가 되면 극단적인 대결의 정치 대신에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치 선진국으로 가는 첫발을 내딛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지금 당장 독일식 연동형 권역별 비례대표제(지역구와 비례대표 1대 1 100% 연동률 적용)를 도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라며 “유권자들의 반정치주의, 한국당을 비롯한 이른바 보수 기득권 세력의 완강한 반대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재 국회 본회의에 부의되어 있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도 관철해서 정치 개혁의 실마리를 찾아야 합니다. 모든 개혁이 그렇듯이 정치개혁도 한 번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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