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도 상품 중 신탁도 허용
은행의 민원 수용
DLF 사태 대응 방안
복잡한 여러 규제들 있지만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해외금리 연계형 DLF 사태(derivative linked fund/파생결합펀드)로 은행의 원금 보장에 대한 신뢰가 깨진 가운데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대책이 은행업계의 불만으로 인해 완화됐다. 은행권의 지속적인 민원 어필이 통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는 12일 오전 서울정부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금융위는 금융감독원과 함께 한 달여 전(11월14일)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이란 개념을 도입해서 원금 손실 가능성이 20%를 넘어가는 경우 판매를 금지하는 내용 등을 담은 초안을 발표한 바 있다.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을 Ⓐ라고 했을 때 Ⓐ에 해당되는 상품들 중에 다 판금되는 것이 아니라 △사모펀드 △신탁 상품만 판금 조치의 대상이 되는 게 핵심이다. 

그러자 은행권의 반발이 거셌다. 은행이 취급하는 신탁 시장의 규모가 40조원대에 이르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신뢰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은행장들은 은성수 금융위원장(11월29일)과 윤석헌 금감원장(12월5일)을 직접 만나 민원을 전달했다. 두 금융당국 수장은 한 달간 은행장들의 고충만 들었지  4558억원 규모를 날리게 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데에는 소홀했다. 이날 최종 방안이 발표되기 직전에도 은 위원장은 은행장들과 간담회를 가졌고 “DLF 사태로 은행권 신뢰 실추됐다”고 꼬집는 발언이 대대적으로 보도됐지만 결국 은행들의 민원을 챙겨준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지난 11월19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그러다 보니 이날 확정된 최종 방안의 골자는 Ⓐ에 해당되는 신탁 상품일지라도 공모형 ELS(주가연계증권)가 담겨 있다면 제한적으로 계속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사모펀드나 신탁은 공모형과 달리 고객이 금융사와 개별적인 거래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위험 고수익이거나 복잡한 금융상품으로 설계됐을 가능성이 높고 당국의 통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이번 방안은 본질적으로 신탁 상품이라도 그 안에 공모형 ELS적 요소가 들어 있다면 은행의 여러 꼼수들로 규제를 피해갈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것이다. 물론 구체적으로 규제 범위를 설정하긴 했다. 이를테면 허용되는 Ⓐ 신탁 상품은 △주요국 대표 주가지수 5개(KOSPI200 한국/S&P500 미국/Eurostoxx50 유럽/HSCEI 홍콩과 중국/NIKKEI225 일본)에 속해야 하고 △공모로 발행돼야 하고 △손실 배수가 1 이하 DLS(파생결합증권)에 해당돼야 한다. 

이런 걸 ELT(Equity Linked Trust/주가연계신탁)라고 했을 때 ELT의 판매 규모는 11월 말 기준으로 37조~40조원을 넘기면 안 된다.

또한 금융위는 금융사가 만약에 상품의 위험성을 실제보다 낮춰서 판매하게 되면 불건전 영업행위에 따른 제재를 부과하게 된다. 예컨대 말 자체도 어려운 양매도 ETN(Exchange Traded Note/상장지수증권)과 같은 원금 손실 가능성이 매우 높은 초고위험상품은 정말 원금을 거의 다 잃을 수 있다는 것을 고객에게 충분히 고지하고 인지시켜야 한다.

ETN은 금융사가 무담보 신용으로 발행한 상품으로 변동하는 주가지수 수익률을 기준으로 액수를 측정해서 만기가 되면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것을 의미한다. 약정 조건이나 수익률이 픽스된 채권 또는 ELS에 비해 오직 무담보 신용 계약으로 만들어진 상품이라서 지수가 나빠지거나 해당 금융사가 어려워지면 원금을 통째로 잃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 5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금융투자협회에서 투자사 수장들과 간담회를 갖고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나아가 금융사는 △일반 투자자에게 녹취 및 투자 숙려 제도를 적용해야 하고 △신탁 상품 설명서와는 별개로 신탁에 편입되는 고난도 공모 상품에 대한 투자 설명서를 반드시 교부해야 하고 △파생상품 투자 권유 자문인력에게만 상품 판매 권한을 부여해야 하고 △신탁 재산 운용 방법을 변경할 때는 신탁 편입 자산에 대한 적합성 및 적정성 원칙, 설명 의무, 부당 권유 금지 방안을 적용해야 한다.

금융사는 투자자의 성향을 분류해서 그에 맞는 상품을 취급해야 하는데 이번 방안은 분류의 유효기간을 1~2년으로 정했다.  

특히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ing/주문자설계생산) 펀드는 은행이 판매하고 자산운용사가 운용하게 돼 있고 무엇보다 문제가 생기면 자산운용사만 제재를 받던 기존 제도에서 판매사도 제재하기로 했다. OEM 펀드는 현행 자본시장법상 금지돼 있지만 그게 드러나면 자산운용사만 제재 대상이었다. 다시 말해 OEM 펀드는 판매사가 자산운용사를 끼고 운용하는 상품인데 사실상 자산운용사의 고유 업무에 판매사가 개입하기 때문에 불법인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금융권에서는 공공연히 거래되고 있었다. 금융위는 앞으로 무엇이 OEM 펀드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 기준(투자 대상/운용 방법/업무 협의/입증 가능성)을 통해 가려내겠다는 설명이다. 

금감원은 2020년 중으로 은행권의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판매 실태에 대한 테마 검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밖에도 이번 방안에는 △기관투자자 간 거래나 거래소에 상장된 상품은 Ⓐ에서 제외 △주식·채권·부동산과 같은 실물 투자 상품이나, 주식형·채권형·혼합형 펀드나, 주가 지수를 단순히 연계한 펀드의 경우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20%를 넘어도 Ⓐ에 포함 안 됨 △Ⓐ 여부에 대한 판단은 해당 금융사의 자체 해석에 맡겼고 필요시 금융투자협회나 당국에 판단을 요청할 수 있는 것 등이 있다.

김정각 금융위 자본시장정책관은 이번 방안을 설계하는 실무자 역할을 담당했다. 사진은 지난 6월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회계감독 선진화 방안’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그동안 금융위는 사실상 최종 발표 이전까지는 신탁을 허용해달라는 은행의 민원에 대해 손사레를 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아무리 제한 사항을 많이 뒀다고 하더라도 결국 열어놓게 됐는데 이에 대해 김정각 금융위 자본시장정책관은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을 통해 “은행이 판매한 ELT는 대부분 5개 대표 주가지수를 기초 자산으로 하고 쏠림을 막는 방식으로 상품이 설계됐고 판매됐다”며 “손실이 크지 않았다. 11월 기준 은행에서의 판매 규모가 37~40조원 정도 된다. 투자자 접근성이 용이하다는 부분도 감안됐다”고 해명했다. 

이어 “이번 대책의 주요 내용은 고난도 금융상품 규제 체계를 갖추자는 것이다. 선진국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규제 체계를 갖춘 반면 우리는 이 부분이 늦었다”면서도 “은행에서 판매되는 ELS는 기본적으로 고난도 상품에 들어간다. 사모펀드에 대한 제한은 유지되고 신탁은 은행의 특수성을 인정해 판매를 허용했다”고 덧붙였다.

신탁과 펀드의 차이점에 대해 김 정책관은 “신탁은 펀드와 다르게 운용 지식권이 신탁자인 고객에게 있다. 펀드는 집합적으로 운용하고 분산 투자를 전제로 하고 운용권이 운용사에 있다. 펀드는 맞춤형이고 일대일이지만 현실에서는 신탁이 펀드처럼 일부 운용되고 있는 것으로 봤다. 내년에 금감원과 협의해 은행권의 신탁 판매 실태조사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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