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시인/수필가
박종민 시인/수필가

[중앙뉴스=박종민] 한해를 마무리하는 세밑이다. 마지막이란 얘기를 흔히들 쓴다. 그럼에도 끝이 어디인줄 모르고 치닫는 욕심과 욕망을 가진 인간들의 사고(思考)와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기에 인간사회가 날로 진화하고 진전하며 발전을 거듭해간다.

하지만 한계는 있다. 매사에 시작이 있고 끝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지나치게 서두르고 나댈 필요는 없다. 사람의 상상력과 생각하는 범위 또한 지극히 제한적이다. 행동이나 행위패턴 역시 끝이 있다.

어느 시점에선 끝을 맞이하게 된다. 마지막이라 말한다. 그러나 인간의 허욕엔 마지막이 없지 싶다. 한계와 끝이 어디인지 마지막이 언제인지를 모른 채 욕심 부리고 집착하며 나댄다.

그러다 일을 저지르고 만다. 사건사고가 유발되고 망신이 따른다. 모두 부질없는 짓거리다. 시작과 끝이 어디인지 분간 못하는 삶은 슬프다. 마지막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좋은 마무리 멋진 마감이 돼야만 한다.

거실에 걸어 놓은 두툼하던 달력이 딱 1장만 남아 쓸쓸하게 걸려있다. 창밖으론 휘 잉 휘잉 삭풍이 불어 에며 마른나무가지를 훑는다. 한 장 달력이 걸린 벽이 더 한층 헛헛하기만 하다. 1년이라는 작지 않은 날들을 비껴온 만큼 빛깔을 잃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누렇게 취색된 달력을 바라다보며 달력을 내 걸 당시의 초심(初心)을 생각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마무리하는 마지막까지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실을 실천하는 다짐이었다. 어언 한해의 끝이 눈앞에 와 있다. 빨리도 흘러 사라져가는 세월이다.

쉼 없이 돌고 돌아 계절과 시절이 바뀌고 빙글빙글 윤회하는 대자연의 섭리와 천리를 어느 누가 감히 탓 할 수가 있겠는가. 냉엄한 진리 앞에서 어쩌면 나는 억지로 태연한 듯 능청떨고 있는 지도 모른다. 불현듯 정신을 가다듬고 몸과 마음을 도닥이며 심호흡을 조절해본다. 그러면서 마지막이란 의미를 생각해본다.

달랑 남은 달력이 없애지는 시각이 마지막이리라. 그러나 마지막은 끝이 아니다. 마지막은 끝을 마지 한다는 의미를 담고는 있지만 그것으로 모든 걸 끝내는 소멸(掃滅)을 말하는 건 아니다. 흔적 없이 증발하는 게 소멸이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는 죽음을 맞아 육신의 소멸을 가져오지만 영혼은 남아서 영생하게 된다고 하지 않는가. 그처럼 인간사의 마지막은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 잠시 일시적으로 마감하고 즉, 코다(Coda)한 뒤 다시 라르고(Largo)로 시작하는 시점인 것이다. 매사에는 마지막이란 기회가 각기 주어진다.

이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 절묘한 타이밍인 것이다. 새롭게 사물과 사안이 생성되고 그런 속에서 뭔가를 꿈꾸고 시작하며 열정을 가지고 추진하고 추구해 나가게 하는 게 마지막이 갖는 힘이다. 못 이뤄 아쉬운 일들과 후회로 남을 사안들이 없도록 하는 다짐과 결기의 순간인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마지막의 의미란? 어떤 사안을 시작하는 맨 처음의 순간으로 새겨두는 것이다. 마지막은 곧 바로 새로움으로 연결해 시작하게 하는 바른 시작점인 것이다. 모든 시작이 마지막으로 이어지고 마지막이 시작으로 이어져나가는 게 인간사이며 인생사이다. 중간 어느 한 지점에서의 끊어지고 이어짐이 아니다.

하나를 마무리하고 마무리하는 끝부분의 지점이 사안을 마무리를 하는 끝으로서 마지막이 되겠지만 그 끝은 마지막이 아닌 다시 시작하는 모멘트(moment)이다. 한 해를 마감하는 세밑 끝의 마지막에 이어 새해가 다시 오고 있질 않은가.

시간에 쪼들리고 삶에 지친 이들이여, 결코 허탈해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올해의 마지막을 잘 마무리하는 이들 모두에게 곧 희망찬 새로운 시작점이 될 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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