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통상 국장급 대화
원론적인 이야기만 나와
서울에서 8차 대화하고 한중일 정상회의 있지만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지난 7월 느닷없이 한국 기업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가한 뒤로 5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일본 정부는 원상복구를 할 조짐이 없다. 어찌보면 아베 내각은 긁어부스럼을 해서라도 전쟁 가능한 국가로 가기 위한 개헌을 완료해야 하기 때문에 출혈이 크더라도 수출 규제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한일 통상 당국은 16일 10시부터 20시까지 일본 도쿄 경제산업성 본관 17층 제1특별회의실에서 마주했다. 양국 통상 국장급 회의(제7차 한일 수출관리 정책 대화)가 열린 것인데 이호현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정책관과 이다 요이치 경제산업성 무역관리부장 등이 대좌한 것인데 양국 당국자들이 각각 8명씩 참석했다.

이호현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정책관(왼쪽)이 16일 오전 정책대화 장소인 일본 경제산업성 본관 17층 제1특별회의실에서 일본 측 수석대표인 이다 요이치(飯田陽一) 경제산업성 무역관리부장과 악수하고 있다.
이호현 무역정책관(왼쪽)이 이다 요이치 무역관리부장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무려 10시간 동안 논의했지만 뾰족한 수가 도출되지 않았다. 결국 일본이 지소미아(GSOMIA/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유예라는 안보적 실리만 가져가고 수출 규제 재검토에는 마땅한 답을 주지 않고 시간만 끌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지난 8월23일 청와대가 정의당의 제안을 수용해 수출 규제책에 지소미아 종료 카드로 맞선 뒤 11월22일 지소미아 종료 유예를 선언한 이후 일본 당국의 태도는 조금 달라졌다. 7월 한일 통상 당국(과장급)이 만났을 때만 해도 냉랭한 분위기였는데 이번에는 일본이 제대로 대접하는 모양새였다.

양국은 △민감 기술 통제 현황 △한일 수출관리 제도 △향후 추진 계획 등을 의제로 줄다리기를 했지만 기본적인 입장차가 너무 커서 실질적인 성과는 없었다. 한국은 수출 규제 철회를 현실화하고 싶어 했지만 일본은 수출 규제의 궤도를 바꾸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 정책관은 “양국 수출 관리 제도와 운영에 대해 집중 논의했고 상황 변화에 따라 신속하고 충분한 의견 교환, 핫라인 필요성에 인식을 공유했다. 일본이 수출 규제 3개 품목(포토레지스트/고순도 불화수소/플루오린 폴리이미드)에 대해 일부 생각을 전했지만 공개적으로 밝히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요이치 부장은 “양국이 이해가 진전된 부분도 있지만 견해가 다른 부분도 있었다. (이번 대화로) 신뢰의 회복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고 밝혔고 보고를 받은 가지야마 히로시 경제산업장관도 “대화를 한 것이 하나의 진전”이라며 원론적인 이야기를 했다.

제8차 대화가 서울에서 곧 열릴 것이고 오는 24일 중국 청두에서 한중일 정상회의가 있을 예정인데 수출 철회를 비롯한 한일 갈등을 봉합할 절충안이 도출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결국 일본의 장기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

박정호 연구원(KDI 한국개발연구원)은 7월31일 방송된 SBS CNBC <임윤선의 블루베리>에서 “일본 정부는 예전부터 본인들이 2차 세계대전 전범국이었다는 사실이 많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며 “왜냐면 국제사회에서 전범국하면 독일과 나치만 떠오른다. 아시아에서 침략당한 국가들은 잘 알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잘 모른다”고 밝혔다.

이어 “처음에는 대법원 판결을 이후 국가 간의 신뢰가 깨졌다고 이슈를 제기했는데 이걸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 전범국의 받지 못 했던 배상금 문제라고 이슈화하면서 자칫하다가는 일본이 2차 대전의 전범국 중 하나였어? 이렇게 될 것 같으니까 이슈를 전환하는 것”이라며 그래서 “북한 같은 우려되는 국가에 굉장히 위험한 물질이 수출될까 봐 규제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렇게 프레임 전환을 하는 것이다.

박정호 연구원은 일본이 전범국의 이미지를 확산시키지 않고 싶어한다는 점을 환기했다. (캡처사진=SBS CNBC)

일본은 2차 세계대전 패배 이후 전쟁을 일으킬 수 없는 평화헌법 체제로 강제 개편됐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헌법을 개정해서 다시 전쟁이 가능한 정상 국가로 가려고 한다. 이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전후 74년이 흐른 지금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이미지는 과거와 다르다. 하지만 전범국 이미지를 다시 환기할 수 있는 것이 피해국들의 존재다.

함께 출연한 알파고 시나씨 기자(터키 통신사 지한의 한국 특파원)는 “나도 한국에 와서 알게 됐다. 그 전에 (일본이 전범국인지) 1도 몰랐다“고 증언했다.

또 다른 패널인 문성후 박사(서울종합과학대학원 경영학)는 일본의 노림수에 대해 “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고 비상식적인 조치를 했을까”라며 “첫 번째가 우리나라 경제를 견제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일본의 기술 패권을 놓고 싶지 않은 것이다. 세 번째는 트럼프한테 배운 것 같다. 밖을 때려서 안을 묶는 것. 미·중 간의 갈등을 통해서 트럼프의 지지 세력을 모으는 것이다. 못된 짓을 안 좋은 것을 배운 것이다. 아주 전략적이고 정교하게 게임의 규칙을 깬 것 같다”고 풀어냈다.

박 연구원은 문재인 정부의 대응 전략과 관련 “싸움의 판을 다른 데로 옮겼으면 좋겠다. 일본이라는 전범국과 일본에 피해받은 말레이시아, 중국 등 다른 국가들과 연대해서 아직 반성하지 않는 일본이 있음을 알리고 그래서 일이 거기서 불거졌다는 프레임으로 바꿔야 한다”면서 “반도체 규제를 풀지 말지로만 가면 안 된다. 그랬을 때는 우리가 가진 패를 활용하지 못하게 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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