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의 제안 수락 안 돼
중러의 대북 제재 완화 결의안 제출
북한 핵 개발 천명하고 시간줄 것
미국도 고민이 깊어져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2박3일 방한 기간 동안 공식적으로 북한에 만나자고 시그널을 보낸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결국 빈손으로 떠났다.

비건 대표는 17일 16시 김포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출국했다. 북한이 고심 끝에 응답을 해서 비건 대표가 방일 중인 19일까지 북미 회동이 성사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희박하다.

17일 오후 김포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출국한 비건 대표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한은 최근 들어 동창리에서 “중대한 시험”을 재개하고 있다면서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환기하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를 파국이었던 2018년 이전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경고성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각종 채널을 통한 센 발언들도 너무 많이 나왔다. 

그래서 통일부장관을 지낸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16일 방송된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새로운 셈법을 내놓기가 미국도 지금 현재로서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북한이 너무 세게 행동을 했다”면서 “(두 차례 동창리 시험을 한 뒤) 쏟아내는 여러가지 말들이 전략적 핵 전쟁 억제력을 확보하게 됐고 앞으로 이걸 이용해서 말하자면 새로운 고강도 전략 무기를 개발할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했기 때문에 지금 (미국이) 새로운 셈법을 내놓으면 북한의 그런 대미 압박이나 대미 협박에 굴복해서 내놓는 것처럼 되니까 미국으로서도 참 셈법에 관한 이야기를 지금 할 수 있는 형편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정 부의장은 그렇게 되면 “트럼프는 선거에서 망하는 것”이라며 차라리 “(새로운 셈법으로 선제적 제재 완화를 해주는 등의 뭔가) 하려면 일찍 했어야 된다”고 밝혔다.

미국도 고민이 깊다. 

우리 시간으로 17일 아침 비건 대표가 방한 중일 때 중국과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 제재 완화 요구 결의안 초안을 제출했다. 북한이 영변 폐기도 보여주지 않은 상황에서 뭔가 상응조치를 못 얻었다면서 ICBM급 시험을 했다고 연일 선전하고 있는데 미국은 대북 제재 공조의 균열에 직면해 있다.

미국 입장에서 그동안 북한으로부터 △풍계리 △동창리 폐기 시연을 얻어내고 △영변까지 폐기하겠다는 조건으로도 한미 군사훈련을 축소하거나 유예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내주지 않았는데 이제와서 중러의 제재 완화 기조에 동조해주기가 어렵다.

미국 국무부는 중러의 초안 제출에 대해 “지금은 대북 제재 완화를 고려할 때가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물론 중러가 선제적으로 초안을 제출한 만큼 북한이 북미 비핵화 협상판을 깨는 돌출 행동을 하기는 어려워졌다. 즉 미국에 새로운 셈법을 촉구하면서 연말 시한을 내건 북한이 크리스마스 도발을 하거나 매우 거친 언사를 남발하기는 조심스러워졌다. 미국은 그런 측면에서 시간을 벌었다고 볼 수도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조선노동당 △제7기 2차 전원회의(2016년 5월/2020년까지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수립) △제7기 3차 전원회의(2018년 4월/핵 경제 병진 노선에서 더 이상 핵 개발을 하지 않고 경제 발전에 총력) 등을 통해 경제 우선주의 노선을 공식 천명했고 남북미 비핵화 협상판을 열어젖혔다.

정 부의장은 오는 23일~25일에 열리게 될 △제7기 5차 전원회의에서 김 위원장이 상황 변화에 따라 “경제 발전에 총력을 집중하겠다는 결정을 했는데 그걸 할 수 없게 됐다. 그러니까 결정을 번복하고 다시 핵 실험도 하고 핵무기도 개발할 수 있다는 결정을 해놓고 그 전제 하에서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을 강하게 신년사를 통해 예고할 것”이라면서 “아마 한 두 달 정도는 미국의 태도 변화를 기다릴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아울러 “(북한이) 언행을 삼가하면 연말을 조용히 보낼 수 있게 해주겠다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어쨌든 미국과 북한은 먼저 실질적인 것을 얻어내려고 2년간 줄다리기를 해왔는데 결국 어느 쪽도 먼저 내주고 받아내기 어렵다면 동시 타결을 통해서 모양새 나쁘지 않게 상호 이익을 얻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

정세현 부의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새로운 길을 주문했다. (캡처사진=tbs)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는 계속 미국의 워킹그룹 체제에 묶여 남북 교류를 한 치도 발전시키지 못 해야 할까.

정 부의장은 “비건이 북한으로부터 사인이 없으면 문재인 대통령이나 또는 우리 외교부 차관 또는 평화교섭본부장한테 할 이야기는 뻔하다”며 “만약 북한이 새로운 길을 가게 되는 경우에는 절대로 한국이 대오 이탈해서는 안 된다. 일본 가서도 그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러니까 한미일 공조를 긴밀히 하자는 이야기 밖에 할 것이 없다”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정 부의장은 “그럴 경우에 우리가 그 길을 계속 따라갈 것인지 그건 좀 고민해봐야 된다”면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2032년 서울·평양 공동올림픽 유치 선언을 했던 만큼 남북 교통 인프라를 깔아야 할 동기가 크다는 점을 부각했다.

정 부의장은 “(2032년 올림픽 개최지 결정은) 2021년쯤 당겨서 11년 전에 날 수 있다. 그러면 내후년인데 내년쯤에는 서울·평양 올림픽을 공동으로 개최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깔아야 된다. 제일 중요한 것이 서울과 평양 간의 교통 문제다. KTX를 평양까지 최소한으로 연결해야 되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등 남북 교류 차원에서 재개할 수 있는 일들은 대북 제재 공조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마침 중러가 제출한 초안에는 남북 ‘철도와 도로 협력 프로젝트’를 제재 대상에서 면제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정 부의장은 문 대통령에게 미국의 제약을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는데 문 대통령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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