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기업 위주로 짜여진 질서
소비자 권익 3법은 금소법에 없어
손해보험사들의 변명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금융소비자연맹은 올해로 18년 됐다. 2000년대 초반 금소연이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 있다. 금융소비자는 금융사와 규제 당국의 밀착된 관계에 비해 완전히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조연행 금소연 회장은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소비자는 완전 뒷전이다. 모든 법과 제도와 정책이 산업 발전 위주였다. 금융 역시 마찬가지”라며 “그동안 금융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정부가 움직였지 소비자를 위해 움직이지 않았다. 2008년 이후에 금융소비자 권익 보호라는 말이 처음 나왔다”고 밝혔다. 

이어 “공급자(금융사)가 정부를 구워 삶아서 법을 만든다”면서 상법의 손해사정사를 예로 들었다. 

조연행 회장은 금융 소비자들에게 절대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기 위해서 소비자 권익 3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진=박효영 기자)

조 회장은 “상법상 소비자가 손해사정사를 선임하게 되면 비용은 보험사가 부담하게 돼 있다. 근데 밑에 보험업 감독 기준에 보험사의 사전 승인을 득한 경우에만 해당한다고 돼 있다. 지금까지 사전 승인을 얻은 경우는 한 건도 없다. 자기네끼리 짜고 기준을 뒤바꿔서 여태까지 40년간 소비자를 속여왔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조 회장은 “이런 것이 완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면서 “소비자는 항상 말도 없고 의견을 제시할 수도 없고 법을 만들 수도 없다. 그나마 소비자단체가 생겨서 주장을 하고 있지만 이제서야 하는 것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평평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조 회장은 금융 피해 사례가 발생했을 때마다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을 놔두고 공급자들이 모여서 소비자 권익 보호를 강화하겠다고 피켓들고 자기네들끼리 모여서 뭔가 한다고 하는데 웃기는 쇼하지 말아야 한다”고 질타했다.  

이날 조 회장은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금융감독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 등 2가지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했다.

먼저 조 회장은 최근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관련 공동 소송에서 힘겹게 이겼다면서 “소송 참여자가 한 2만명 정도 된다. 2만명에게 이자 붙여서 1인당 13만원씩(합계 약 20억원) 위자료를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집단 소송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소송 미참여자는 똑같은 피해를 당했음에도 보상을 받지 못 한다.

조 회장은 “1인당 10만원씩 1억500만건이라고 치고 집단 소송제도가 있었다면 (카드사가) 10조원을 보상해야 한다. 카드정보 유출하는 회사는 완전 망한다. 10만원씩만 해도 10조원 이상이 나가야 하는데 20억원이면 껌값”이라며 “현재는 정보 유출로 인한 피해를 입증할 책임이 피해자들에게 있다. 그래서 여태까지 소송에서는 승소하기가 어려웠다. 재판부도 공급자 위주로 산업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바라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송 참여자 모집이) 소액이라서 잘 안 모인다. 우리는 공정위 지원받아서 무료 소송을 해서 끌어모은다고 모았는데도 2만명이었다”고 덧붙였다.

사실 금융 소비자 피해가 발생했을 때 분조위는 곧 잘 피해자의 편에서 사실관계를 인정해주곤 한다. 하지만 그것 뿐이다.

조 회장은 “즉시 연금 보험상품에 1억원을 넣으면 다음달부터 연금을 따박따박 주겠다고 약관에 나와 있다. 그러면 누구나 1억원 낸 것에 공시율을 곱해서 주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것을 분조위에서도 그게 맞다고 결정했다. 그러면 그걸 지급해야 하는데 삼성생명에서 못 주겠다고 했다. 금감원이 약관을 유권 해석할 권한을 가진다. 근데 유권 해석을 안 내리고 있다”고 풀어냈다.

이어 “유권 해석을 내려서 행정 조치를 해야 하는데 그걸 안 하고 있다”고 밝혔다. 

약관은 그야말로 기초 서류이고 금융사가 이것을 위배하면 영업정지에 대표자 징계 조치까지 가능하지만 금융당국이 소극적이다.

조 회장은 “(금융상품에 대한) 인허가권자가 해야 하는데 안 하니까 소비자와 공급자 간의 싸움이 되어 버린다. 인허가권자가 책임을 회피하니까 소비자가 권리를 찾으려면 공급자에게 직접 민사소송을 걸어야 한다. 공급자는 소비자를 데리고 논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없고 입증도 소비자가 해야 하기 때문에 절대 못 이긴다”면서 “당국이 도둑놈들이다. 뒷짐지고 권한을 행사하지 않고 만일 해서 (소송에서) 지면 자기들이 책임져야 하니까”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조 회장은 금융당국이 소비자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지난 8월 4558억원 가량의 원금 손실을 일으킨 DLF 사태(derivative linked fund/파생결합펀드)도 마찬가지다. 금감원이 움직인다면 DLF 판매자의 불완전판매 문제인지 상품 자체의 사기성 문제인지 가려낼 수 있다.

조 회장은 “사기성은 상품 설계 자체를 공급자한테 유리하게 하고 소비자한테 불리하게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사가 고의로 그렇게 설계했다면 이것은 사기 상품이다. 그러면 사기성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며 “사기성 여부를 가려내는 것은 금감원만 할 수 있다. 상품 만들 때부터 로직이나 이율 등을 다 따지면 그걸 가려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조 회장은 “불완전판매라고 하면 상품은 완전한데 판매자가 과장 과잉 설명하고 소비자가 치매 노인이라 설명을 잘 못 들어서 그런 것이 된다. 판매 당사자의 문제냐 회사 전체의 문제냐”라면서 “지금 (금융당국이나 금융사는) 단순 불완전판매로만 몰고 있다. 사기성 여부는 소비자가 죽어도 못 밝힌다. 법원 가도 못 밝힌다. 금감원에서 조사권을 행사해서 확보할 수 있고 이걸로 검찰에 고발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실제 금융위가 발표한 DLF 대책 방안에도 ‘고난도 금융상품’이란 개념을 도입하고 불완전판매에 대한 규제를 담았지만 이미 발생한 것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 추궁은 쏙 빠져있다. 

조 회장은 “서류상으로는 완벽하다. (고객들이) 설명 들었고 서명도 다 했다. 법원 가면 못 이긴다. 금감원에서 직접 사기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해야 된다”며 재차 강조했다.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소비자 권익 3법(집단소송제도/징벌적배상제/입증책임전환)을 도입하는 것이다. 지난 11월25일 금융소비자보호법이 8년만에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통과됐지만 사실상 알맹이가 다 빠져 있다.

이번 금소법의 특징은 6대 원칙(①적합성:상품 판매시 소비자의 재산 상황 및 투자 경험 등을 고려/②적정성:소비자가 구매하려는 상품이 소비자의 재산 상황 등에 비춰봤을 때 부적절하면 그 사실 소비자에 고지/③설명의무:상품의 중요사항 설명/④불공정행위 금지: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소비자 권익 침해 금지/⑤부당권유 금지:소비자가 상품에 대해 오인할 수 있는 행위 금지/⑥허위과장 광고 금지:광고에 필수적으로 포함해야 하는 사항을 포함시키고 허위과장된 내용 금지)이 도입됐다는 점이다. ③과 ⑤을 위반할 경우 상품 수입의 최대 5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게 됐고 ①② 위반은 과태료를 매길 수 있다. ①②③ 위반으로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되면 금융사가 위반하지 않았다는 입증 책임을 하도록 규정했다. 

이밖에도 청약 철회권, 위법계약 해지권, 판매제한 명령권 등이 포함됐다.

조 회장은 “김진태 의원(자유한국당)이 강력하게 반대해서 금소법에서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배상제가 빠졌다”면서도 “일단 (본회의에서 통과)해야 한다. 또 개정할 수 있으니까”라고 밝혔다.

조 회장은 보험업계에 할 말이 많다.

이를테면 “소비자가 신뢰하지 못 하면 산업은 발전할 수 없다. 특히 보험 산업은 신뢰가 바닥이고 제로다. 세계 꼴지다. 금융이 우간다보다 못 한다(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가 DLF 사태 이후 한국 금융당국 맹비판)고 하는데 보험 산업은 이런 신뢰가지고 산업 자체에 희망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조 회장은 “소비자들이 신뢰하지 않아서 보험을 기피하는 것”이라며 “새로 가입할 여지가 없다. 그런 측면의 하나가 프루덴셜 같은 알짜 회사도 외국이 보기에도 시장성이 없다고 해서 내놓는 것이 아닌가 싶다. 푸르덴셜은 우리나라 생명보험사들 중에 최고로 좋은 회사다. 우리가 평가해보면 10년 동안 1위다. 외국인들이 보기에 시장에서 발전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환기했다. 

조 회장은 최근 손해보험사들이 손해율 악화를 근거로 보험료 인상을 주장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를 다 하지 않고 있다면서 반박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조 회장은 보험사들의 손해율 문제에 대해서 기존에 알려진 것들과 다른 게 많다고 말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조 회장은 “보험소비자연맹을 만들면서 손해보험사들 자동차 보험료 인상 반대 운동부터 시작했다”며 “보험 상품의 기초는 위험률이다. 위험 통계에 기반한다. 손해율 문제는 정상적인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자동차 보험 문제를 이야기하면 보험금 누수나 의사들의 과잉 진료 나 허위 환자나 정비업소의 과잉 수리 문제 등 이것들은 통제 가능한 변수”라고 주장했다. 

이어 “보험사의 롤은 선량한 계약자 자산의 관리자일 뿐이다. 선의로 계약자 자산을 내 재산처럼 관리해야 된다. 근데 손해보험사들은 여태까지 그렇게 안 했다. (병원이) 과잉 진료해도 그냥 줘버렸다. 과잉 보험금을 그대로 줘버리고 손해율 높다고 해서 보험료를 올리는 것”이라며 “자동차 한 쪽 면을 받아버리면 거기만 수리하면 된다. 손해보험사들이 나가서 확인만 하면 보험금을 줄일 수 있다. 그런데 확인도 안 한다. 정비업소에서 청구하는대로 다 준다”고 이야기했다.

보험사들이 보험금 지급이나 보험 사기 단속에 매우 엄격한 것 같지만 조 회장은 “일상적인 측면에서 그렇지 않다. 손쉬운 영업을 하는 것”이라며 “그걸(보험 사기 여부 등을) 밝혀내고 꼬치꼬치 따져야 되니까”라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조 회장은 “손해율 수치(100% 이상이라고)만 떠들지 말고 위험 보험료로 얼마 거뒀는데 지급 보험금은 얼마 나갔고 부가 보험료는 얼마이고 설계사들에게 얼마 줬고 사업비가 얼마 남았고 자산운용수익이 얼마라고 그걸 합계내서 얼마가 나왔다고 그 통계를 내놔야 한다”면서 “옛날에는 보험개발원 통계를 통해 그걸 다 공개했다. 그런데 우리가 그걸 분석해서 발표했다. 그랬더니 자기들끼리 그걸 다 빼버렸다. 예정사업비와 실제사업비를 다 공개했다가 지금은 빼버렸다. 도둑놈들이다. 보험료 올릴 때만 엄살부린다”고 비판했다.

조 회장은 실손 의료보험에 대해서도 “원래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때문에 실손 보험료는 내려가야 당연하다. 보장성이 강화되면 보험사가 내야 할 돈을 정부가 내주는데 진료비 상한제가 있어서 더 진료비가 나오면 정부가 돌려준다”며 “왜 해마다 실손 보험료가 20~30% 올라가느냐. 소비자와 병원이 서로 이득을 보니까 의료 과수요가 생긴다. 도수 치료 비급여가 대표적이다. 그걸 막아야 한다. 그걸 안 막고 소비자들에게 보험료만 올린다? 선량한 소비자만 돈을 더 내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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