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통과에 헌신한 원외 인사들
민주당의 기득권으로 누더기 됐지만
원내 인사들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길게 보면 21년 전(1998년) 故 김대중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모든 정당들이 전국적으로 고르게 국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겠다”고 발언했을 때부터 시작됐다. 이후 故 노무현 대통령이 대연정을 해서라도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노력했지만 15년 동안 난망했다.  

마침내 승자독식 선거제도가 비례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바뀌게 됐다. 

27일 17시47분 국회 본회의에서 공직 선거법 개정안이 재석 167인 중 찬성 156인, 반대 10인, 기권 1인으로 가결됐다. 

2017년부터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전국 단위로 정치개혁공동행동이 결성됐고 작년 6.13 지방선거 직후부터는 진보적 시민사회가 원내외 소수 정당들과 함께 선거법을 바꾸기 위해 총력을 다했다. 

물론 2015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역구와 비례대표 200대 100을 모델로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권고했고 그 기준으로 보면 막 통과된 선거법은 아주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2016년 20대 총선 실시 전에 되려 비례대표 의석이 1석 줄게 되는 선거제도로 개악됐던 사례를 봤을 때 100분의 1보라도 나아갔으니 그나마 다행스럽다는 분위기다.

왼쪽부터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오태양 미래당 공동대표, 김현우 비례민주주의연대 활동가의 모습. (사진=박효영 기자 촬영 및 개인 페이스북)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선거법이 통과된 직후 기자와의 통화에서 “아이고 진짜 마지막까지 속을 썩였다”고 말했다.

하 위원장은 비례민주주의연대와 정치개혁공동행동 공동대표를 맡고 있고 그동안 원외 시민사회 채널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래는 하 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Q: 선거법이 통과됐기 때문에 이제는 선관위 획정위원회의 획정안을 입법 절차로 통과시키는 일이 남아 있다.
A:
이번에는 되게 간단할 것 같다. 조금 조정이 필요하지만 그게 폭이 크지 않아서 획정위원들이 별로 시간을 오래 안 써도 될 것 같다. 

Q: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A:
일단 뭐 통과된 것은 다행인데 내용도 많이 후퇴한데다가 지금 위성 정당 논란까지 있어서 전세계 선거제도 개혁의 역사상 가장 지저분한 과정을 밟고 있다. 그만큼 한국 정치 수준이 문제가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단 통과됐으니까 이 제도가 잘 운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Q: 향후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논의가 더 있을 것이고 내년 총선이 끝나서도 선거법 개정이 계속될 것 같다.
A:
어차피 통과된 선거법은 이번 총선 한 번 밖에 못 쓴다. 이 선거제도 자체가 그럴 수밖에 없다. 이 제도 자체가 어떤 원칙에 따라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현실적 타협의 결과물이라서 물론 어쩔 수 없긴 했지만. 이 제도로는 오래 갈 수 없다. 다시 선거제도 개혁 이야기는 바로 내일부터 나올 상황이 될 거다. 나는 개헌까지 포함해서 큰 틀의 대토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한국당은 개헌에도 별 관심이 없긴 하지만 개헌도 해야 한다. 이런 큰 틀에서의 정치 개혁 논의를 끌고 갈 수 있는 세력이 형성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원외 정당들 중에 미래당은 선거제도 개혁에 가장 적극적이다. 거의 올인했다. 오태양·김소희 미래당 공동대표는 원외에서 시민사회 채널로 뭔가 요구할 때 톡톡튀는 아이디어(가면 퍼포먼스와 5당 원내대표 합의문 발표 증거 사진 등)로 언론 카메라의 주목을 받았다. 

아래는 오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Q: 지금 심정이 어떤가?
A:
천신만고 끝에 어쨌든 됐는데 그래도 뭐. 하 참. 국회 본회의 표결 과정을 잘 지켜봤고 정말 천신만고라는 말밖에 안 떠오른다. 어렵게 시작해서 어렵게 끝을 맺었다. 아쉬움이 크지만 새로운 정치 개혁을 위한 작은 물꼬를 텄으니 이 마중물을 소중하게 가져가서 더 큰 정치 개혁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Q: 말 그대로 마중물이다. 앞으로의 추가 논의나 총선에서의 효과를 어떻게 예상하는가?
A:
통과된 선거제도가 유권자들의 사표를 줄이고 민심을 잘 반영하게 되어서 더 많은 정치 세력들이 국회로 들어가는 것에 기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21대 총선 결과에 달려있다. 어쨌든 이렇게 열린 공간에는 미래당을 비롯 새로운 정치 세력이 더 좋은 민주주의를 위해 국회로 진출해야 한다. 이들이 약진하게 된다면 국민들도 아! 선거제도 개혁. 이거 괜찮고 필요하네. 이런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런 유권자들의 감동을 이끌어내서 권역별 단위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이 추가 도입되는 길로 갔으면 좋겠다. 2024년 22대 총선은 100% 연동형으로 가야 한다.

오태양 대표는 최근 유튜브 '썰태양' 라이브에 하승수 위원장을 게스트로 초대했다. (사진=오태양 대표 페이스북)

사실 언론의 조명을 많이 받는 유명인들 외에도 묵묵히 자기 역할을 수행한 사람들도 많다. 김현우 비례민주주의연대 활동가는 SNS 상에서 선거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선거제도 개혁 노래와 퍼포먼스를 만들거나, 1인 시위를 수없이 하거나, 큰 이벤트의 실무를 담당하는 등 누구보다 애를 많이 썼다. 

아래는 김 활동가와의 일문일답이다. 

Q: 정말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A:
일단 선거제도 개혁 운동을 시작한지 3년 정도 됐는데 감회가 새롭다. 특히 만 18세 선거권이 보장돼서 청소년과 청년의 목소리가 좀 더 정치권에 많이 반영될 수 있게 되고 국가 예산이 그들의 삶을 위해 좀 더 많이 쓰일 수 있게 됐다. 이것에 선거제도 개혁 운동이 기여를 하게 되어 무척 기쁘다. 또 한편으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촉구하는 활동가로서 씁쓸한 마음이 너무 누더기 법안으로 통과되어서. 마음 같아선 故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불태우면서 그랬던 것처럼 이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비례민주주의연대가 주장하는 취지에 맞지 않는 누더기 법안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은 느낌이 엄청 많이 든다. 우선 20대 국회에서는 이렇게 끝내고 그래도 전국민에게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이 단어를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됐고 지금 취지만 들어갔지만 앞으로 한국 비례민주주의를 공고히 할 수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해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Q: 향후에는 어떻게 활동할 것인가?
A:
우선 향후 활동에 대해서는 비례민주주의연대나 시민사회도 좀 더 논의해봐야 한다. 지금 시민사회가 가장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데 원내 정당들도 같이 자기 의제화시켜서 정당 자체를 선거제도 개혁의 주체로 재편해서 나아갔으면 좋겠다. 국민들을 설득 대상으로 한다고 했을 때 선거제도 개혁을 촉구하는 시민사회만이 아니라 정당들도 그 역할을 좀 더 분명히 해서 더욱더 치고 나가야 한다.

김현우 활동가는 연일 원내외를 오가면서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노력했다. (사진=김현우 활동가 페이스북)

김 활동가가 전태일 열사가 되고 싶은 심정이라고 밝혔듯이 통과된 선거법은 누더기적인 측면이 많긴 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선거제도 개혁을 추진하면서도 한국당과 같이 거대 정당으로서 승자독식 구조의 기득권을 덜 양보하기 위해 연동형을 원형에서 점점 후퇴시켜왔다.

이를테면 ①2015년 선관위가 지역구와 비례대표 200대 100 모델의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 ②2019년 4월말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225대 75 모델의 50%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원안 ③4+1(민주당·바른미래당 당권파·대안신당·정의당·민주평화당)에서의 250대 50 모델 ④250대 50에서 비례대표 30석에 한정해서만 캡을 씌워 연동형 적용 등 그동안 끝없이 거대 정당 민주당의 이해관계가 반영되어 ①→②→③→④으로 후퇴돼왔다. 

3+1(바른미래당 당권파·대안신당·정의당·민주평화당) 중 대안신당을 뺀 3당이 12월13일 ④을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가 18일에 꾸역꾸역 ④까지 수용한 뒤 석패율제 도입을 내걸었는데 민주당은 그마저 의원총회에서 걷어차버렸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은 ⑤패스트트랙 원안에 들어간 석패율제 삭제 ⑥비례대표 의석 현행대로 47석 유지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서 기득권을 수호했다. 

①→⑥까지 왔기 때문에 정치개혁공동행동 등 진보적 시민사회에서는 민주당에 대한 반감이 극심하다. 하지만 그게 곧 거대 정당이 지배하는 국회에서의 현실이기 때문에 누더기가 됐더라도 스타트 테이프를 끊는 차원에서 수용하는 울며 겨자먹기의 심정을 공유하고 있다. 

오른쪽 아래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관영 전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문희상 국회의장,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의 모습. 
(사진=박효영 기자 촬영 및
연합뉴스)

선거법 개정을 위해 헌신한 인물들은 원내에도 있다. 

대표적으로 문희상 국회의장은 2018년 연말 두 당대표(손학규·이정미)가 연동형 도입을 위한 단식을 감행했을 때 문재인 대통령과 긴급 회동을 해서 더불어민주당을 움직였고, 2019년 4월 말 패스트트랙 정국(지정되면 본회의 표결 보장)에서는 사보임을 전격 허가했고, 마지막 통과 시점에서는 선거법 개정이 되는 방향으로 본회의 의사진행을 밀어붙였다. 어찌보면 한국당 패싱으로 인한 정치적 부담감이 컸지만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시대정신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회 절차법들을 적극적으로 적용할 수 있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각종 이론들(사회적 약자들의 정당 정치를 위한 4대 약대집단 청년·농민·비정규직·소상공인 구호 등)을 만들어서 널리 알렸고 추진 전략과 관련해서도 △패스트트랙 지정 △2019년도 예산안과 연동형 선거법 처리 약속 연계 등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방법론을 강구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2018년 상반기에 하 위원장을 만나 연동형의 가치를 깨닫고 유럽식 합의제 민주주의와 분권형 개헌이라는 자신만의 정치 체제 대안을 설파해왔다. 2018년 연말 민주당과 한국당이 3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을 패싱하고 예산안을 통과시키자 과감하게 단식을 감행했고 이후 바른미래당 내부에 비당권파(안철수계)와 새로운보수당 세력의 거친 공격에도 선거제도 개혁 한 길만 바라보고 국회 전체에서 선거법 개정의 불씨가 이어지도록 기여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故 노회찬 의원과 함께 아주 오래 전부터 국회 안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외쳐왔고 2018년 10월말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던 선거법 단일안을 도출해냈고 패스트트랙을 성공시켰다. 

특히 김관영 바른미래당 전 원내대표는 평소 온건한 협상주의자로서 그러기 어려웠는데 패스트트랙 정국 당시 사보임을 밀어붙이는 등 패스트트랙 열차를 출발시킨 큰 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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