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대표의 강력한 러브콜
국민의당과의 통합
바른미래당의 실패
보수 통합 논의 물살 너무 강해
탄핵 이후 죽음의 계곡 3년 넘어
끊임없이 새롭게 변화해야
영국 보수당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새로운보수당이 지난 5일 중앙당 창당대회를 마치고 정식으로 창당되자마자 또 다시 외부로부터 통합 논의의 물살에 휩쓸리게 됐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유승민 새보수당 의원의 보수 재건 3원칙(탄핵 수용/개혁보수 천명/한국당 해체 및 보수신당 건설)을 수용하는 등 보수 통합을 제안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6일 19시 즈음 출고된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황 대표는 “새보수당과의 통합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새보수당이 통합에 참여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주기 위한 별도의 선언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승민 의원이 지난 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로운보수당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황 대표는 7일 16시10분 하태경 새보수당 책임대표(오신환·유의동·정운천·지상욱 등 5명의 순환형 집단대표 체제)와 만나기로 돼 있는데 이 자리에서 “유 의원이 요구하는 보수 재건 3원칙 수용 등에 대한 메시지를 내고 본격적인 통합 협상에 들어갈 것”이라고 예상된다.

그런데 현재 새보수당이 처한 정치적 분위기가 2017년 하반기에 연이은 탈당에 쪼그라들던 ‘바른정당’이 결국 ‘국민의당’과의 통합으로 내몰렸던 시기와 유사하다. 

정당이 ‘세력’과 ‘가치’로 움직인다고 했을 때 바른정당은 전자의 측면에서 소위 “죽음의 계곡”이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결국 이질적인 세력과 합쳤고 그게 바른미래당의 실패로 귀결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개혁보수를 표방한 그들이 그나마 중도를 표방한 국민의당과 합쳤을 때는 명분이 있었지만 결국 총선을 앞두고 한국당으로 흡수되면 스스로의 존재 의의를 져버리는 일이다. 

바른미래당 내분 사태 때 유승민계가 지독히도 시달렸던 것은 한국당과의 통합을 꾀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이었다. 

장진영 바른미래당 당대표 비서실장은 이날 저녁 페이스북을 통해 조선일보의 기사를 공유하며 “한국당과 새보수당의 통합 선언 임박”이라고 단정지었다. 

이어 “유승민계가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를 쫓아내고 바른미래당의 당권을 찬탈하려는 목적이 어디에 있었는지 이제 명명백백 해졌다”며 “사람들은 손 대표를 노욕이라 손가락질 했지만 그는 모욕과 수모를 견뎌내고 당을 지켜냈고 제3의길을 지켜냈다는 게 이제야 확인됐다. 하마터면 한국당 당원이 될뻔 했다”고 주장했다. 

황교안 대표는 연일 보수 통합론을 내세우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황교안 대표는 연일 보수 통합론을 내세우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관련해서 황 대표는 아침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통합이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더 이상 통합을 늦출 어떤 명분도 그리고 이유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수도권 다툼과 지분 경쟁은 곧 자멸이다. 내가 아닌 국민이 주인공이라고 하는 관점에서의 통합이 필요하다”며 “통합추진위원회를 만들고자 한다. 통추위는 이기는 통합의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황 대표는 구체적으로 △미래를향한전진 4.0(이언주 의원) △이정현 의원 신당 △국민통합연대(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의 친 이명박계와 비박계 주도) △소상공인 신당 등을 거론했다. 

나아가 황 대표는 보수 단일대오를 위하여 △원희룡 제주지사 △이재오 전 의원 등에게 까지 소통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 의원도 지난 12월28일 대구시당 창당대회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보수 통합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이 아니다. (새보수당이) 1월5일에 창당하고 이후 총선의 과정을 예상하면 2월 초까지는 논의의 불씨가 살아있을 수 있다. 다만 (두 당에) 공천심사위원회 등이 설치되기 시작하면 어려워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물론 유 의원이 “한국당의 모습을 보면 도로친박당이 되고 있다”며 “도로친박당이라는 말이 탄핵의 강을 건너자는 부분과 배치된다. 또한 문재인 정권이 국정을 파탄내도 왜 한국당 지지율이 올라가지 않느냐를 생각하면 개혁보수를 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라고 밝힌 만큼 보수 통합이 쉽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보수 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되고 황 대표가 3원칙을 수용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유 의원도 이를 뿌리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유 의원은 분명 “3가지 조건이 받아들여지면 아무 미련없이 한국당과 다른 여타의 보수 세력과 통합할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지상욱 의원, 유의동 의원, 하태경 의원, 오신환 의원, 정운천 의원 등이 공동 대표 5인으로 추대됐다. (사진=연합뉴스)

새보수당 중앙당 창당대회 당시 지상욱 의원은 “안보도 경제도 지키지 못 한 무능한 보수, 정권 빼앗기고 4번에 걸쳐 선거 패배하고 패스트트랙(지정되면 본회의 표결 보장)도 막지 못 한 보수, 소리만 외치는 무능한 보수로 대한민국을 구해낼 수 없다”며 “이제는 변하겠다. 혁신하고 힘도 모으고 보수 재건을 통해 한국을 살리겠다. 정직하고 유능하고 자기 인생 살리는 보수를 만들겠다”고 천명했다.

이 약속이 지켜질 수 있을까? 

김현동 새보수당 대변인은 12월26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중앙당사에서 기자와 만나 “나는 그냥 이렇게 말씀드린다. 한국당과 통합하면 나부터 지지를 철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분명히 니즈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인 유승민은 지난 대선 정국에서 문재인과 심상정을 지지하는 사람들로부터 저런 보수라면 괜찮다. 내가 찍어주지는 못 해도 박수를 쳐줄 수는 있다는 평가를 들었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보수의 위기는) 결국 보수가 가진 낡고 구태한 이미지 때문”이라며 “보수라는 이미지 자체를 바꾸는 것이 다음 보수 정치세대의 사명과도 같다. 새보수당의 보수는 정말 새롭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보수가 새로워지려는 노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새롭게 변해야 한다는 것에 얼마나 천착했으면 당명에 형용사로 “새로운”을 넣었을까 싶지만 그만큼 보수의 변화가 중요하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하태경 책임대표는 개혁보수의 필수적인 요소로 끊임없는 변화를 강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하 책임대표는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전세계에 보수당 이름을 찾아보니까 몇 개 있다. 우리 자매 정당들 중에 제일 유명한 정당이 영국의 보수당이다. 토리당부터 한 400년 됐다. 왜 성공했을까. 그것은 유승민 정신이었다. 개혁보수의 정신이었다. 끊임없이 개혁하는 것이 새보수당이 승리하는 비결”이라면서 영국 보수당이 산업혁명 이후 주요 지지층을 <농민 →도시 시민>으로 바꾸고 곡물법 폐지를 감행한 사례를 환기했다. 

하 책임대표는 “(한국 정치에서) 자유와 반공을 기치로 하는 올드 보수가 다수였던 시대는 지나갔다. 연령으로 따지면 60대 중반 이상”이라며 새보수당의 타겟 지지층이 올드 보수일 수는 없다고 역설했다.

故 정두언 의원도 2017년 7월27일 방송된 MBN <판도라>에서 영국 보수당의 성공 비결을 설파한 적이 있었다. 

정 의원은 “한나라당이 가장 오래된 당명을 지탱한 정당이다(1997년~2012년). 그럴 정도로 우리나라 정당은 수시로 당명을 바꿨는데. 영국 보수당은 300년 명맥을 유지했다. 원래 보수당은 귀족과 지주계급의 정당이었다”고 운을 뗐다.

1846년 프랑스 나폴레옹과의 전쟁이 끝나고 영국은 유럽으로 흡수됐고 유럽 각지의 밀이 영국으로 수입됐다. 밀값이 폭락하고 지주계급의 수익이 줄어들자 보수당은 관세를 올렸다. 그러면 중소상공인과 노동자들 입장에서 물가가 오르니까 어려워진다. 그때 보수당의 로버트 필 수상은 과감하게 관세를 철폐했다. 지지층인 지주 계급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채택한 것이다. 필 수상의 결정이 일시적으로는 정치적 손해일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넒은 확장성을 위해 변화의 첫 발을 뗀 측면이 있다.

이후 20세기 초 프롤레탈리아(노동자 계급)와 부르주아(자본가 계급) 즉 노사 갈등이 극에 달했다. 칼 맑스의 사상이 횡행하던 때였는데 이때 보수당의 지도자인 벤자민 디즈레일리와 스탠리 볼드윈은 선제적으로 노동 개혁을 단행한다. 노동법을 개정하고 “우리는 노동자 계급”이라는 슬로건을 내걸 기세로 시대적 흐름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그렇게 변화를 받아들이는 안정감 있는 보수의 이미지로 영국 보수당은 20세기 내내 장기집권을 하게 된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 토니 블레어 전 총리의 노동당이 장기집권을 했을 때 보수당은 다시 한 번 대변화를 모색한다. 보수당은 성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고 기후변화 협약 등 환경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입장을 전환한다. 사회 변화에 따른 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한 결과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은 2010년 13년 만에 총리직에 올랐다.

6일 아침 국립 대전 현충원을 찾은 새보수당 지도부. (사진=연합뉴스)

정 의원은 이에 반해 한국의 보수 정당은 “한나라당 시절부터 그 전까지 가진 자의 정당 기득권자의 정당 대기업을 옹호하는 정당. 이렇게 이미지가 박혀있다. 억울한 면도 있는데 실은 또 억울하지도 않다”고 밝혔다. 

이를테면 “2012년 대선에서 경제민주화 한다고 해서 표를 왕창 얻어서 집권하는데 도움이 됐는데 집권하고 나서 입 딱 씻었다. 그러니까 그런 이미지가 쌓여만 가는 거다. 이럴 때 훨씬 더 전향적으로 복지 수요가 늘어나고 재원이 없으니 증세해야 하는 게 맞다. 고통스럽지만 여야 합의로 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얘기만 하면 (세금 폭탄이니) 부정적으로 나오고. 초 대기업한테 법인세를 올리자고 하니까 반대하고 뭐 이런 식으로 꼭 가진 자의 편을 드는 입장에 선다. 그렇게 비춰진다. 그래가지고 젊은 층으로부터 (지지를 받는데) 성공할 수 없다”고 고언했다. 

새로운 인물군에 대해서도 “얼굴이라고 하는 분들 지도자라고 하는 분들 이미지가 강경 우파(홍준표·김무성·황교안 등)의 이런 이미지다. 그런 이미지를 내세워서 어떻게 국민들 시선을 돌릴 수 있겠는가. 영국의 보수당에는 중진이 없겠는가. 거기에도 다 계보가 있겠지 왜 없겠는가. 그런데 30대 후반의 윌리엄 헤이그를 당대표로 내세우고(보수당이 1997년 총선 패배 직후 토니 블레어에 맞서기 위해 젊은 당대표 추대) 30대 후반 캐머런을 당수로 내세우고(2005년) 그렇게 해서 전체가 살아나자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는 위계질서가 있어가지고 중진 따지고 앉아있고 다 그러고 있어가지고 어느 세월에 젊은 지도자를 키우겠는가”라고 꼬집었다.
 
황 대표는 최근 국회 경내에 태극기 세력을 끌어들이고 전광훈 목사와 아스팔트 우파의 모습만 연출하는 등 갈수록 우향우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객관적인 평가다. 새보수당이 새롭지도 않고 변화하지도 않으면서 다만 총선 승리를 위한 보수 통합만 외치는 한국당과 합치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결국 유 의원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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