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치 내각 왜 어렵나
협치 채널은 왜 무산됐나
개헌도 결국 문 대통령의 손에 달렸다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적대적 공존 구조의 대결 정치체제에서 대통령은 거의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있고 야당은 그렇기 때문에 맹공해서 정권을 획득하려고만 한다. 여당은 야당이 죽기살기로 공격하니까 청와대를 건강하게 견제하지 않고 옹호하고 엄호한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협치 노력을 기울인다고 해서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야당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4일 오전 10시 청와대 영빈관에서 2020년 신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기자회견은 1시간 45분간 이어졌고 문 대통령이 직접 질문자를 지목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105분간 신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신임 정세균 국무총리가 다시 한 번 띄운 ‘협치 내각’과 관련 “당연히 총선이 지나고 나면 야당 인사 가운데서도 내각에 함께할 만한 그런 분이 있다면 함께하는 그런 노력을 해나가겠다”면서도 “다만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미 2018년 8월 사실상 무소속인 박선숙 바른미래당 의원에 대해 환경부장관 입각 제의가 있었고 그외에도 물밑에서 여러 야당 인사들에게 그런 제안이 들어갔다. 

문 대통령은 “야당 인사에게 입각을 제의한 바 있다는 보도 외에 그보다 더 비전있는 통합의 정치나 협치의 상징이 될 만한 분에 대한 제안도 있었다”며 “모두가 협치나 통합의 정치라는 취지에 대해 공감했지만 아무도 수락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 배경에 대해 문 대통령은 “지금 우리의 정치 풍토나 정치 문화 속에서는 나는 그분들이 당적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가지면서 함께 해도 좋다고 제안했지만 우리 정부의 내각에 합류하게 되면 자신이 속한 정치 집단이나 기반 속에서는 마치 배신자처럼 평가받는 그것을 극복하기가 어려운 것”이라며 “그렇다고 대통령이 그 부분을 공개적으로 추진하게 되면 야당 파괴 야당 분열 공작으로 공격받는 것이 지금 우리 정치 문화의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정치 문화를 거론하면서 야당에게 아쉬움을 표한 것으로 해석되는데 문 대통령은 “총선 이후에 대통령이 그런 방식을 통한 협치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지만 다음 총선을 통해서 우리의 정치 문화도 달라져야 한다”며 “국민들께서 그렇게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주문함으로써 야당 심판론에 힘을 실었다. 

더 나아가 문 대통령은 “국회가 지금처럼 되면 안 될 것”이라며 “민생 경제가 어렵다고 다 이야기하는데 그러면 그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함께 손을 잡고 머리를 맞대야 하는데 말로는 민생 경제가 어렵다고 하고 실제로는 정부가 성공하지 못 하기를 바라는 듯한 제대로 일하지 않는 국회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진=연합뉴스)
질문 요지를 적어놓는 프롬프터에 대해 답변이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고 밝힌 문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국회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상 자유한국당을 향해 문 대통령은 “국민들을 좀 더 통합의 방향으로 갈 수 있게 노력해야지 오히려 정치권이 앞장 서서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옳지 못 하다”며 “다음 총선을 통해서 그런 정치 문화가 달라지길 바란다. 누차 강조하다시피 손뼉을 치고 싶어도 한 손으로는 칠 수 없다”고 토로했다. 

반면 문 대통령은 야당과의 협치를 위해 노력했다는 점을 부각했는데 이를테면 “(2017년) 5월10일 약식 취임식을 하게 됐는데 그 취임식을 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한 일이 야당 당사들을 다 방문한 일이었다.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많은 야당 대표와 원내대표들을 만났다”고 말했다.  

이어 “야당이 끊임없이 변했다. 분당하기도 하고 합쳐지기도 하고. 대화 상대를 특정하기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가능하면 최대한 소통하고자 했고 분위기 좋으면 만나고 분위기 안 좋으면 못 만나고 이렇게 되지 않도록 아예 3개월에 한 번씩은 분위기가 좋든 나쁘든 무조건 만나자는 식으로 여야정 상설국정협의체에 대해서도 합의한 적이 있다”며 “그 합의조차 지켜지지 않았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현실”이었다고 정리했다. 

물론 “거기에서 대통령이 잘 했냐 책임을 다 한 것이냐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나도 송구스럽기 짝이 없지만”이라고 표현했지만 문 대통령의 야당에 대한 서운함이 많이 묻어났다.

문 대통령은 “협치의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국회에서 조금만 마주 손을 잡아준다면 마주 손뼉을 쳐주신다면 국민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며 “그것이 지금 어려운 경제나 여러 여건들을 헤쳐나가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문 대통령이 직접 기자들을 지목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실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각 당 원내대표와 대통령의 분기 회동)와 ‘초월회’(각 당의 대표와 국회의장의 월례 회동)라는 공식 채널이 있지만 매번 그때 당시의 쟁점 이슈로 인해 한국당이 강하게 반발하는 등 여야 관계가 냉랭해지면서 무산된 적이 많았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을 비롯 장관 인사가 이뤄질 때마다 또는 청와대발 의혹이 터질 때마다 여야는 죽일 듯 싸웠다. 쟁점 이슈와 무쟁점 이슈는 분리되지 않았고 후자를 논의하기 위한 공식 채널도 무력화됐던 것이다. 

이런 적대적 대결 정치 문화는 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를 맡았던 2015년에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선거제도 개혁과 개헌을 통해 승자독식의 대결 정치를 제도적으로 바꿔내는 것이 필요하다. 

문 대통령은 “지방선거 때 함께 개헌하는 것이 정말 두 번 다시없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무산된 것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라며 “이제 그렇게 됐기 때문에 다시 개헌에 대해서 대통령이 추진 동력을 가지기는 어렵다고 본다. 개헌이 필요하다면 추진 동력을 되살리는 것은 이제는 국회 몫이 됐다”고 공을 넘겼다.

이어 “지금 국회에선 어렵겠지만 다음 국회에서라도 총선 공약 등을 통해서 개헌이 지지를 받는다면 그 다음 국회에서 추진될 수 있을 것이고 당연히 대통령은 국민들이 동의할 수 있는 내용인지의 여부를 검토해서 그에 대한 입장을 정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8년 6월 지방선거 전에 개헌 정국이 결국 무위로 끝난 것은 대통령제를 유지하려는 더불어민주당과 최대한 권력을 국회로 가져오려는 한국당 사이에서 타협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4년 중임·연임 대통령제를 고수했고 한국당은 이원집정부제(외치는 대통령 내치는 총리가 맡고 총리는 국회에서 선출)를 내세웠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양껏 누려왔던 한국당은 갑자기 대통령제 개헌의 전도사가 됐고 민주당은 국민 여론을 들어 대통령제 존치를 고집했다. 거기서 정의당 등 소수 정당이 총리에 대한 국회의 입김을 반영하는 총리추천제를 제안했고 절충이 될 것 같았지만 끝내 실패했다. 즉 문 대통령이 정말 개헌을 성사시키고 싶다면 민주당에게 분권형 개헌을 받아들이라고 주문하거나 대통령제를 고집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면 된다. 

한편, 14일 자정을 기해 정 총리는 정식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됐는데 이미 힘있는 ‘책임 총리’를 보장해달라며 문 대통령에게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책임 총리에 대한 생각도 변함없고 이낙연 총리가 책임 총리라는 카테고리와 별개로 외교조차도 대통령의 외교를 분담해서 할 수 있도록 순방 기회를 드리기도 하고 대통령 전용기도 내드리기도 하고 매주 총리를 만나 국정 운영을 논의하는 노력을 해왔다. 그런 노력들은 계속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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