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정치그룹 핵심 의제 공동선언식
문제 해결에 무능한 기성 정치권
다름을 인정하고 공통의제 지속적 논의
전쟁과도 같은 정치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기성 정치권은 내 편과 네 편으로 갈라져 진영논리적으로 싸우는 것에만 올인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의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 하고 무능하다. “일 안 하는 국회”를 모두가 욕하고 있지만 여야는 서로 책임 전가만 한다. 

그런 문제의식에서 청년 정치그룹이 뜻을 모았다. 기성 정치권에 잘 보여 지분을 얻거나 통합되기를 바라는 것에 골몰하지 않고 다양한 의제를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대안을 제시해서 영향력을 키우는 것이다. 우선 △연금 △일자리 △주거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정현호 대표가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정현호 대표가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정현호 내일을위한오늘 대표는 17일 저녁 서울 중구에 위치한 위스테이 라이브홀에서 열린 <청년 정치그룹 2020 총선 핵심의제 공동선언식>에 참석해 “결국 다양한 대안들을 서로 다 주장을 하지만 자신이 믿고 있는 이념을 바탕으로 대안을 쭉 밀고 나갔을 때는 생각이 다른 사람은 반대를 하고 공전만 된다. 왜 그럴까 이런 생각을 했다”며 “포럼(정치의제포럼)을 결성하게 된 동기는 크게 두 가지”라고 밝혔다.

그것은 “연금, 일자리, 주거라는 게 새로운 의제는 아니지만 대통령도 해결할 수 없는 이슈이고 이런 것들이 계속 시기를 늦추면 늦출수록 그 문제가 우리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게 하나이고 두 번째는 “(3대 의제들에 대해) 해결 방향성이 뭔지 최소한의 원칙만 설정해놓으면 대안이야 정말 다양하게 열어놓고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가능성이다. 

정 대표는 “기성 정치권에서는 이런 대화와 정치 활동이 잘 이뤄지기 어렵다는 느낌이 들어서 청년 정치세력끼리 이념이 다르고 정치철학이 다르더라도 우리끼리 먼저 우선순위나 중요한 의제나 해결 방향의 원칙 정도만 합의를 잘 해놓으려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정 대표는 정치의제포럼을 기획한 인물이다. (사진=박효영 기자)

정 대표는 이번 정치의제포럼을 성사시키기 위해 주도적으로 노력했다. 정 대표는 박근혜 정부 인수위원회 청년특별위원,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 등을 역임한 청년 보수라고 할 수 있지만 진보진영과도 자주 소통해왔다. 

이번 포럼의 참여 그룹은 △사단법인 ‘날아’ △청년청소년의 미래 ‘나비 1020’ △내일을위한오늘 △시대전환 △한국청년정책학회 등이다. 포럼에 함께 하기로 한 청년 정당 ‘미래당’은 ‘브랜드 뉴파티’의 동참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출하면서 결과적으로 둘 다 빠지게 됐다. 미래당은 뉴파티가 선언식 직전에 보수통합 신당 ‘미래통합당’에 합류하게 되면서 반감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 대표는 “허무맹랑한 대안이라도 (청년들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다 꺼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며 “어떤 논의 결과를 가지고 사회에 말할 수 있고 (기성 정치권에서) 좀 보니까 청년 정치세력들이 이 문제를 풀자고 합의를 다 봤다더라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뭔가 문제 해결의 바로미터적 성격을 저희가 낼 수 있지 않을까”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날 발표된 공동선언문에 따르면 포럼은 앞으로 △매년 상반기(올해는 5월) 공동 핵심의제를 설정하는 포럼 개최 △의제 선정 자리 정례화 △정치인·연구자·학자·언론인 등과 지속적으로 대안 모색 △의제중심의 정치 활성화 등을 실천할 계획이다. 

3대 의제만 설정했지 뭔가 방향성을 결정했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선언문에서는 △내고도 불안한 연금이 아닌 낸 만큼 돌려받을 수 있는 연금 △누구나 즐겁게 일하고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일자리(국가 주도 일자리는 한계가 분명하고 민간이 주도해야) △열심히 일한 젊은이라면 감당할 수 있는 집값(집값 안정화가 아닌 집값을 낮추는 것이 목표) 등 문장으로 표현해놨을 정도로 큰 틀의 방향성을 잡아놨다.

(사진=박효영 기자)
공동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는 각각의 참여그룹 대표들. (사진=박효영 기자)

나아가 △기후변화 대응 △새로운 남북관계 재설정 △국가문제 해결 역량을 위한 이념·지역·세대갈등 해소 △불평등 관리와 양극화 해소 등의 의제들도 다룰 예정이다. 

주홍비 날아 대표는 “지금의 정치권 모습을 떠올려 봤을 때 나오는 키워드는 갈등과 혼란이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갈등은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금 그 갈등은 사회에서 나오는 질문을 던지지 못 한채 첨예한 대립만 부추기고 있다”며 “저희들은 서로 조금씩 다른 시각과 방법을 통해서 정치와 사회를 마주하고 있고 더 나은 정치와 사회라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포럼을 함께 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신뢰는 일관성과 연속성에서 나오고 안정감은 사회적 합의로 나온다. 정권을 넘어 그것과 관련없이 연속성을 지니고 있는 정책의 역사는 아쉽게도 우리나라 정치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며 “사회에서 꼭 해결해줘야 할 문제는 정치적 의도라는 목적 아래서 정쟁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어떠한 문제는 질문조차 나오지 않은채 문제제기가 이뤄지지 못 하고 있다. 문제는 심화되고 사회적 위험성은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 대표는 “정치는 선택의 문제”라며 “포럼은 그 선택의 기초 작업으로 공통의 문제의식과 의제를 제시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주홍비 대표는 선택의 문제인 정치의 기본작업을 위해 공통의 의제를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사진=박효영 기자)

사실 20~30대 청년들 간의 정치 참여 수준은 갈수록 격차가 커지고 있다. 포럼이 정치에 관심있는 청년과 무관심한 청년 간의 차이를 좁힐 수 있을까.

토의 시간에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하는 방법”이란 주제로 논의를 해봐야 한다고 제안한 청년 A씨는 “학교에 다니면서도 애들이랑 정치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관심도 없고 너 한국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어봐도 아 쓰레기야 이러는데 정작 들어보면 왜 쓰레기인지 자기도 모른다. 관심이 없는 거다”라고 말했다. 

이어 “관심있는 청년들도 많고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정작 보통 대학생들과 보통 청년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다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같이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다”고 환기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기성 정치는 문제 해결에 무능하고 서로 죽고 죽이는 살벌한 갈등만 일삼는 걸까.

행사에 초대받아 미니 특강을 진행한 박성민 정치컨설턴트 ‘민’ 대표는 “정치를 한다는 게 전쟁과 스포츠 중간쯤에 있다. 전쟁에 가까이 가면 상대를 죽여야 할 적으로 보고 스포츠로 가까이 가면 이겨야 할 경쟁자로 본다”며 “고대 그리스 소크라테스 재판부터 인류 정치사 모든 것들은 기본적으로 다 죽이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이어 “왜 죽이는 거냐면 통치자와 피치자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다스리느냐 다스림을 받느냐의 싸움이기 때문에 죽이는 것이 기본”이라며 “체제 안에서 싸우는 게 아니고 체제를 걸고 싸운다. 왕정으로 할지 공화정으로 할지 민주정으로 할지 군주정으로 할지 법가를 할지 유가를 할지. 이건 근본적으로 타협할 수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 근현대 민주주의 체제가 자리잡은 뒤로는 달라졌다.

박 대표는 “19세기 이후에 이게 너무 잔인하니까 죽이지 말고 일정한 기간 동안 국정을 맡아보고 그걸 선거라는 과정을 통해서 또 다른 사람들도 맡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자. 현대 민주주의의 엄청난 발전이 이뤄졌다”며 “아담 쉐보르스키(뉴욕대 정치학과 교수)가 말했듯이 민주주의는 집권 세력이 평화적으로 야당될 가능성을 열어둔 체제다. 평화적으로가 되게 중요하다. 옛날엔 권력을 잃으면 다 죽는 건데 죽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박성민 대표는 정치의 본질을 설명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한 마디로 박 대표는 “(정치가) 적과 동지로 구분하는 것이고 칼 슈미트(20세기에 활동한 독일의 정치학자)도 기본적 속성상 권력투쟁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고 결론냈다. 수 천년 동안 이어져온 것”이라며 “현대 민주주의는 법과 제도로 권력투쟁의 잔인한 면을 제어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라고 규정했다. 

과거가 ‘야만’에 가깝고 현대로 올수록 ‘문명’에 가깝다면 정치 역시 마찬가지인데 박 대표는 “한국 정치는 전쟁으로 가고 있다”고 판단했다. 

포럼은 청년 정치그룹이 주도하는 만큼 기성 정치권에 비해 갈등할 요소도 없고 좋은 뜻으로 뭉쳤다. 그래서 한국 정치의 문제 해결 능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대화의 힘이 담론으로 발전하고 문제를 풀어내는 것이다. 

박 대표는 “두 교황이라는 영화를 보면 베네딕토 교황이 죽어서 그만둔 게 아니라 살아서 그만뒀다. 독일 출신의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동성애에 아주 비판적인 교황이다. 현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주 진보적인데 두 사람이 대화를 한다”며 “상대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전제하지만 내가 민주주의에 대해서 생각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라고 할 때 (두 교황이) 대화를 통해서 굉장히 깊게 소통한다. 나는 정치가 그런 거라고 본다”고 밝혔다.

이어 “(두 교황의 대화에) 신학적인 사회적인 이슈들이 다 나온다. 그것은 죽일 생각을 하거나 이길 경쟁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다르게 바라본다는 것”이라며 “인상 깊었던 것은 베네딕토가 뭐라고 하냐면 신은 전임 교황의 오류 즉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서 새로운 교황을 보낸다고 했다. 프란치스코 당신이 들어와서 고치라고 말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생각하는 게 천지 차이인 두 교황이 깊은 대화를 나눈 것처럼 한국 정치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포럼이 그런 방향으로 한국 정치에 기여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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