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차 안경 전문가 ‘애쉬크로프트’ 심익태 대표

'애쉬크로프트' 심익태 대표 (사진=애쉬크로프트)
'애쉬크로프트' 심익태 대표 (사진=애쉬크로프트)

[중앙뉴스=우정호 기자] 그를 처음 만난 건 몇 년 전 마포구 동교동 모처에서 열린 안경 브랜드 ‘애쉬크로프트’ 주최의 파티였다.

록밴드 ‘노브레인’‧‘문샤이너스’ 출신의 기타리스트 차승우의 초대로 참석했던 그 자리에는 ‘크라잉넛’, ‘언니네 이발관’, ‘안녕바다’, ‘가을방학’ 멤버를 포함한 한국 인디밴드 터줏대감들과 각종 패션 관계자, 모델, 프로복서에 이르기까지 ‘애쉬크로프트’와 결을 같이하는 이들이 모였다.    

음악과 알코올이 난무하는 패션 경연장을 방불케 했던 자리에서 터프하고 서글서글한 인상의 ‘애쉬크로프트’ 심익태 대표를 조우했다. 뚜렷한 색깔을 가진 애쉬크로프트의 안경‧선글라스 모델들은 파티 참가자들의 취향을 자극하며 회자됐고, 5년이 흐른 지금, 애쉬크로프트는 업계에서 존재감을 발산하며 5개의 직영매장을 가진 브랜드로 성장했다. 

주말 저녁, 문래동 애쉬크로프트 본점에서 심익태 대표를 만났다. 여유 있고 반가운 인사를 건네는 그의 뒤로 앤틱하고 따뜻한 인테리어와 책과 안경이 조화된 디스플레이가 눈에 띄었다.

“책을 좋아한다. 어떤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고 읽는 행위 자체가 스스로를 기분 좋게 하고 삶의 만족을 가져다준다.” 

그렇게 얘기하는 그의 책상 한켠에 ‘Heart of Darkness by Joseph Conrad’라고 적힌 담배 갑이 눈에 띈다. 수입 담배인가. 담배 이름조차 영국 문학가 조지프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이 라니. 이 사람이 문학 애호가임을 의심할 여지가 있을까.

‘홀든 콜필드’, ‘헨리 치나스키’, ‘알렌 & 긴스버그’, ‘류노스케’처럼 애쉬크로프트 안경 모델 이름엔 유독 책 이름이 많다.

“안경 모델 이름을 좋아하는 작가나 책의 주인공들 이름으로 붙인 건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만드는 것에 녹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기준은 있다. 직접 읽고 알기 위해 노력했던 작가와 책들이어야 한다. 자칫 지적 허영 같은 걸로는 보이지 않게 많이 조심한다. 그건 불쾌하니까.”

일상생활 중 핵심 없는 공허한 단어들을 나열하는 ‘지적 허영’의 사례를 마주하고 불쾌감을 느낀 적이 종종 있다. 그러나 그의 지적 허영에 대한 불쾌감은 내가 가진 그 이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문화 애호가로 보이는 걸 우려하기도 했다.

“어떤 인터뷰나 자리에서 종종 나를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만 몰아가기도 한다. 당연히 사랑하지만 그런 부담스러운 타이틀을 가지고 싶지 않다.”

차승우, 이이언, 백현진 등 뮤지션들을 애쉬크로프트의 모델로 발탁하는가 하면 록 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 등이 참여한 소규모 인디밴드 페스티벌도 연 적도 있는 그에게 나는 ‘당신은 일종의 패트론이 되고 싶은가, 혹은 모종의 문화 협력자가 되고 싶은가’하고 질문할 뻔했다.

그는 새로 출시할 ‘헤르만’이라는 모델을 들어 설명을 이었다. “‘헤르만 헤세’에서 따온 이번 안경 모델은 이 사람의 진정성에 반해 그 흉내라도 내보고픈 마음에 지은 이름이다. 실제 이 모델은 작가 헤르만 헤세가 썼던 안경을 모델로 했다”

올해로 17년 차에 접어든 이 안경 전문가는 ‘허랑방탕한 젊은이가 천지도 모르고 대구에 내려가 안경공장 밑바닥 일부터 하다 안경 제조의 전 과정을 깨우친 후 브랜드를 만들었고, 지금에 이르게 됐다’고 스스로 정리했다. 이 안경 전문가에게 쓰고 있던 안경을 내밀며 ‘이 안경은 어떤가?’하고 물었다.

그는 “‘로메오 질리’라는 브랜드는 아주 오래된 전통의 안경 브랜드다. 이 안경을 좋아하는 이유가 뭔가?”하고 되물었다. ‘스무살부터 썼던 안경이다. 큰 이유는 없으나 조금 특이한 뿔테안경이고, 그 때의 트렌드가 녹아 있는 것 같다’고 대답한 나에게 그는 “썼을 때 편안함이 느껴지고 당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면 그게 좋은 안경이다”라는 대답과 함께 ‘트렌드’와 관련된 자신의 가치관도 말했다.

“당연히 안경 업계도 유행을 타지만 ‘핫 트렌드’와 같은 단어들이 주는 이미지, ‘먹기 좋게 차려 놓은 것과 같은’ 느낌들을 생각해볼 여지는 있다. 바지를 예를 들었을 때, 2000년대 들어서도 남성 패션에서 조차 ‘부츠컷’과 같은 넓은 바지가 유행 한 적도 있다. 누군가는 그때의 자신을 보고 ‘흑역사’와 같이 생각하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는 멋이란 적어도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1899년에 쓰인 조지프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을 2020년에 읽었다고 이게 촌스러운가. 내가 안경에 녹여내고 싶은 건 이런 것이다.”

그의 이런 대답에서 외골수 적인 면을 보고 반가움을 느꼈다. 마이너한 성향을 가졌음에도 애쉬크로프트는 탄탄한 구매층을 확보하고 있다. 작년 크라우드 펀딩 시장의 ‘진물 안경’논란에 실망한 그는 자체 크라우드 펀딩 시스템을 구축해, 지난 1월 신제품 안경 모델 ‘휴즈3: MAG’의 펀딩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어떤 고객층이 애쉬크로프트에 매료되나?’라고 질문을 던지려는 찰나, 애쉬크로프트의 홍보모델이자 협력자인 뮤지션 차승우가 ‘어이’하는 인사와 함께 등장했다. 애쉬크로프트 구매자들의 통계에 대해 설명하던 심 대표는 그에게 질문에 대한 보충 대답 부탁했다. 차승우는 “애쉬크로프트의 ‘마이너함’은 어떤 시선으로 보면 보수적 자양에서 나오는 거라고 볼 수도 있다. 모두가 똑같이 할 때 ‘이런 건 아니지’라는 마음과 같은. 실제로 애쉬크로프트가 가져온 궤도 그렇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심 대표가 대답한 분석 통계에 따르면 애쉬크로프트의 구매자들은 ‘32세 전후의 서울 거주 남자’가 가장 많다. 덧붙여 애쉬크로프트의 어떤 궤를 같이하는 확고한 취향을 가진 사람의 성향을 가졌다고 볼 수 있겠다. 점점 ‘유행’과 ‘멋’을 구별하지 못하는 세상으로 변모하는 지금 취향의 가치를 아는 이들이 소중해진다.

한편 애쉬크로프트는 안경 저널리스트이자 빈티지 안경 컬렉터 '안경 쓴 거북이'와 첫 번째 콜라보레이션으로 화제를 모은 모델 '화병작'의 선주문을 다음 주 조기 마감하고, 신 모델 ‘헤르만’의 출시를 예고하는 등 여전히 뜨거운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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