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잘 탄 ‘귀족 검사’
깡치 사건 아무리 해도
갈수록 초심 잃을 것 같아 사직
웰빙 검사 부추기는 인사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흔히 우리는 검찰을 생각할 때 잘 나가고 권력을 가진 정치 검사를 떠올린다. 하지만 어느 분야나 다 그렇듯이 대다수 검사들은 격무와 과로에 파묻혀 산다. 그들은 인사고과에서 물먹는 경우가 많다.

최창호 변호사는 지난 2월21일 오후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로펌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검사) 업무가 좀 너무 많다”며 “메인스트림에 잘 나가는 검사들이 한 기수에 100명이라고 하면 그들은 5%나 10% 이내다. 나머지 90~95%의 검사들도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일하는 말 그대로 깡치 사건(어렵지만 해결해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사건)을 많이 해도 그게 인정받는 공정한 인사고과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실제로는 큰 인물을 구속하고 신문에 나오고 이런 검사들이 잘 나갔던 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최창호 변호사는 깡치 사건을 묵묵히 담당하는 성실한 검사들이 존중받는 검찰 인사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최 변호사는 지난 1월 서울서부지방검찰청 중요경제범죄조사단장을 끝으로 지난 25년간의 검사 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는 1989년 사법시험에 합격했고(사법연수원 21기) 그동안 공안, 기획, 특수, 강력, 의료, 식품, 환경, 외국인범죄, 산업안전, 명예훼손, 지적재산, 감찰, 법무부 송무, 공판, 헌법재판소 파견, 행정소송, 항고, 재기수사 등 안 맡아본 업무가 없다.  

나아가 서울대 법대에서 학사부터 박사까지 수료했고 미국 플로리다 대학 로스쿨로 유학도 다녀왔다. 수많은 논문과 형법 개론 책도 많이 썼다. 

그런 그이지만 검사장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리게 됐고 더 이상 검찰에서 버틸 수 없는 사정이 생겼다.

최 변호사는 “초임 때는 정년 전까지 검사장이 될 것이라고 당연히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안 되는 기수가 되어 버렸다”며 “초임 검사가 될 때는 국민을 위해서 공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공직자가 돼야 겠다고 다짐했다. 공직자로서 국민 혈세나 국가의 녹을 먹는 사람은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고 운을 뗐다.

하지만 작년에 50대 중반을 넘어서자 점점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초심을 유지할 자신이 없어졌다. 

최 변호사는 “3000~5000페이지의 기록을 젊을 때는 막 밤새서 보고 그랬는데 이제는 힘이 달린다는 걸 느꼈다. 조금 더 수월하게 일을 하는 방법으로 나쁘게 말하면 일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했다면 정년까지 할 수 있을텐데 그런 식으로 하면 초임 시절의 마음가짐을 유지하기 어렵다”며 “내 일신의 편안함을 위해서 후배들에게 일을 더 많이 시키고 도장만 들고 앉아있거나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자세가 아니라는 그런 생각이 자꾸 들었다”고 전했다. 

한 마디로 “처음 검사가 될 때 가졌던 그런 공직자의 자세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자꾸 나태해지려는 자세를 가지면 안 좋다고 생각해서 이제 그만둬야겠다고 한 것이 가장 큰 것이었다”는 설명이다.

또한 “(검찰개혁 등) 검찰에 대한 비난도 많아졌다. 그런 것들이 알게 모르게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은 것은 아니”라면서도 “지금은 민간 영역에서 더 보람된 일을 하는 사람도 많다. 가장 큰 원인은 검사가 됐을 때의 초심을 유지하기에는 체력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고 강조했다.

물론 현실적으로 검사장이 됐다면 달라졌을 것이다. 

최 변호사는 “완전히 일을 하지 않는 관리자가 됐다면 정책적인 결정만 하는 그런 자리였다면 몇 년 더 했을 수 있었는데 실제로 평검사 만큼 일을 하다 보니 원래 가지고 있던 검사로서의 자세에서는 벗어날 수 있어서 관뒀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그런 최 변호사가 봤을 때 검사 인사정책은 웰빙 검사를 부추긴다.

최 변호사는 “(검찰 인사에) 한이 좀 있다”며 “누가 주요 보직에 갔다고 하면 검찰 인사가 뻔하기 때문에 조금 지나면 다 알게 된다. 그 검사가 왜 거기에 갔는지. 그 인사를 수긍하지 못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누구 라인을 타고 어디에 갔다는 것에 대해서 바보가 아닌 이상 다 알 수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행정소송을 담당해서 승소를 많이 했다. 그러면 어떤 평가를 받냐면 예를 들어 원세훈 전 국정원장 소송을 맡은 검사만 빛나는 보직을 받고 칭찬을 듣는다. 하지만 송무라든가 공판을 열심히 한 검사는 극히 이례적인 경우가 아니면 너무나 당연한 일을 했기 때문에 성과를 인정받기 어렵다”며 “그러니까 묵묵히 일하는 검사가 그에 대한 평가를 공정하게 받지 못 했다고 느껴지는 그런 것들이 해소되지 않으면 웰빙 검사들이 나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국민의 공복으로 사명감을 갖고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정년까지 웰빙 검사로 지내겠다고 하는 것을 막기가 어려운 구도가 돼 있다”는 것이다. 

(사진=박효영 기자)
최 변호사는 귀족 검사들의 대접받는 검찰 인사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최 변호사는 “검사적격심사제도가 도입돼 있지만 정성 평가를 수치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열심히 일한 사람이 공정한 인사를 받아서 조직에서 동료들 간에 쟤는 저 자리에 가는 게 정당하다는 말이 나오도록 인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반면 출신과 라인을 잘 탄 귀족 검사들도 있다.

최 변호사는 “누구 라인을 타고 특정 대학을 나왔고 어디 출신이고 장관 라인이고 검찰국장이 밀어주고 그런 것들이 묵묵히 일하는 검사들에 대해서는 좀 상실감을 줄 수밖에 없다”며 “권위주의 시절에는 공안통이 잘 나갔고 민주화 이후에는 특수통들이 잘 나갔다. 이너 서클이 있었다”고 밝혔다.

조국 사태(조국 전 법무부장관) 이전 작년 7월까지 문재인 정부에서도 윤석열 검찰총장의 라인이 일종의 귀족 검사 루트를 밟았다. 

최 변호사는 “옛날에는 검사장 10명 시킨다고 하면 공안, 특수, 기획, 형사 이렇게 해서 포션을 맞췄는데 작년 7월 인사에서 윤석열 라인들이 부장이 차장, 차장이 검사장으로 승진했다”며 “문재인 대통령께서 적폐 수사를 하는 윤 총장의 힘을 실어주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그 당시 고위급 검사 80명여명이 무더기로 사표를 냈다. 윤 총장 자체가 다섯 기수를 뛰어넘어 검찰 수장의 자리에 올랐다. 그렇게 기수를 뛰어넘어 승진될 수 있고 그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특정인의 라인이 모두 중용되는 일은 정상적이지 않다.

최 변호사는 “공무원이라는 게 인사를 빼고는 당근이 없다. 열심히 일하는 검사들이 능력에 따라 인사 혜택을 보지 못 하고 기타의 이유로 불공정하게 이뤄진다고 보기 때문에 그런 것들 때문에 상당수 검사들이 조금 시니컬하게 되는 면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보통 검사들은 고소고발 사건 다수 당사자가 관련돼 있는 여러 사건들을 처리하느라고 머리가 빠지도록 일을 했음에도 몇 건의 기소 사건 무죄, 무혐의 사건 항고 등으로 벌점을 좀 받아서 일 열심히 안 했구나 이런 식의 평가를 받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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