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인 소설가/전 경기대 교수
이재인 소설가/전 경기대 교수

[중앙뉴스=이재인] 어머니가 내 어린 날 맑고 깨끗한 심령처럼 새하연 막사발에 갓 길어 온 샘물을 담았다. 누구도 눈치 채지 않게. 그러나 나는 그게 무슨 용도인지 이미 간파했다.

정화수, 아침 일찍이 누구의 손길도 거치지 않은 샘물은 어머니에게는 절대적 소망이 담긴 그릇이었다.

어머니는 이 정화수를 장독대 제일 높은 곳에 앉힌다. 일종의 보좌이다.그 앞에는 잘 다듬은 짚이거나 왕골 돗자리를 깐 다음 촛불을 켠다.

식구들 모두가 잠든 깊은 밤이었다. 물어볼 것도 없이 직감적으로 어머니가 무슨 일을 하시는지 알 수 있었다.

가족의 평화와 발전, 자녀의 건강, 나라의 안녕, 이런 것들을 알토란 같이 줄줄이 당신이 섬기는 성주님이나 단군님이거나 아님 하나님 ‘종합세트’에 비는 것이었다. 

아울러 소지도 올렸고 기도가 간절했던 어머니는 그날따라 새하얀 치마 저고리였으니 정갈을 마음에 새겼으리라고 믿어진다.이 치마 저고리를 빨을 때에는 나의 소싯적이었으니 세탁기란 용어도 있지 않았다.

빨래판조차 정갈하게 닦고 씻어야만 어머니의 신께서는 소망을 들어주실 것으로 아셨던지 당신의 옷가지를 빨 때마다 판돌을 놋대야에 담아들고 샘물에 가셨다.

또 샘물을 얘기해보자. 어머니가 밥 짓고, 빨래하고, 씻었던 이 샘물은 50년대나 60년대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공동 샘터에서 길어온 물이었는데, 이 물은 소도시나 촌락 어디라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 샘은 마을 사람들의 생명을 유지해주는 근원이었다.

이 근원은 일테면 우리의 어머니인 셈이다. 어머니와 샘과 정화수를 떠올리면 가슴 속에도, 마음속에서도 물기가 서리고 여름날 뭉게구름처럼 하얗게 부풀어 오른다. 이런 날 우리 어머니들은 무식했다지만 자식들에게 지혜의 말씀을 전하셨다.

“샘은 깊다, 그렇지? 그러닝께 솟아나도 소리가 움는게여. 소리가 움구 속이 깊어야 큰 그릇이 되어 나랏일도 허구.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게여…”그렇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순하디 순한 말로 자식들에게 샘을 닮으라고 자꾸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이 샘이 진화되어 펌프로 변했고 펌프는 편리를 추구하는 수도가 되어 각 가정마다 들어섰다. 들꽃도 무더기로 피고 쑥꾹새(뻐꾹이) 울던 마을 샘물이 없어졌다. 맑고 깨끗한 샘물 위에 겨울밤의 잔별도 스란스란 스며들었던 우리의 옛날…

샘물은 지금도 개울을 열고 강을 향해 흘러가면서 메마른 대지를 적시고 들꽃이 핀 꽃길을 만든다. 샘, 생각만 해도 눈물이 고이는 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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