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력으로 3%를 넘을 수 있는 당력이 정의당 독자노선의 비밀
명분도 힘이 있어야 
당장은 의석이 줄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당에 이익 될 것
백낙청의 전략투표론 
역사적으로 강요되어 온 단일화
민주당 없는 연합정당 필요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정의당은 창당 9년차 유력 진보정당이다. 그런 정의당의 입장에서 선거법을 개정한 뒤에도 단일화 압박을 받는다면 상당히 불편할 것이다. 물론 정의당 내부에 한창민 전 부대표와 같이 연합정당 테이블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소수설도 있지만 다수는 손해를 좀 보더라도 정도를 걸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녹색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찬휘 청년플랫폼 위드위드 대표는 지난 3월4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정의당에서 실리보다 명분을 취할 수 있는 것은 진입장벽 3%를 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 힘으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며 “정의당 자신은 아직 배고프다고 말하겠지만 다른 소수정당에 비해서는 배부르다”고 말했다.  

김찬휘 대표는 정의당이 지지율이 3% 이하거나 원외 정당이 아니었기 때문에 연합정당에 불참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김찬휘 대표는 정의당의 지지율이 3% 이하였다면 비례 연합정당에 참여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당위, 옳고 그름, 원칙과 같은 명분도 있겠지만 정의당은 자력으로 봉쇄조항 3%를 가뿐히 넘을 수 있는 유일한 진보정당이다.

김 대표는 “만약 정의당이 3%도 안 나온다면 비례 연합정당이라는 달콤한 떡고물을 쉽게 거부할 수 없었을 것이다”라며 “비례 연합정당에 참여하지 않으면 7석~10석 손해를 보겠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원내정당으로 존재할 수 있는 정당과, 참여하지 않으면 원외정당으로 계속 있어야 되는 정당은 처지가 다르다”고 지적하면서 “명분도 힘이 있어야 지킬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연합정당론을 주도한) 하승수 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그런 절박함이 있는 것”이라며 “어떻게든 1석이라도 얻으면 녹색당을 원내로 진출시킬 수 있고 기후위기 시대에 세상을 바꾸는 중요한 단서가 되니까 이게 구정물이고 드러운 물이고 구역질나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뛰어 들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정의당은 선거제도 개혁을 주도해오면서 최종 본회의 통과를 앞둔 작년 11월부터 녹색당과 미래당을 물밑에서 만나 개별 입당 출마 또는 합당을 타진했었다. 두 원외 정당 입장에서는 대략 80만표 3%를 획득해야 원내 진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정의당의 제안이 솔깃했을 수도 있지만 거부했다. 그동안 정의당이 진보신당 때부터 숱한 고생을 겪고 지금의 위치에 도달했듯이 두 정당도 당의 이름을 없애면서까지 정의당 밑으로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2월 말 하 전 위원장이 연합정당 카드를 꺼내고 진보진영 전체가 혼란에 빠졌을 때 정의당 소속 나경채씨(광주 광산갑 국회의원 후보)는 3월1일 페이스북을 통해 “더불어민주당은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지만 비례민주당 창당이 지도부의 침묵 속에서 추진되고 있다. 열린민주당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녹색당 하승수 운영위원장이나 오태양 미래당 대표 등이 참여하는 선거연합당 논의도 비례전문정당을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나씨는 급하게 비례 연합정당을 만드는 과정(광역단체 5개 시도당 각각 1000명씩 당원 모집+친문 열린민주당에 의지+선거 후 셀프제명 외의 방식으로 출당되어 원래 정당 복귀 등)을 나열한 뒤 “이렇게까지 악취나는 일을 다 해내고 나면 그때부터 민주주의를 할 수 없게 될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나씨의 결론은 전략투표론이었다. 지역구는 민주당에 몰아주고, 정당 투표는 진보정당들에 주자는 일종의 유권자 캠페인이다.
 
김 대표도 민주당 주도의 연합정당에 반대하고 전략투표론에 동의하는 입장이지만 나씨에 대해 “선거제도가 소수정당에게 불리한 상태에서 계속 원내진입에 실패하다 보면 연합정당이라는 명분없는 일도 하고 싶어지는 거다. 그걸 쉽게 악취 운운하면서 비난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나경채씨도 진보신당에 있다가 못 견디고 정의당 간 것 아닌가”라고 일축했다.

실제 현재 노동당 지도부(현린 대표와 나도원 부대표 등)는 6기 노동당 당대표였던 나씨가 2015년 집단 탈당을 주도한 뒤 정의당으로 들어간 것에 대해 매우 불편한 시선을 유지하고 있고 유사한 사례를 경계하고 있다.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봉쇄조항을 5%로 높이려고 했고 정의당은 이를 명분상 저지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원내외 진보정당들에게 돌아갈 진보 표심이 정의당으로 결집되기를 바라는 속내도 있다.

김 대표는 “민주당이 바라보는 정치 지형은 민주당 빅텐트이자 거대 민주당 옆에 작은 위성정당 몇 개가 돌고 있는 모습이다. 이와 달리 정의당은 진보 빅텐트를 구상한다. 요새는 그 구도가 몇몇 나라에서 무너졌지만 오랫동안 유럽은 거대 사회민주당 주변에 녹색당, 좌파당 등이 포진하는 모습이었다”며 “정의당이 연합정당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이런 진보 빅텐트의 큰 구상이 있기 때문이다. 참여하지 않으면 의석수는 좀 줄겠지만 진보 빅텐트 수장으로서의 위상을 크게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고 주장했다. 

이어 “다음 선거에서는 그게 효자가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하 전위원장은 명분은 포기하고 실리를 취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 하 전 위원장은 정당 대표가 아니고 시민운동가에 지나지 않았다”며 “왜냐하면 3% 진입장벽은 그대로인데 연동형만 된다? 그러면 최고 수혜자가 정의당이다. 녹색당 입장에서는 남 좋은 일만 시켜주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몇 년 동안 하 전 위원장은 연동형에만 집중했다. 도대체 뭘 한 것인가? 하 전 위원장은 심상정 대표처럼 실리에 밝지 않은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는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가장 실리에 밝은 정치인이 심 대표라고 생각한다. 지금 실리를 포기하고 명분을 취하는 것이 결국은 나중에 더 당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금 하 전 위원장의 정치개혁연합(연합정당 추친체)은 민주당과 함께 하지 못 하게 됐다. 민주당은 말을 더 잘 듣는 시민을위하여와 함께 더불어시민당을 창당했고 연합정당을 무색케 하는 사실상의 비례 위성정당화를 구축했다. 

김 대표는 애초에 하 전 위원장의 연합정당론이 민주당 중심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고 강력히 반대했다. 

김 대표는 “(하 전 위원장의 연합정당 명분이) 민주당 입장에서 맞는 보험이다. 최근에 여론조사들을 보면 코로나19가 미래통합당에서는 기회라고 그랬던 게 나왔는데. 코로나로 민심이 많이 나빠져 있는 게 분명한 것 같다. 통합당의 공세가 먹히는 것 같다. 너희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라 중국 대통령이냐”라며 “애초에 준연동 캡으로 누더기가 된 것도 민주당 의석 축소를 최소화하려고 했던 방향이었으니까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민주당이 직접 만드는 비례민주당이 아니라 뭔가 시민사회 원로들과 이런 사람들이 만들어 주는 것이니까 민주당으로서는 손 안대고 코 푼다고 할 수 있다. 욕 안 먹고 남이 해주면서 뒤에서 이익을 얻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역사적으로도 민주당 계열의 큰 정당은 항상 단일화와 통합을 강요해왔다. 

김 대표는 “결선투표제도 없고, 3% 진입장벽은 존재하고, 정당 연합(각 정당은 존재하면서 선거용 정당과 선거명부를 함께 만드는 것)도 못 하게 하는데 이 3개가 전부 진보정당이 생존하는 길을 어렵게 만든다”며 “그런 제도들이 진보정당들 보고 자꾸 합치라고 강요한다. 대표적인 게 통합진보당이다. 참여계와 경기동부가 합쳐졌다. 이건 황당한 것이다. 선거제도가 그렇게 하라고 자꾸 유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1987년 때부터 계속 보면 민주당 쪽으로 수많은 운동권 인사들이 들어갔다. 이런 식으로 폭력적으로 거대 정당이 키워지는 방식으로 움직였다. 실제 故 김대중 대통령이 운동권으로부터 수혈한 인재들이 매우 많다. 새정치국민회의, 신민주연합 때 다 그랬다”며 “수혈이란 게 진보정당이 할 수 있는 지대를 없애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소선거구제 중심의 제도는 1등만 되는 더러운 세상이니까 단일화가 강요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차라리 김 대표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의 전략투표론에 힘을 실었다.

백 교수는 2월29일 페이스북을 통해 “간단한 셈법만 동원해도 민주당 비례대표 한두 명 더 당선시킬 표수면 우호정당의 의석수를 10석 이상 늘려줄 수 있고 원외정당의 국회 입성을 성취할 수도 있다”며 “(미래통합당의 미래한국당과 같은) 꼼수 정당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연합정당 모델은 시간적으로) 현실성이 별로 없는 제안이다. 냉정을 되찾아 지역구 선거에서 민주당의 선전과 정당명부제 투표에서 우호 세력의 약진을 위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대표는 “(백 교수가) 사실 하고 싶은 말은 민주당이 연합정당 얘기할 때냐. 그런 자격이 되냐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싶겠지만 백낙청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 안 하신다. 유하게 말씀하신 거고 하고 싶은 말은 결국 연합정당 반대라는 것”이라며 “민주당 너네가 진짜 미래통합당 1당을 막고 싶으면 소수 정당에 투표하도록 그런 일을 하라는 것이다. 그걸 하는 게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에 맞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정말 백 교수는 “초조는 매사에 민주당을 중심에 두는 잘못된 프레임에서 오고 오만은 실제로 이 나라 적폐의 상당 부분을 내장하고 있는 정당이 촛불의 열매만 따먹으면서 아무런 참회도 안 한 데서 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여기에 더해 김 대표는 △민주당 없는 원외 4당(녹색당·미래당·기본소득당‧시대전환)만의 연합정당론이라면 괜찮다고 했다. 그러니까 △민주당 중심의 연합정당론 반대 △전략투표론 옹호와 함께 또 하나의 방법론을 제시한 것이다. 

민주당만 빠지고 민생당과 정의당부터 원외 정당들이 결합하는 모델도 좋지만 웬만하면 원외 4당이 임시 합당을 해서 총선 끝나고 원래대로 돌아가는 모델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아무 기득권도 누리지 못 한 원외 4당의 결합은 명분도 있고 그나마 3%의 문턱을 넘을 수도 있는 묘수가 될 수 있다. 물론 기본소득당과 시대전환이 더불어시민당에 합류한 상황이라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상상이다.
 
김 대표는 “정당의 이름을 다 합치면 된다. 정당 이름도 생각해봤다. 이렇게 하면 된다. 녹색미래기본소득시대전환당. 말이 된다. 녹색미래를 만드는 방법은 기본소득이고 그러면 시대가 바뀐다”며 “녹색미래를 만드는 데 다 합의를 볼 수 있으니까. 그리고 4개 정당 모두가 기본소득을 당론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된다. 그게 뭔 정당이냐고 하면. 녹색당과 기본소득당과 미래당과 시대전환이 합친 당이라고 하면 된다. 그러나 지금 민주당이 끼면 그렇게 못 만든다”고 풀어냈다.

이어 “내가 보는 관점에서 그렇게 해야 된다고 본다. 유럽에서는 좌파당, 공산당, 녹색당이 합쳐서 올라오곤 한다. 정당연합이다. 유럽은 진입장벽이 없는가? 네덜란드는 없지만 주로 있다. 혼자서 진입장벽을 넘기 어려우니까 연합해서 넘는 것”이라며 “유럽은 정당연합이 허용되니까 각 정당을 그대로 두고 선거용 정당명부를 만들면 되지만 한국은 이중 당적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각 당을 해소하고 일시적이라도 연합정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선거법에서는 3%를 넘어도 1석 밖에 안 생기니까 이런 연합이 실현되기 어려웠다. 하지만 준연동형이 되면서 3%만 넘으면 3석~4석을 받으니까 연합에 참가한 정당들끼리 몫을 나눠가질 수 있다. 이 좋은 찬스를 놓치니까 아쉽다”고 덧붙였다. 

결과적으로 김 대표가 거론한 4개 정당들은 각각 다른 길을 갔다. 
 
김 대표는 “내가 이런 주장을 자꾸 얘기하는 이유가 이번에 못 했지만 다음에라도 꼭 하자. 진입장벽을 없애는 것이 가장 좋지만 안 없어져도 군소정당끼리 함께 힘을 합쳐 이 장벽을 넘자. 그러다가 어느 한 정당이 3% 자력으로 넘을 수 있다면 그 때부터는 정의당처럼 혼자 해도 된다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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