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하지만 숨는다
플랫폼 노동자는 사용당하고 있지만
플랫폼업체의 독점 부작용
연대와 단체 조직만이 살길
국가 입법으로 강제해야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스마트폰 앱으로 쇼핑하고(쿠팡), 음식을 배달시키고(배달의민족), 택시를 잡는(타다와 카카오택시) 편리함 이면에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눈물이 있다. 플랫폼에 의존하는 여러 취약계층의 비참함이 있다. 

지난 1월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배민라이더스 남부센터 앞에서 '라이더유니온 2020 배민을 바꾸자'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월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배민라이더스 남부센터 앞에서 '라이더유니온 2020 배민을 바꾸자'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연합뉴스)

노동 문제를 연구해온 권오성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는 플랫폼 노동자들이 “갈려지고 있다”고 표현했다. 사용자가 법적 책임을 회피하는 틈바구니 속에서 노동권을 보호받지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8일 오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청년문화공간JU 바실리오홀에서 <플랫폼 노동운동 무엇을 할 것인가> 토론회가 열렸다. 

발제를 맡은 권 교수는 “기업은 근로자성을 은폐하는 게 아니라 사용자성을 은폐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꾼다. 사용자성을 지우려는 시도와 관련해서 간접 고용이 대표적으로 문제가 돼왔다. 거리를 두고 중간에 엄폐물을 끼워 넣는다. 내가 사용자가 아니라는 것이고 진짜 사용자는 어디로 간지 모르게 된다”며 “온라인 플랫폼은 더 나간다. 거리를 두는 게 아니라 완전히 은폐해버린다. 사용자가 누군지 식별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배달의민족(배민/주식회사 우아한형제들)은 스마트폰 화면으로 사용자성을 엄폐하고 자영업자 및 라이더(배달 노동자)와 고객이 직접 접촉하도록 만든다. 쿠팡도 제조업체와 쿠팡맨을 고객과 직접 연결시켜준다. 라이더는 사실상 표준화된 지휘명령 시스템에 종속되지만 어느 순간 스마트폰 앱의 신호가 오면 빨리 출발해야만 하는 자발적 동의자로 간주된다. 쿠팡맨도 택배 할당량을 채워야 몫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

라이더와 쿠팡맨은 분명 임금 노동자다. 타인을 고용할 수 있고 자본을 가진 개인사업자가 아니다. 그러나 사용자의 지휘통제를 받지 않고 직접 뛰는 자영업자처럼 취급된다. 그렇게 플랫폼 업체는 사용자성을 은폐한 채 플랫폼 노동자를 이용해 돈을 번다. 

권오성 교수(왼쪽에서 두번째)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단결과 조직을 강조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권오성 교수(왼쪽에서 두번째)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단결과 조직을 강조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콜을 받는 자영업자도 마찬가지다. 

어느순간 플랫폼 업체가 자연스레 구축해놓은 시스템에서 벗어나면 배달 고객을 만날 기회조차 누리지 못 한다고 인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반강요된 수수료를 군소리없이 지불한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다수 소비자로서의 시민들 입장에서 플랫폼 서비스는 매우 편리하고 좋다. 너무 익숙해져버렸다. 그래서 그런 서비스 이면에서 취약한 노동권에 내몰린 사람들이 외면되기 십상이다. 공론화 자체가 좀 어렵고 더디다. 최첨단 혁신 기술을 활용한 요즘 시대의 혁신과 새로운 시장 창출이라는 포장지까지 입혀져 이론 싸움에서도 복잡해졌다.

권 교수는 “매우 비관적으로 극단적인 전망을 하면 온라인 플랫폼 기술이 발전할수록 기업의 소멸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며 “현재 사회보장제도가 상정하는 전통적 고용관계가 사라질 뿐만 아니라 플랫폼이라는 망을 갖지 못 한 사람들을 불안으로 내몬다”고 강조했다. 

초기 자본주의 체제가 자리잡고 20세기에 이르러 보편화된 노동법은 기본적으로 임금 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용자에게 다양한 법적 책임을 부과한다. 19세기 영국 산업혁명 시기에 아동 노동 착취 사례만 봐도 극명하다. 노동력을 판매하는 노동자는 절대 사용자와 대등하게 계약을 맺는 주체가 아니다. 자본을 가진 사용자는 노동자를 지배하고 얼마든지 착취할 수 있었다. 그래서 노동법으로 사용자에게 의무사항을 강제하는 것이다. 기업에 노동자를 위한 4대보험(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산업재해보험)의 재원을 부담시킨다. 

200년 동안 인류가 깨달은 교훈이 그것이었고 오늘날 선진국의 헌법에는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이 들어가 있다. 

권 교수는 이러한 현대 노동법 체계를 플랫폼 기업이 회피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권 교수는 “플랫폼 기업이 스스로 혁신이라 외치는 사업모델의 본령은 규제를 회피하고 그 규제로 지불했어야 하는 비용을 전가하고 외부화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카카오 카풀’과 ‘타다’ 등 최근 이동 플랫폼 업체를 두고 법적 규제 논란이 뜨거웠다. 무엇보다 우려를 제기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낡고 고리타분한 꼰대 취급이 가해졌다. 

권 교수는 “구시대적인 사람의 대표가 바로 나”라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플랫폼 업계도 독점화되고 있다. 독점 업체가 시장을 장악하려는 움직임이 일반화되면 그에 따른 갑질이 자연스러워진다.

배민은 국내 배달앱 시장 점유율 55.7%를 차지하고 있고, ‘요기요’는 33.5%, ‘배달통’은 10.8% 순이다. 독일계 기업 ‘딜리버리히어로(DH)’는 요기요와 배달통을 소유하고 있었고 최근 배민까지 인수했다. DH의 시장점유율은 99.9%다. 그야말로 완전 독점이다.

권 교수는 “거래의 시작점에 있는 주문중개앱이 완전 독점일 경우 바로 다음 단계의 거래인 음식점 사이의 거래조건(수수료 등)을 마음대로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요즘 가장 핫한 뉴스가 배민의 일방적인 수수료 인상이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경기도 내 소상공인들을 위해 공공 배달앱 개발에 나서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앱을 활용하는 음식배달업 시장의 매커니즘. (사진=박효영 기자)

결국 국가가 나서야 한다. 국회가 나서야 한다. 국가 조직을 압박하기 위해서 플랫폼 노동자들이 연대해야 한다. 뭉쳐야 한다. ‘라이더유니온’과 같은 조직이 더 많이 생겨나야 한다. 이것이 권 교수의 결론이다.

라이더나 자영업자들이 모두 표준계약서 체제에 들어오면 좋겠지만 “사용을 권장하는 것에 불과하면 그 사용 여부는 전적으로 당사자의 선택에 따를 수밖에 없고 법적 강제력이 없는 연성 규범”이라는 것이 권 교수의 진단이다.

프랜차이즈 가맹 사업이 그 선례를 보여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가맹점들이 일반 노동자의 노동조합처럼 조직을 결성하고 프랜차이즈 본사와 단체협약에 나설 수 있도록 제도 개선에 나선 바 있지만 입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 권 교수는 이런 사례를 “신사협정”이라고 묘사했다. 600만 자영업자 시대에 경쟁이 치열하니 본사가 너무 지나친 점포 확장을 강요하지 않게 하는 신사협정 일종의 MOU(양해각서)를 맺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본사 오너의 선의에 의존하고 있다.

권 교수는 “온라인 플랫폼이 플랫폼으로부터 일감을 할당받아 작업하는 노동자들이 서로를 연대의 대상이 아니라 한정된 일감을 두고 다투는 경쟁자로 인식하도록 만든다”며 “자발적 자기착취를 배양한다”고 환기했다. 

이럴 때일수록 권 교수는 “각자가 처한 상황의 다양함 때문에 이해의 공통성을 자각하기 어렵게 되어버린 플랫폼 노동자에게는 그들을 서로 결합시켜 새로운 연대를 구축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2020년 대한민국 플랫폼업계에 맞는 새로운 노동관계 입법이 이뤄질 수 있을까? 신사협정 수준으로 퉁치는 것 말고 정말 제대로 된 법률 개정으로 플랫폼 기업이 라이더들의 노동권을 무조건 보장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

권 교수는 “플랫폼 노동자들이 직종별 노조 형태의 강력한 단결체를 조직했을 때 비로소 독점적 플랫폼 기업과 대등한 교섭력을 획득할 수 있고 나아가 포괄적 노동정책의 실시 및 관련 입법을 위해 정부와 국회를 실효적으로 압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파했다. 

궁극적으로 권 교수는 “배달중개앱과의 업종별 단체교섭을 통해 배달중개앱이 배달 노동자와 직접 계약을 체결하는 구조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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