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의 협상력 차단
패스트트랙 기간 단축이 핵심
통합당도 할 말 없어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대국민 정치 혐오 정서에 기반한 ‘일하는 국회’ 공약을 추진하게 될지 주목된다. 총선에서 103석으로 쪼그라든 미래통합당의 발목 정치와 무조건 반대 전략에 철퇴가 내려졌기 때문에 더욱더 그런 흐름에 힘이 실리게 된 상황이다. 

민주당 총선 공약집에 보면 국회 입법 절차에 관한 공약이 있는데 ①매월 임시국회 소집 의무화 ②자동으로 상임위원회 개최 ③법제사법위원회 체계자구 심사권 폐지 ④국민입법청구법률안(3개월 내 30만명 이상 온라인 지지 서명) ⑤국회의원 불출석 제재 ⑤국민소환제 등이 있다.

작년 가장 핫했던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법안소위의 회의 장면. 국회 입법 절차의 시작과 끝은 법안소위라고 봐도 무방하다. 각 상임위별 법안소위에서 여야 만장일치로 법안 의결을 거쳐서 넘어가면 다음 절차들은 비교적 수월하기 때문이다. (사진=박효영 기자)

사실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들 입장에서 정치권 욕하기는 극에 달해 있어서 민주당의 이러한 입법 공약은 환영받을 수 있다. 집권여당 민주당은 (구)자유한국당이 지나친 발목잡기를 한다고 비판할 수 있지만 반대로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민주당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더했다. 원래 야당은 여권이 하는 일을 막아내고 견제하는 것이 오히려 ‘국회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판단하기 마련이다.

결국 민주당은 일하는 국회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①②⑤을 관철시켜 안건에 대한 회의 자체를 안 열리게 하는 야당의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실질적인 속내를 갖고 있다. ③도 통합당 소속 여상규 법사위원장이 법사위로 오는 모든 법안을 붙잡아뒀던 실력행사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현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과거 법사위원장을 맡았을 때 보수정부의 입법 추진을 저지하기 위해 ③을 요긴하게 썼다. 법사위가 다른 상임위에서 심사 완료된 법안의 체계자구 뿐만이 아니라 주요 내용까지 문제삼아 잡아두는 것은 월권이 맞다. 하지만 그 월권은 거대 양당이 야당일 때 모두 유용하게 써왔다. 

정리하면 민주당식 일하는 국회 입법은 야당이 대여 협상력을 위해 회의를 안 잡고, 국회 밖으로 나가고, 법사위로 막는 것을 못 하게 하겠다는 취지다. 

물론 통합당은 문재인 정부를 악마화해서 모든 사안에 지나치게 반대만 했기 때문에 국민 신임을 잃었다. 그래서 할 말이 없다. 야당의 반대 투쟁도 국민 지지를 등에 업고 하면 일하는 국회에 포함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발목잡기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패스트트랙(지정되면 본회의 표결 보장) 기간 단축이다. 이번에 낙선했지만 최재성 민주당 의원은 2018년 10월 ‘국민명령법’을 발의한 바 있다. 사실 이게 알맹이다. 민주당의 총선 대승 이후 다들 180석 달성에 주목했는데 의원 정수 300명 중 60% 5분의 3이라는 숫자는 국회에서 프리패스로 통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2012년 5월 이전까지 국회는 ‘동물 국회’로 불렸다. 다수 의석을 점한 A당이 B·C당의 의사를 깔아뭉개고 법률을 날치기 통과시키려는 것과 그걸 막으려는 B·C정당의 물리적 행동이 일종의 패턴으로 반복됐었다. 이런 폭력 국회를 막자는 취지로 국회 선진화법이 도입됐다. 하지만 2012년 당시 새누리당 당권을 쥐고 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회에서 소수가 될지도 모르는 자신들의 처지를 미리 우려해서 선진화법을 추진한 측면이 컸다. 

국회 입법 절차는 <각 상임위원회 법안소위 →상임위원회 전체회의 →법제사법위원회 →본회의 →국무회의 →대통령 공포>인데 집권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한 원내 1당이라면 여러 절차를 패싱하고 본회의로 직행할 수 있는 게 의장의 직권상정이라는 권한이었다. 

하지만 선진화법은 그 직권상정의 요건을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각 교섭단체 원내대표들의 합의 등 3가지로 제한해서 사실상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법률 통과를 불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대신 특정 안건에 대해 재적 의원의 5분의 3(전체 300명 중 180명 또는 해당 상임위에서의 60% 이상)이 동의하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할 수 있고 여야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330일(상임위 180일+법사위 90일+본회의 부의 60일)이 지나면 무조건 본회의에 상정된다. 

그 결과 선진화법 체제의 국회는 ‘식물 국회’로 불렸다.
 
거대 양당 또는 원내 교섭단체(20석 이상 보유한 정치세력)끼리 합의하지 못 하면 회의 일정을 잡기도 어렵고 법안 통과는 더더욱 난망했다. 180명이 하나의 뜻으로 모이기 힘들어 사실상 교섭단체 정당이 반대하면 입법 성과는 제로일 수밖에 없었다.  

2018년 내내 자행된 제1야당 한국당의 국회 보이콧 사례(김영철 방한·방송법·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드루킹 등)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국당이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국회는 올스톱됐다.

작년 5월 겨우겨우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어 연말연시에 어렵게 통과된 것이 선거법과 검찰개혁으로 불리는 법안들(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검경수사권조정안)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폭력 국회가 연출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선진화법 체제는 한국 정치의 적대적 대결 문화를 제도적으로만 막아놨지 그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최 의원의 국민명령법은 Ⓐ패스트트랙 안건 지정에 국민 참여 보장(19세 이상의 국민 50만명 이상 동의 필요) Ⓑ330일 60일(상임위 45일+법사위 15일)로 단축 Ⓒ국회 사무총장이 청와대 청원 사이트와 같은 시스템 구축 등 3가지다. 

민병두 의원은 민주당이 곧 국회 선진화법 개정에 나설 것임을 암시했다. (캡처사진=TV조선) 

만약 민주당이 최 의원의 국민명령법을 재발의해서 추진한다면 180석 위력이 좀 더 간소화된 절차를 통해 빠르게 행사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컷오프된 민병두 민주당 의원은 18일 방송된 TV조선 <강적들>에서 “정의당 등과 다 합치면 (범여권이) 190석이다. 범야권은 110석인데 그렇게 되면 국회법의 패스트트랙을 무한대로 활용할 수가 있는 것이다. 개헌 빼놓고(국회 개헌 의결정족수는 정원의 3분의 2 200명 이상) 다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집권여당 입장에서 패스트트랙을 맨날 활용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냐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며 “밟아가면 밟아갈수록 큰 부담이 생긴다. (궁극적으로) 20대 국회 맨 마지막에 얘기하고 있는 것이 국회 선진화법을 개정하자는 건데 그게 (21대 국회의) 첫 번째 과제일 것 같다”고 밝혔다.

반면 같이 출연한 박형준 전 통합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지금 180석 이상을 얻었기 때문에 뭐든지 할 수 있다.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한데 지금 민 의원이 말씀한대로 선진화법을 빨리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고치겠다. 이 발상이 벌써 의회 민주주의를 독점적으로 운영하겠다는 발상에서 나오는 것으로 그건 굉장히 위험하다”며 “(여당이) 좋은 의제를 갖고 좋은 방법으로 하면 (야당과 협치를 하는 데에도) 그 정도 의석이면 할 수 있는 것들이 굉장히 많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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