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기업에 돈줄 역할
부실 기업들이 줄서 있어
자체 기업경제 업무는 항상 후순위
증자도 부담돼
후순위 채권으로 실탄 확보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KDB산업은행(산은)이 연일 골치썩는 일에 시달리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아시아나항공, 쌍용자동차 등 산은의 자금력에 의존하는 기업들이 너무 많다. 하나 하나 굵직한 실타래가 얽혀 있어 기업들의 속사정을 단번에 풀어주기도 쉽지 않다. 

대표적으로 작년 11월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 인수전에 뛰어 들어 2조5000억원을 제시했지만 코로나19로 항공업이 워낙 불황이라 더 싼값을 요구하고 있다. 까딱하면 계약 위반 위약금을 내더라도 인수 포기를 선언할 분위기까지 감지된다. 

인도 자동차기업 마힌드라의 지배를 받고 있는 쌍용자동차도 최근 자금 사정이 매우 악화됐다. 원래 디젤 경유차만 고집하는 쌍용차가 티볼리 모델로 반등하나 싶었지만 매출 부진의 늪에 빠졌다. 마힌드라는 그런 쌍용차에 자금 지원을 해주기가 부담스럽다. 그래서 쌍용차는 자구책을 마련함과 동시에 산은만 바라보고 있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2019.10.14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작년 10월 국정감사 기간 동안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했다. (사진=연합뉴스) 

아무리 산은이 100% 정부 지분(기획재정부 91.71%+국토교통부 7.6%+해양수산부 0.69%)의 백업을 받고 있고 한국산업은행법에 따른 공적 금융기관이라고는 하지만 어느정도 실탄 관리를 해야 일반적인 기업 지원을 더 잘 할 수 있다. 대출해준 대기업들이 부실해질 때마다 걱정이 크고 이들에게 다시 지원을 해줘야할지 너무 고민스럽다. 더구나 코로나로 어려워진 대기업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고 정부도 산은을 통한 금융 지원 플랜(대출+회사채 사들이기에 총 16조6000억원 소요)을 세워놨다. 

자체적인 혁신기업 육성책은 맨날 뒤로 밀린다. 산은의 실탄을 필요로 하는 기업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상증자를 해서 좀 더 튼튼하게 실탄 확보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다른 국책은행들 보다 산은이 뭔가 기업 고충처리반의 큰 형님 느낌이 강하다. 대출 규모도 압도적이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작년부터 굵직한 부실 기업 문제를 ‘설거지거리’에 비유했다. 대우조선해양이나 아시아나 등 인수합병 문제를 잘 마무리하는 것이 묵은 숙제다. 이 회장 입장에서 벤처 투자 등 국책은행으로서 기업경제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에 더 집중하고 싶겠지만 급한 숙제부터 끝내야 한다는 게 머릿 속을 지배한다. 작년 4월 숙제를 전담해서 할 자회사 KDB인베스트먼트를 출범시킨 것도 그런 이유다. 산은은 자회사를 통해 큰 기업들에 대한 ‘재무 관리’와 ‘산업적 투자’를 분리해서 좀 더 효율적으로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코로나로 인해 동네 구멍가게부터 대기업까지 대한민국 경제 전체가 어렵다. 산은의 업무 과중도 심화될 수밖에 없다. 주요 대기업 그룹들은 최근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등에 소속 계열사의 재정 상태를 정리해서 보고서를 제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로 인한 기업 도산을 막기 위해 중소-중견-대기업 등 규모를 가리지 않고 지원하겠다고 선언한 만큼 그 공적 금융의 역할 대부분은 산은의 몫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아마 16조6000억원은 미니멈일 것이다. 당장 두산중공업 등이 빨간불을 켜고 산은에 손을 벌리고 있다. 항공업계의 위기가 극단적인 상황에서 저가항공사로 불리는 저비용 항공사들도 너무 급하다고 아우성이다.

산은의 BIS(국제결제은행) 총자본비율은 작년 기준 14% 가량이지만 갈수록 하락세다. 설립 목적이 있으니 오히려 총자본비율이 상승세라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것이겠지만 너무 떨어져도 고민거리다. 빌려준 돈을 못 받을 수도 있는 부실 채권 비율이 2.67%로 높은 편이다. 

결국 밸런스다. 

산은이 재정 상태를 너무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최대한 기업들에게 돈을 많이 풀어야 한다. 어쩔 수 없다.

3가지 방법이 있다. 

산은이 △좀 더 보수적으로 기업 대출을 깐깐하게 하거나 △유상증자를 해서 돈을 마련하거나 △후순위 채권(산업금융채권)을 많이 발행하면 된다. 첫 번째를 하기는 부담스럽다. 원래 산은의 존재 목적 중에 하나가 기업 회생인데 그럴 수는 없다. 그러면 현재 산은 보유 자산 18조6631억원에서 충분히 유상증자를 받아 기업 대출을 늘리면 되지 않을까. 법적으로는 30조원까지 가능하다. 그러나 산은이 새로 발행한 주식을 돈받고 팔아도 나중에 돌려줘야 하고 그것은 온전히 국민 혈세를 써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산은은 부담이 적은 채권 발행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통상 5000억원 이내로 채권을 발행하는데 4조원까지 발행할 수 있도록 내부 기조를 바꿨다.

산은은 일제강점기 조선식산은행이 뿌리가 되어 1954년 법률에 따라 공식 출범했다. 66년의 역사 속에서 설거지거리는 항상 있었겠지만 코로나 위기인 지금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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