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열 대기자
전대열 대기자

[중앙뉴스 칼럼=전대열 대기자]한국의 주거형태는 이제 집단거주가 주류다. 서울은 말할 필요도 없고 대부분의 도시는 온통 아파트로 뒤덮여 있다. 심지어 농사가 주업인 시골 구석구석에도 높다란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광경은 초가집과 농기구가 흩어져 있는 마당을 연상하던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낯선 풍경이 되었다.

아파트에 살다보면 이웃과 사귀는 경우가 드물다고 하는데 그래도 엘리베이터에서 간혹 만나는 사람들과는 눈인사도 나누고 몇 마디 세상얘기도 할 여유가 있다.

며칠 전 아래층에 사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묻지도 않았는데 지금 동사무소에 간다고 했다. 주민등록이라도 떼려고 가는 줄 알았더니 뜻밖에도 재난지원금 신청을 하려고 간단다. 목욕탕에서 만난 사람들이 벌써 돈을 받았다고 하더라면서 빨리 신청하라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 집은 큰 가게가 두 개 있는데 매출이 제법 많아서 지원금 대상이 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걱정이었다.

나는 그 정도 살림이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준다고 하는 전 국민 지급이 될 때에나 받으시고 그렇지 않고 70% 지급이라면 신청하지 말라고 충고해줬다. 승강기에서 내려서도 밖에서 그 얘기로 한참을 할애했다.

지금 전 세계는 코로나 감염에 전전긍긍하고 있으며 내로라하는 선진국들이 팬데믹에 휩쓸려 정신을 가누지 못한다. 심지어 영국의 수상 자신이 확진환자가 되어 격리치료를 받기도 한다. 이 판국에 경제는 위축될 대로 위축되어 어떻게 회복해야 할지 아무도 장담 못한다.

제일 큰 타격을 받고 있는 계층이 자영업자와 하루살이 노동자들이다. 자가 격리가 감염자 확산을 방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로 알려져 모든 나라들이 도시봉쇄, 국가봉쇄를 마다하지 않는다. 발원지인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미극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러시아 독일 등등 모든 국가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쩔쩔 맨다.

심지어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생필품 사재기에 폭동 직전의 꼴불견을 연출하기도 했다. 한국은 그나마 빠른 진단과 치료 덕분에 처음에는 대단한 기세로 퍼져 나가더니 이제는 좀 수그러든 상태다. 그러나 아직도 안심할 단계는 아니어서 모든 학교들도 온라인 개학을 하는 궁여지책을 쓰고 있다.

경제사정이 엉망이다 보니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들다는 하소연이 곳곳에서 들린다.

때마침 국회의원 총선이 실시되어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로 무장한 유권자들이 후보가 누군지도 모르고 투표장에 나가서 참정권을 행사했다.

문재인정권을 심판하겠다고 나선 야당은 제대로 홍보활동조차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여당 대승이다. 승패의 원인은 여러 가지 있겠지만 코로나 지원금의 매력이 유권자를 심리적으로 매수했다고 본다. 선거 때 돈을 쓰거나 다음에 주겠다고 약속하는 것 자체가 선거무효나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중대 선거법 위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금고를 쥐고 있는 여당이 합법적으로 선거가 끝난 후 전 국민에게 지원금을 주겠다고 선포했다. 정부는 70%, 여당은 100%다. 야당도 가만있기는 어렵다. 한 술 더 떠서 한 사람에게 50만원씩 주겠다고 했지만 국민들은 돈을 가지고 있는 여당을 찍었다.

유시민이 범여권에서 180석을 차지한다고 했다가 천기누설로 혼이 났는데 막상 뚜껑을 까보니 그보다 더 많다. 돗자리 펴고 길바닥에서 점을 치라는 우스개까지 나왔다.

총선에서 야당이 참혹하게 진 것은 정치를 모르는 황교안을 당의 얼굴로 삼았다가 좌고우면 결단을 미루는 뒤쳐진 리더십이 참패를 부른 셈이다. 선거 막판에 막말 파동이 있었지만 그들을 제명한다고 이미 뱉어진 말을 주어 담을 수 있겠는가.

이제는 너도나도 정신 차리고 코로나를 극복하여 새로운 나라로 거듭나야 된다고 입 달린 사람마다 외쳐댄다. 그 중의 하나가 재난 지원금이다. 지금도 정부에서는 하위 70%에게만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여당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야당의 주장은 아직 일정한 게 없다.

선거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황교안의 뒤를 이을 마땅한 대안이 없어서다. 그러나 지원금은 더 이상 미루기 어렵다. 경제가 너무나 나빠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전 국민에게 일정한 액수를 똑 같이 준다는 발상은 잘못된 것이다.

상위 30%는 100만원이 들어오던 말든 별 차이가 없다. 가장 시급한 사람들에게 상위급에 갈 돈을 한 번 더 지급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진짜 형평의 원칙이다. 있는 사람에게 주는 것은 그들의 은행계좌만 불어나게 할 뿐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제는 유통이다.

돈을 필요한 곳에 쓸 수 있는 사람이 많아야 하고 그것이 경제유통을 활발하게 하는 활력소 구실을 하여 침체했던 경제 분위기를 살릴 것이다. 상위급에게 줄 지원금을 하위 급에게 보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형평의 원칙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전대열 대기자. 전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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