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도 개혁 독인가
제3지대 스페어 정당과 다른 진보정당의 길
위성정당 들러리
정의당의 자체 역량 부족
정의당의 길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가시적으로 보면 정의당은 2018년 중순부터 선거제도 개혁에 올인했고 매우 부족하더라도 1년 반만에 선거법 개정을 관철시켰다. 하지만 47석의 비례대표 의석을 1석도 못 늘린 것과 위성정당 방지조항을 마련하지 못 했던 점이 너무 뼈아팠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14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1대 총선 평가와 정의당의 과제> 토론회에 참석해 “다들 공감하겠지만 이번 총선은 정의당으로서는 평가할 지점이 많으면서도 허탈감이 컸던 선거”라고 말했다.

심상정 대표가 토론회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의당은 이번주 일요일(17일) 전국위원회를 열어 당 차원의 공식적인 총선 평가와 향후 로드맵을 발표할 예정이다.

심 대표는 “이번 평가 과정에서는 평가서 합의문을 작성하는 식의 평가 과정은 의미가 없다고 내부적으로 결론내렸다”며 “총론적인 평가를 기초로 해서 이후에 어떻게 혁신의 길을 갈 것인가를 중심으로 이후에 일정 공유를 하겠다”고 설명했다.

선거제도 개혁에 당력을 너무 쏟았던 게 독이었을까.

심 대표는 “거대 양당의 비례 위성정당은 선거제도 개혁의 성과를 무력화시켰고 정의당을 포함한 소수정당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려운 선거를 치렀다”고 전제했다.  

이어 “정당의 발전은 선거제도 개혁에만 의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번 21대 총선이 촛불혁명 이후 최초의 선거라는 점에서, 개혁의 골든타임이고 선거제도 개혁이 거대 양당체제 이후의 전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정의당으로서는 선거제도 개혁을 통한 교섭단체 진입이라는 목표를 중심에 두게 됐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심 대표는 “결과적으로 실패했고 선거제도 개혁을 중심에 둔 정의당의 정체성 후퇴 또는 훼손 그리고 기대가 높았던 만큼 상실감과 실망감도 내부적으로 큰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이대근 우석대 교수는 “선거제 개혁에 적극 나서서 다른 거대 정당들을 이 판에 끌어들인 것 자체는 기록적인 성공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면서도 “소수당으로서 한계가 있다. 그 결과 왜곡된 선거제도 개혁으로 드러났고 경험을 통해 알아야 할 것은 제도 개혁의 효과 하나만 갖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 취지대로 (모두가)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시민들도 상황을 왜곡하고 악용하는 세력을 관용하고 이런 한국 정치의 현실을 하루 아침에 바꿀 수는 없기 때문에 완전한 비례대표제가 됐다고 해도 이런 정치 문화가 그대로 남아 있는 한 정의당이 원내교섭단체가 될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하며 “제도 개혁에 대한 과도한 낙관주의나 거기에 올인하려는 것은 이제 성찰해야 한다. 지금은 (승자독식의 가장 큰 수혜자인 민주당이 177석이 됐기 때문에) 불가능해졌다. 정의당 주도의 정치 개혁은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이 문제로부터는 깨끗이 손을 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1등만 당선되는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는 거대 양당의 적대적인 대결 정치를 만들었지만 대결 정치적 문화 자체가 승자독식 선거제도를 견고하게 한 측면도 있다. 

2019년 내내 전개된 선거제도 개혁 정국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의석수 증원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모든 여론조사에서 반대 의사를 더 많이 표했다. 연동형 도입 자체에 대한 여론은 찬성 6대 반대 4 정도 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위한 필수조건인 의석수 증원에 대해서는 정치 혐오 정서와 맞물려서 반감이 훨씬 크다.

정한울 한국리서치 여론분석 전문위원도 “국회의원 선거는 아직까지 지역구 위주다. 유권자들이 선호하는 선거제도가 비례대표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그니까 (위성정당을 만들어도) 역풍이 없었던 것은 유권자들에게 별로 중요한 개혁이 아니었던 거다. 편법을 하고 그걸 안 지켰다고 해서 또 특별하게 비판하거나 이러지 않았던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아직 한국 정치는 대통령 선거에서는 대통령 후보를 내야 하고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지역구 후보를 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뭔가 전략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발제자와 토론자들의 모습. (사진=박효영 기자)

망하길 바라는 저주 정치의 문화를 먼저 바꿔내거나 왜 선거법 개정이 필요한지 대국민 설득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 것 없이 선거법만 고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토론회의 발제를 맡은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책임연구원도 “2019년 선거법 개정을 할 때도 별로 기대 안 했다. 민주당이 합의해주는 제도로 얼마나 정의당에 유리한 제도가 나오겠는가. 그게 아니고 이 제도로 그대로 가더라도 대한민국에 진보야당은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사실 대한민국의 진보적 니즈에 비해 정의당의 성장 속도가 느린 것이다. 그래서 정의당에 미래가 없는지 있는지는 여러분들이 결정할 문제다. 다만 진보야당이 빨리 성장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정치 시스템적으로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의당이 걷고 있는 진보의 길과, 소위 거대 양당을 비토하고 중도에 기대는 제3지대의 길은 아예 다르다. 

서 연구원은 “한국 정치에 물론 스페어는 있다. 안철수 대표는 스페어가 맞다. 안철수 대표의 정치는 말 그대로 두 당이 싫어서 찍는 당이다. 그런 분들은 민주화 이후 30년 동안 없었던 적이 없다”면서 2002년 정몽준 전 의원의 ‘국민통합21’과 2008년 문국현 전 의원의 ‘창조한국당’ 사례를 거론했다.

이어 “역사적으로 큰 선거에서 혜성과 같이 나타난 분들이 없었던 적이 없다”며 “기존 주장에 대한 안티 볼륨이 있는 것이고 그것은 시스템의 압력이다. 두 당이 싫어서 어부지리로 얻은 정당들 중에 지금 살아남은 정당이 없다. 선거의 구도에 힘입어서 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지금 1997년 국민승리21 이후로 쭉 만들어온 진보정당의 길은 민주노동당과 정의당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외부의 힘을 가지고 들어온 것”이라며 “국민승리21,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 정의당으로 오는 이 힘은 몇 프로를 얻었는가와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온 것이기 때문에 그 계열 정당들과는 다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월말 연합정당론으로 시작해서 위성정당의 판이 되어버린 그 기간 동안 정의당은 잘 대응한 걸까.

서 연구원은 “2월28일 정치개혁연합, 시민을위하여, 열린민주당이 공식화했고 앞의 두 당은 여러 제 세력에게 (연합정당 테이블에) 동참해줄 것을 요구한다는 표현을 썼으나 실질적인 타겟은 정의당이었다”며 “정의당이 3월8일 전국위원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판단해서 동참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3월11일~12일에 걸쳐서 (더불어민주당 중진의) 압박성 발언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송영길 의원이나 최재성 의원이 (정의당이 이런 문제에는) 전당원 투표를 해야 한다는 식의 발언을 한다. 왜 이분들이 이런 발언을 했는지 알 수 있는 것이 3월12일부터 민주당이 전당원 투표를 한다. 알리바이였다”며 “당신들이 안 들어왔기 때문에 우리가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과정들을 볼 때 실질적으로 정의당은 민주당의 위성정당을 만드는 과정에서 들러리를 서줄 것을 요구받았고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만드는 데 알리바이로 사용됐으나 정의당의 선택지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즉 “정의당을 평가할 때 유연하지 못 했다거나 선거 연합정당에 들어갔었어야 한다는 것은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평가”라는 게 서 연구원의 생각이다. 

그래서 민주당과 가까운 인사들 이외의 진보진영에서는 연합정당 또는 위성정당 테이블을 거부한 정의당에 대해 응원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심 대표는 “9.6%(269만7956표)에 담겨 있는 국민들의 기대와 바람을 우리 당이 어떻게 혁신 과정을 통해서 성실하게 풀어나갈 것인가가 과제로 남아 있다”며 “늘 이야기했듯이 6411번 버스를 타고 새벽 출근하는 시민들의 곁을 지키면서 올곧은 진보정치의 길을 당당하게 가겠다”고 공언했다. 

분명 코로나19 위기에 문재인 정부가 객관적으로 잘 대응했다는 이미지가 모든 것을 압도했다.

서 연구원은 “코로나 국면은 한국 사회 전반을 재구성하는 아주 충격적인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코로나19는 선거 기간에 있어왔던 다른 이슈들과 동렬로 취급될 수 없다”면서 민주당이 코로나 특수를 강하게 누려서 어쩔 수 없었던 점이 있었다고 환기했다.

코로나와 위성정당이란 외부 요인 말고도 정의당이 정책 경쟁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 한 역량의 한계도 있다.

토론자로 참여한 이상일 케이스탯컨설팅 소장은 “코로나와 위성정당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 정의당이 상당히 정확한 논법에 따라 잘 했더라도 굉장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선거였다고 인정한다. 그렇지만 그게 본질적인 문제라는 점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르다”며 “내적인 경쟁력과 힘을 키워놨을 때 메시지의 파급력을 최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전의 선거에서는 역동적인 흐름들이 있었다. 2011~2012년 안철수 현상이나 2016년 국민의당 돌풍이 대표적이다. (이런 새로움을 원하는 욕구가) 실제로 유권자들에게 잠재해 있다”며 “왜 이런 것들을 정의당이 끄집어내지 못 했는가를 봐야지 위성정당이나 코로나 이슈 때문에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답을 한다면 상황논리에 매몰된 것”이라고 고언했다. 

나아가 “정의당에 투표한 사람들은 왜 표를 줬을까 보다 양당에 투표한 사람들은 왜 줬을까를 봐야 한다. 지역구 투표만 보면 49대 42 정도 되는데 만일 이 유권자들이 민주당이나 미래통합당이 좋아서 지지했다고 하면 제3의 정당이 갈 길은 없다. 아무 가능성도 없이 10%로 나눠먹는 것이기 때문”이라며 “그게 아니라 수구화된 보수가 부활하는 게 싫어서 어쩔 수 없이 민주당을 찍고, 반대로 민주당의 독주가 싫어서 그 대안으로 통합당을 찍은 게 있다면 사실 왜라는 문제를 거기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소장은 “왜 혐오 투표나 경계 투표에서 정의당이 대안이 되지 못 했을까를 물어봐야 한다”면서 정책 의제를 간결하고 선명하게 어필하지 못 했던 점을 지적했다.

이를테면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정의당의 21대 총선 공약집을 찾아봤다. 거기에 타이틀이 그린뉴딜과 불평등 5대 전략이다. 공약집이 200쪽에 달한다. 과연 총선 과정에서 얼마나 중심 화두를 두고 강력하게 밀 수 있을까. 거대 정당들은 백화점식으로 할 수 있다. 집권당이라면 더 그렇다. 백화점식으로 내놔도 기자들이 다 취재해서 물어봐주고 그걸 수행할 수 있으니까 관심을 받는다. 과연 제3의 길을 가는 소수정당이 100개에서 200개의 공약을 내놓고 우리도 공약집을 냈다? 이것이 성공의 기준이 될 순 없다”는 것이다.

거듭해서 이 소장은 “정말 선명하고 명확한 메시지를 내걸고 유권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접근했느냐를 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배준교 정의당 원내대표(가운데)가 토론회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사진=박효영 기자)

정의당을 아끼는 사람들은 정의당의 길이 있다면서 여러 이야기를 풀어놨다.

양권모 경향신문 편집인은 12일 출고된 칼럼을 통해 “집권여당의 개혁을 견인하겠다는 식의 미망을 버리고 이제 진보정당 본연의 과제에 집중해야 한다”며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 불평등과 억압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대변자가 되고 이들을 위한 정책을 추동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이어 “민주당 아류에서 벗어나야 하고 무너진 진보의 가치를 되살려야 한다. 진보야당의 길을 가야 한다”며 “열린우리당이 과반을 차지한 17대 국회(2004년~2008년)에서 10석의 민주노동당은 거대한 소수의 힘을 보여줬다. 거리와 광장으로 나가 광범위한 대중 운동에 기초함으로써 강력한 정치력을 발휘한 것이다. 정의당도 6411번 버스 그 가난한 이들의 거리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주창했다.

서 연구원도 “정의당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 더 이상 진보정당 계열이 그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라며 “코로나 국면에서 정의당을 찍은 유권자들은 보다 인간적인 미래를 고민하는 분들이다. 코로나 이후 어떻게 해갈 것인가에 대해 약자들이 안전하고 존엄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며 “여기에 중심을 두고 같이 이슈 비전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 연구원은 ‘2기 정당체제’에서 정의당이 ‘2기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서 연구원은 “민주화 이후 민주당과 통합당 양당으로 움직여온 정당체제가 있는데 이제는 아마 민주당이 여간 나쁜짓을 하지 않는다면 망하기로 작정하지 않는 이상 민주당을 중심으로 하는 정당체제가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걸 2기 정당체제라고 할 때 정의당이 진보적인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정리했다.

이어 “정의당에 요구하는 리더십의 변화는 기성 정치권에서 나오는 당권 갈등이나 파벌 싸움과 같은 리더십 교체라는 오염된 용어를 말하는 게 아니”라며 “정의당이 한국 정당정치 문화에 다른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공존의 문화다. 1세대의 경륜, 2세대의 책임감, 3세대의 미래 비전이 서로 존중하고 공존할 수 있다. 이게 시너지를 내서 한국의 새로운 정당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말이 아닌 실천으로 보여줬으면 한다”고 정리했다.

좋은 정책과 의제를 빨리 케치하는 것도 중요하다. 

서 연구원은 “정의당의 리더십은 수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다른 가치, 다른 문화, 다른 비전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시민사회 내의 다양하게 제기되는 정책 대안에 대한 수용성”이라며 “정의당이 독자적으로 만들어내라는 게 아니라 시민사회에서 좋은 것이 나오면 빨리 수용하라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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