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사위 갑질
관행의 기원
자신감의 근거는 역시 의석수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21대 국회 전반기 원구성협상과 관련 177석의 숫자로 미래통합당을 밀어붙이고 있다. 전날(26일) 양당 원내대표가 만나서 6월8일 내로 마무리짓고 법정시한을 지키자는 데에 뜻을 모았다. 분위기도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하루 뒤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강경한 목소리가 쏟아졌다. 

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은 27일 아침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열린 최고위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상임위원장 배분 문제를 가지고 야당과 협상할 일이 아니다. 상임위원장을 절대 과반 정당인 민주당이 상임위원장 전석을 가지고 책임있게 운영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리에 맞는 것”이라며 “상임위를 11대 7로 자기네 거라고 얘기하는데 이는 통합당 원내수석부대표의 일방적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윤호중 사무총장은 18개 모든 상임위원장을 민주당이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연합뉴스)

전날 양당의 원내수석부대표는 △11대 7로 상임위 배분 △국회 개원 데드라인(6월8일) 지키기 △6월5일 첫 번째 본회의 개최 △28일 예정된 청와대 3자 회동(문재인 대통령과 두 원내대표)과 수석부대표 간의 상시 논의로 협상 추진 등에 관하여 공감대를 이뤘다고 브리핑했다.

하지만 윤 사무총장은 18개 상설 상임위를 민주당이 다 가져야 한다면서 11대 7 합의설에 대해 김성원 통합당 수석부대표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고 반기를 들었다.

이에 배현진 통합당 원내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원구성에 대한 여당 지도부의 도발적인 발언들에 국회가 술렁인다”며 “관례적인 협상의 전략인지 은연 중 터져나온 오만의 발로인지 알 수 없으나 21대 국회의 시작을 국민들이 매서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양당은 3가지 지점에서 전혀 다른 판단을 하고 있다.

①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일하는 국회’ 실현
②이전의 원구성협상 관행
③21대 총선 결과 펼쳐진 의석수

통합당은 ①과 관련 의회가 해야 할 ‘일’의 개념에 대해 삼권분립의 원칙과 행정부 견제를 강조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조속한 입법 절차 효율화를 내세운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과 만난 뒤 기자들에게 “국회를 없애라고 하라. 여당이냐 야당이냐보다 중요한 게 헌법상 삼권분립이다. 행정부를 견제해야 하는데 이러면 안 된다”고 반발했다.

배 원내대변인은 “미증유의 코로나 정국으로 민생과 경제가 고사될 지경에 처한 이 시점 새 국회가 제대로 역할을 해주길 국민들은 절박하게 소망하고 있다. 원구성은 21대 국회 첫 단추”라며 “일하는 국회를 표방한 여당과 협치를 선언한 야당의 진정성을 국민 앞에 펼치는 첫 무대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행정부를 제대로 견제하는 것이 국회의 제일 중요한 일인데 원구성협상 때부터 여당이 도발적인 태도로 나와서 또 싸우는 모습을 보이면 어쩌자는 것인지 뭐 이런 입장이다. 

배 원내대변인은 “의원수의 압도적 우위를 확보하고 제1야당의 협치 의지도 이미 확인한 여당 지도부가 협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서두르거나 으름장 놓는 인상은 새 국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피력했다.

나아가 ②에 대해 “현재 통합당의 상임위 배분안은 여당이 과거 야당이던 시절에도 행정부를 감시 견제하는 의회의 역할 견지를 위해 동일하게 요구했던 안건들”이라고 주장했고 무엇보다 ③의 관점에서 “177석 거대 여당의 인해전술 의회독주가 아닌 건전하고 상식적인 의회 협치로 국민들께 21대 국회 첫 선을 보일 수 있도록 여당 지도부에 재차 당부한다. 싸움판에 소모말고 협상하자”고 주문했다. 

(사진=연합뉴스)
주호영 원내대표는 국회의 삼권분립에 따른 역할을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양당의 의석수 현황은 20대 말미 129대 108에서 지금은 177대 103으로 변동됐다. 1988년 민주화 이후 매우 이례적으로 압도적인 의석수를 차지한 민주당은 그야말로 의석수 깡패가 됐다. 

그래서 이날 열린 민주당 최고위회의에서는 무려 8명 중 4명(이해찬·김태년·박주민·박광온)이 압박성 멘트를 구사했다.

먼저 이해찬 대표는 “20대 국회까지 관행을 자꾸 근거로 해서 21대 국회도 유사 20대 국회처럼 만들려고 하는 그런 야당의 주장과 논리와 행태에 대해서는 저희 당의 입장에서는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며 “원내대표께 다시 한 번 촉구하는데 20대 국회의 잘못된 관행에 대해서 더 이상 인정하지 않는 입장으로 협상에 임해주시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이에 김태년 원내대표는 △국회 개원을 위한 원구성협상의 문제점 △코로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3차 추경(추가경정예산)의 중요성 △법사위(법제사법위원회)의 상원 갑질 등을 거론하며 “견제는 특정 상임위를 누가 가져가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좋은 정책과 대안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느냐가 중요하다”고 환기했다. 

이어 “야당이 국민의 지지를 더 많이 받는 정책을 만들면 여당에 대한 견제는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며 “잘못된 관행을 이용해서 견제하려는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한다. 낡은 것과 결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4.15 총선이 끝난 지 아직 얼마 지나지 않았다. 총선 결과로 나타났던 준엄한 민의를 되돌아보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가장 중요한 법사위와 예결위(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의석수 현실에 따라 민주당이 가져야 하고 원구성협상 역시 관행대로 이뤄질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사실 원구성협상 관행은 민주화 이후 여소야대 국회로 인해 굳어졌다. 원칙적으로 상임위원장은 국회법 17조와 41조2항에 따라 입후보 한 후보들 중에 본회의에서 재적의원 과반 출석을 전제로 한 다수결로 선출된다. 

박광온 최고위원은 △‘과반 의석(151석)’과 ‘안정적 과반 의석(168석)’의 차이점 △1981년부터 지금까지 법사위원장 20명을 통합당 계열에서 배출하고 4명만 민주당 계열 △1988년 13대 총선에 따라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이 87석의 여소야대가 된 뒤 굳어진 원구성협상 관행 등을 풀어냈다.

(사진=연합뉴스)
이해찬 대표를 포함 4명의 지도부 인사가 원구성협상 관련 통합당을 압박하는 멘트를 구사했다. (사진=연합뉴스)

민주당이 거머쥔 177석의 의석수 깡패에 대해 박광온 최고위원은 “(168석 이상은) 사실상 모든 상임위에서 표결을 통해서 다수결의 원리를 이용해서 민주주의 원칙을 갖고 안건을 처리할 수 있는 그 의석수”라며 “다수결의 원칙이 일방적으로 작동되는 것을 좀 지연시키는 장치로 필리버스터 제도를 두고 있다. 그런데 180석은 이 필리버스터 제도조차도 정지시킬 수 있는 그런 힘을 국민들께서 이번에 민주당에 사실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국회 운영을 야당과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하되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 당당하게 하라. 이것이 국민의 선택이었다고 나는 해석한다”고 주장했다. 

원구성협상 관행에 대해서도 “전통이 아니라 (여소야대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야당이 과거의 몇 가지 사례를 가지고 상임위원장 자리에 대해서 얘기하거나 특히 법사위원장이나 예결위원장을 이야기하는 것은 내가 보기에는 역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광온 최고위원은 김 원내대표에게 “국민의 뜻, 국민의 명령을 정확하게 헤아려서 야당과 대화를 하시고 야당이 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경우에는 모든 상임위원장을 상임위원회에서 선출할 수 있다는 각오로 대화를 하시는 게 어떤가 하는 제안을 한다”고 밝혔다.

박주민 최고위원은 법사위 갑질과 관련 “체계자구심사를 각 상임위에서 하자는 것”이라며 “(법사위에 체계자구심사권을 준 것은) 1951년에 만들어진 제도이고 그 당시에 법률 전문가가 워낙 부족했기 때문에 그나마 모여 있었던 법사위에서 그 기능을 독보적으로 행사하도록 만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광온 최고위원도 “20대 국회 때 소관 상임위에서 여야 합의로 올라온 법 55건을 법사위에서 발목을 잡아서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시켰다. 이것은 법사위의 견제 기능이 아니다. 이것은 월권 정도가 아니라 대단한 파행적 국회 운영이었다. 횡포였다”고 설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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