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통화
G7에 한국 초청
문 대통령 수락
미중 관계에 연루
트럼프 대통령의 노골적인 의도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중 갈등 국면에서 G7 정상회의에 대한민국을 초청했다.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한 세계 주요 7개국(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일본)이 모인 G7에 한국이 초청된 것은 좋은 일이지만 미중 관계가 악화되는 타이밍이라 고민스러운 부분이 있다. 

자국 여론이 불리할 때마다 전통적인 우방국을 통해 외교적 지렛대를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패턴도 있는데 일단 문재인 대통령은 수락 의사를 밝혔다.

문 대통령은 1일 오후 청와대 집무실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15분 가량 전화통화를 했다. 이 소식은 이날 22시30분 즈음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의 서면 브리핑에 의해 타전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전화통화 하는 모습. (사진=청와대,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올해 G7 정상회의 주최국으로서 한국을 초청해 주신 것을 환영하고 고맙다”면서 “초청에 기꺼이 응할 것이고 방역과 경제 양면에서 한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하고자 한다”고 말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현 G7 체제에 대해 “낡은 체제로 현재의 국제 정세를 반영하지 못 한다. 이를 G11이나 G12 체제로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며 한국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환기했다. 

단순히 G7의 옵서버(의결권없는 참관국) 자격으로 일회성 참여를 하는 게 아닌 정식 멤버가 된다면 국격과 위상의 차원에서 나쁠 건 없다. 사실 최강대국 미국 대통령이 이런 제안을 하는데 문 대통령이 부정적인 뉘앙스로 답할 리가 없다. 

문 대통령은 “G7 체제는 세계적 문제에 대응하고 해결책을 찾는 데 한계가 있다. G7 체제의 전환에 공감하며 (이번에) 한국, 호주, 인도, 러시아를 초청(G7 →G11)한 것은 적절한 조치”라며 “올해 G7의 확대 형태로 대면 확대 정상회의가 개최되면 포스트 코로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고 적절한 시기에 성공적으로 개최된다면 세계가 정상적인 경제로 돌아간다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호응했다.

브라질에게까지 문호를 여는 G12에 대해 문 대통령은 “인구, 경제 규모, 지역 대표성 등을 고려할 때 포함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발언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좋은 생각이다. 그런 방향으로 노력을 해보겠다”고 화답했다. 

G7의 역사는 1974년 1차 오일쇼크에 대응하기 위해 친미 국가 5개국(미국·일본·영국·프랑스·독일)이 머리를 맞대는 것에서 시작됐고 곧바로 이탈리아와 캐나다가 추가됐다. 탈냉전 이후 1997년 러시아까지 들어와 G8이 됐지만 2014년 크림반도 문제로 강퇴당했고 다시 G7이 됐다. 1990년대부터 급속도로 덩치를 키운 중국은 미국의 가입 제안을 받지 않은 만큼 G7 자체가 미국을 위시한 서방 국가들의 대중국 블록화 전략으로 규정되는 측면이 있다.

그동안 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전세계 240여개국에서 36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와 G20에 포함됐다는 것을 척도삼아 판단됐다. 그런 의미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은 액면가로만 보면 좋은 일이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 외교라인도 미국의 중국 봉쇄전략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지만 코로나 방역 모범국으로서 국제 무대에 과감하게 나서는 방향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이게 간단치 않은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참모들의 어드바이스를 듣고 △서방 국가들 중 부담스러운 독일이나 프랑스의 목소리를 원 오브 뎀으로 축소시키는 것과 동시에 △중국과 상대적으로 인접한 국가들(한국·호주·인도·러시아)을 다 끌어모아 압박 수위를 높이려는 노림수를 갖고 ‘G11’을 구상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 마디로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말 잘 듣는 ‘자기편 끌어들이기’인 것이다. 

백악관 관계자는 대놓고 대중국 전략 차원으로 최측근 동맹국들을 집합시키는 것이라고 속내를 드러낸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트럼프 대통령과 무려 9번이나 만났고 25번 통화했다. 그만큼 한미관계는 전통적으로 긴밀하게 유지돼왔고 미국은 국제적으로 필요할 때마다 한국 카드를 사용했다. 

미중 관계가 악화일로이고 올해 안에 시진핑 중국 주석의 방한 플랜이 있어서 문 대통령이 정무적으로 무색무취의 답변을 던져놓고 추후 좀 더 고민을 할 수도 있었지만 일단 흔쾌히 수락하는 스탠스를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3월 열린 G20 때처럼 G7도 6월 초중순에 화상으로 열릴 예정이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최대한 미국 본토로 각국 정상들을 불러모으고 싶어하는 눈치다. 전혀 그렇지 않지만 코로나 방역에 성공했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서라도 6월말 캠프 데이비드(메릴랜드주에 위치한 미국 대통령의 전용 별장)에서 대면 회의를 하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다. 하지만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가 완치된 것처럼 혹시나 다른 정상들이 그렇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은 △6월말 △9월 뉴욕본부에서 열릴 유엔 총회 즈음 △11월3일 미국 대선 이후 등 여러 시나리오를 놓고 고심 중이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면 회의를 고수하는 방침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미중 갈등관계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그래픽=연합뉴스) 

미중은 2010년대부터 치열한 환율 전쟁을 치른 바 있고 2018년 7월부터는 관세 폭탄을 주고받는 무역 전쟁을 본격화했다. 그러다가 올초 겨우 무역 합의를 이뤄냈다. 하지만 곧바로 코로나 팬데믹이 전세계를 휩쓸고 방역에 실패한 트럼프 정부는 연일 중국 책임론을 부각하면서 다시 무역 전쟁으로 돌아갈 것만 같은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가 코로나의 발원지였다는 점과 친중국 WHO(세계보건기구)를 문제삼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루틴이 됐다. 더구나 최근 중국 정부(전국인민대표대회)는 자치권을 요구하고 있는 홍콩 내 민주화 움직임을 탄압하기 위해 ‘홍콩보안법’을 통과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를 명분으로 중국을 비난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근래 흑인에 대한 백인 경찰의 살인 진압(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에서 조지 플로이드 사망)으로 촉발된 시위 흐름을 무작정 “폭력배들(Thugs)”이라고 규정한 만큼 국제 여론전에서 중국을 비난할 처지가 아니긴 하다. 

블룸버그 등 미국 언론들은 최근 중국 정부가 가장 큰 국영기업의 미국산 곡물 수입을 중단시키려고 한다는 보도를 내놓고 있다. 이는 홍콩보안법 통과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홍콩에 대한 미국의 특별지위 부여(현지 진출한 미국기업과 미국인을 비롯 여러 특혜 보장)를 거둬들이겠다고 암시한 것과 타이밍상 일치한다.

미중이 경제적 공멸로 치닫는 치킨게임을 멈추기 위해 무역 합의를 이뤘는데 가장 큰 파트가 중국의 미국산 곡물 수입(2년간 2000억달러 규모)이다. 중국이 미국산 곡물을 왕창 사주는 대신 미국은 대중국 추가 관세 부과 계획을 철회하고 지속적으로 관세율을 낮추기로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머릿 속에는 코로나 위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무조건 외부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는 집념 밖에 없다. 북미 화해 모드든, 미중 갈등이든, 호재든, 악재든 모든 카드를 다 써서 관심을 외부로 돌려야 한다.

시 주석이 맞불 드라이브로 나온다면 트럼프 대통령도 무역 합의 파기에 이를 수도 있다는 점을 아슬아슬하게 환기하면서 줄타기를 할 것이 뻔하다. 문 대통령은 일단 주사위를 던졌다. 하지만 전세계 코로나 방역 상황과 맞물리는 트럼프발 국제정치의 함수를 계속해서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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