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 시점에서 불이익 회복 불가
착오에 따른 계약 취소
금융 사기는 입증돼야
조정 완료되면 1611억원 반환
DLF, 라임, 옵티머스까지 계속 반복될 듯
금융당국의 대응 매뉴얼
조정 패턴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작년 엄청난 금융 피해를 야기했던 대표 사례는 ‘DLF’와 ‘라임’이다. 금융감독원은 라임자산운용이 유통시킨 사기성 펀드 피해에 관하여 처음으로 조정 결과를 내놨다.

금감원은 1일 라임이 유통시킨 무역금융펀드 ‘TF-1호’와 관련 4건에 대한 조정 심사를 진행한 결과 투자 원금 전액을 반환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피해 고객들이 펀드에 가입할 당시부터 이미 투자금 손실이 예정돼 있었고 단순 불완전판매를 넘어 사기에 가까운 허위 가짜 정보로 인해 막대한 재산상의 손해를 입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펀드 판매사인 금융사들이 투자자의 착오를 불러일으키거나 기망했다고 보고 계약 자체를 취소시켰다. 현재까지 금감원 분조위(분쟁조정위원회)에 들어온 조정 신청은 총 672건인데 무역펀드와 관련있는 케이스는 108건이다. 이중 이번 결정으로 보상을 받게 되는 경우는 72건이다. 모두 2018년 11월 이후 판매됐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금융감독원 강당에서 열린 라임 펀드 조정 결과 설명회. (사진=연합뉴스) 

김철웅 금감원 분쟁조정2국 국장은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금감원 강당에서 “이번 분쟁 조정에 따라서 금융회사가 수용하면 전체의 10%가 조금 넘는 72건이 해소된다. 금액으로 보면 1611억원으로 전체 환매 연기액인 1조6700억원의 10%에 조금 못 미친다”고 밝혔다.

김 국장은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2018년 11월 이후 무역금융펀드를 판매한 금융사가 총 5곳인데 민원이 제기된 우리은행, 하나은행, 신한금융투자, 미래에셋을 현장 조사했다”며 “4개사 민원 중 대표적 사례인 착오 취소에 합당한 부분을 대표 사례로 뽑았다”고 설명했다.

물론 사기성이 있다는 의심이 드는 것이지 금감원이 사기라고 단정짓지는 못 했다.

김 국장은 “사기와 착오에 따른 취소 여부를 둘 다 고려했다. 사기에 따른 취소는 형사 재판을 통해 기망의 고의를 입증해야 하는데 확정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피해자의 신속한 구제 측면에서 사기에 따른 취소로 가기에는 어려움이 있어서 투자자들에게 동일한 효과가 발생하는 착오에 따른 취소로 결론내렸다”고 강조했다.

이상한 펀드를 만든 설계사가 있고, 이를 구체적으로 관리한 운용사가 있고, 고객들에게 최종 유통시킨 판매사가 있다면 우선 이번 결정으로 판매사가 피해액을 돌려줘야 한다. 위험천만한 펀드상품을 팔아치운 제1금융권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등이 우선적으로 책임을 지는 것이다.

송평순 분쟁조정2국 부국장은 “법원 판례상 펀드 판매 계약의 당사자는 운용사가 아니라 판매한 증권사나 은행이다. 불법 행위를 한 운용사 등에 대해서는 판매사가 별도로 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정의연대가 신한은행의 라임 펀드 판매에 대해 책임지고 조사하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연합뉴스)

아이러니하게도 금융사들이 막대한 피해를 야기했더라도 금감원의 이번 조치는 권고적 효력에 불과하기 때문에 강제되는 것은 아니다. 

금융사들이 조정안을 받을지 말지 의사를 밝혀야 하는데 송 부국장은 “규정상 20일 이내에 답해야 한다”며 “(과거 키코 사례 등에서 조정안 수용 여부에 대한 답변 기한을 여러번 연장해서 피해 보상이 늦어졌는데) 이번 건은 법리적으로 복잡하지 않기 때문에 연장하더라도 1회 정도만 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만약 수락하지 않으면 불수락 사유를 제출하게 돼 있다”고 밝혔다.

나아가 김 국장은 “금융사의 수용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사실관계를 면밀히 살피고 외부에서 법률 자문도 구했다. 투자자 보호책임이 있는 대형 금융사로서 합리적이고 전문적인 법리 판단을 거친 권고안이라면 충분히 수용할 것”이라며 “금융사 이사회에 상정되면 치열한 논쟁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내다봤다.

안타깝게도 독일 국고채 금리와 연계된 DLF(파생결합펀드) 조정 때는 판매 시점에서 착오가 발생했다는 논리가 적용되지 않았다. 금리의 변동 가능성 때문이다.

김 국장은 “DLF는 마이너스 금리가 진행된 상황에서 판매됐다고 하더라도 장래에 금리 회복 가능성이 있었을 수 있다. 라임 무역금융펀드는 (대표 투자처인) IIG(인베스트먼트그룹)의 청산 절차가 개시되는 등 더 이상 회복 불가능한 상태였다”고 설명했고 송 부국장도 “(독일 국고채 금리의 흐름이) 마이너스 구간에는 진입했지만 개별 약정서상 손실 구간에 진입한 것은 없었다. 장래 변동성에 대해 부실하게 설명했으나 계약 체결 시점 당시에는 손실 구간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계약 당시에 허위 사실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며 라임 케이스와의 차이점을 풀어냈다.

김득의 대표는 조선시대 서원 난립하듯이 대규모 금융투자 피해 사태가 연달아 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진=박효영 기자)

DLF와 라임에 이어 최근에는 옵티머스(옵티머스자산운용)가 말썽을 일으키고 있다. 옵티머스는 토건 분야 공기업의 매출 채권에 주로 투자한다고 속여서 고객들에게 피해를 야기했는데 앞선 사례들과 비슷한 루트로 가고 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6월30일 저녁 기자와의 통화에서 “옵티머스 보니까 사기가 확실하더라”며 “(금융위가 옵티머스에 대해 전면 영업정지 조치를 내렸지만) 그걸 넘어 누누이 말했지만 이런 사태가 터지면 자산 동결을 시켜야 한다. 안 그러면 라임처럼 판매금으로 도피 자금을 만들어서 도망다니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금융당국이 시스템상 이런 금융 사기가 일어나면 패턴에 맞는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놔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기본적으로 사모펀드 규제를 다시 높여야 하는데 그대로 두니까 앞으로도 비슷한 사태가 계속 터질 것”이라며 “2015년 사모펀드 규제완화(최소 투자액 5억원에서 1억원으로 하향/사모펀드 운용사 진입 요건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변경/펀드 사전 심사제에서 사후 등록제로 변경)가 작년부터 큰 문제가 됐다”고 환기했다.

아울러 “2015년까지만 해도 20여개 정도 있었는데 자산운용사 설립 요건을 완화하니까 조선 후기 서원이 난립하듯이 220여개가 돼 버렸다. 그때 생긴 부실 자산운용사들이 설계한 사모펀드들이 3~5년 정도 지났으니 하나씩 터질 것이고 투자금 회수가 안 되니까 돌려막기를 일삼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관련해서 김 국장은 옵티머스 사태에 대해 “검찰 수사와 금감원 검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결과에 따라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미리 상정해서 단정적으로 말할 순 없다”고 말을 아꼈다. 

반면 송 부국장은 “검찰 수사 결과 계약 이전에 라임 무역금융펀드와 같은 불법행위가 있었고 그것이 중요한 부분에 해당하고 투자자의 중과실이 없다면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이라며 “그게 아니라 계약 시점 이후에 운용사의 불법이나 부실 행위가 있었다면 일반적인 손해배상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 입법 차원의 제도 손질이 중요하겠지만 김 대표의 분석처럼 이미 판매되어 조만간 터지게 될 금융투자 피해들에 대한 조정 스케줄은 어떤 패턴으로 전개되는 걸까.

김 국장은 “사모펀드는 손해가 확정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과거 KT ENS(신탁상품 불완전판매)의 경우 2014년에 사건이 불거졌지만 2018년에 분쟁 조정이 이뤄졌다”며 “(일반적으로) 4~5년 걸릴 가능성이 굉장히 큰 게 현실이다. 그래서 판매사들이 사적 화해를 상당 부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내부적으로 하반기 중에 어떻게 사모펀드 분쟁 조정을 처리할까 고민 중”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일단 사실관계 규명이 먼저다. 검찰 수사 결과 계약 취소 사유가 있다면 손실이 확정되기 전이라도 계약 취소를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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