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생명 걸고 젖먹던 힘까지
차별금지법은 반동성애 처벌?
필수 영역에서 구체적인 차별 행위 규제
선언적 의미도 있어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사실 차별금지법으로 네이밍되어 금지된 것에 대한 말만 해도 처벌받는다는 생각을 하기 쉽다. 전혀 그렇지가 않음에도 보수 개신교계를 중심으로 오해받기 쉬운데 그런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금지법 대신 평등법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최영애 인권위원장은 2일 오전 국회에서 심상정 정의당 대표와 만나 “평등법으로 바꾼 것도 누구를 처벌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사실은 모두가 평등하기 위한 법이라는 것을 국민들이 보다 빨리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 평등법이라고 이름을 바꿨다”며 “인권위에서 굉장히 많은 논쟁과 쟁점이 있었다. 이견도 있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부분에서 합의를 봤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부분에서는 과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인권위에서는 인권위가 만든 법안 그대로 제정하라고 하는 게 아니”라며 “국회에서 이걸 토대로 많은 논의와 숙의과정을 거쳐서 정말 이번 국회에서 이 법을 만들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있는 힘을 다해서 이 법이 21대에 꼭 올해에 제정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최영애 인권위원장은 차별금지법에서 평등법으로 이름을 바꾼 이유를 설명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모든 사람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차별받지 않을 본질적 권리가 있다. 그래서 차별하지 말라는 것이 차별금지법이다. 우리 모두는 의사, 가수, 서울시민, 변호사 등 특정 존재 자체에 대해 반대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서울시민을 반대한다? 자영업자를 반대한다? 이런 말은 성립할 수 없다. 동성애자와 트렌스젠더 등 성소수자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타인에게 전혀 피해를 끼치지 않지만 한국 개신교 일부 집단에서는 그들에 대해 혐오하고 차별하고 반대할 권리를 강변하고 있다.

심 대표는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차별하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코로나19 이후 사회로 나가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며 “차별금지법은 헌법을 실현하는 것이기도 하고 이 차별금지법 정신을 실현하는 것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존재 이유”라고 규정했다. 

심 대표는 최 위원장에게 △인권 교육이 법정 교과과정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에 적극 권고 △‘사회적 합의’를 이유로 뒤에 숨어 있는 더불어민주당에 대해 국가기관의 이름으로 적극 권고 △개신교계와의 대화 시도 등을 주문했다. 

심 대표는 “우리 사회가 사람중심 사회로 나가는 데 종교와 정치의 역할은 구별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심 대표의 주문사항에 대해 최 위원장은 “정의당에서 먼저 발의를 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그리고 얼마나 힘드실지 사실은 저희도 어떤 의미에서 저희의 짐을 같이 나눠줘서 감사하다는 말씀드린다”며 운을 뗐다. 

이어 “인권위는 각 당 대표들을 다 뵙고 말씀을 드리려고 한다”며 “종교계에서 특히 기독교에서 굉장히 우려가 많지 않은가. 한교총(한국교회총연합) 목사님 열 두분과 만났다. 실제적으로 우려한 바가 오해에서 비롯된 것도 상당수 있기 때문에 그 말씀도 드렸다”고 전했다. 

개신교계의 오해는 이런 거다.

최 위원장은 “설교하는 시간에 종교적 신념 얘기한다고 해서 잡혀가는 것 아닌가와 같은 1차적 질문에 대해 이 법으로는 그렇게 처벌할 수가 없고 종교 신념이나 표현은 집단 안에서 권리이기도 하다. 그러한 것을 규제하는 법이 아니”라고 피력했다.

한 마디로 차별금지법은 단순히 동성애 반대자들을 처벌하는 법이 아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에 따르면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 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 고용형태, 병력 또는 건강상태, 사회적신분 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다.

다만 차별을 금지하는 영역과 상황이 있다. 

즉 △고용(직업의 공간) △거래(돈을 주고 재화와 서비스를 이용할 때) △교육이나 직업훈련 △행정 서비스 혜택 등 민주주의 국가의 주권자로서 위와 같은 상황에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명시하는 것이다. 예컨대 직장 상사가 신입 직원이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만으로 은근히 따돌리거나 물리적 정신적 불이익을 주면 안 된다. 웨딩드레스를 대여하는 업자가 동성애자 커플에게 아무런 이유없이 판매 거부를 해서도 안 된다.

단순히 교회에서 혐오적이고 차별적인 언어를 사용했다고 해서 처벌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직장, 상점, 학교 등 생활 필수적인 공간에서 타인을 차별해서 불이익을 안겨주면 규제 대상이 된다. 

(사진=박효영 기자)
차별금지법이 21대 국회에서는 통과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박효영 기자)

법에서 유일하게 규정하고 있는 징역형은 관리자가 차별 피해자의 진정에 대해 보복행위를 했을 때다. 그럴 경우 징역 1년 이하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구체적으로 55조 1항에 “사용자 및 임용권자 교육기관의 장은 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자 및 그 관계자가 이 법에서 정한 구제 절차의 준비 및 진행과정에서 진정 또는 소의 제기, 증언, 자료 등의 제출 또는 답변을 하였다는 이유로 해고, 전보, 징계, 퇴학, 그밖에 신분이나 처우와 관련하여 불이익한 조치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돼 있다.

현행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라 지금도 위와 같은 행위를 하면 명백한 위법이다. 물론 인권위 시정 권고 대상이나 민사상 손해배상소송을 통한 제재 수준이었다. 이제는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구체적인 차별 피해에 대한 규제 기능도 있겠지만 일종의 인권 헌장처럼 차별적 언행에 대한 공동체의 단호한 반대를 표하는 선언적 의미도 있다. 

심 대표는 “차별금지법이 저희에게 매우 버거운 숙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생명을 걸고 젖먹던 힘까지 다하고 있다. 국가인권위도 존립을 걸고 21대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힘을 부탁드린다”고 밝혔는데 그만큼 뭉쳐있는 개신교계의 저항이 거세다.

매일 매일 교회에 가는 평범한 기독교인들도 자칫하면 혐오 세력의 낭설에 휩쓸릴 수 있다. 그래서 차별금지법에 동의하는 모든 세력이 힘을 합쳐야 한다. 

같은 날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07년 누더기 차별금지법이 무산된 이후 차별금지법은 철회되거나 발의조차 되지 못 하는 등 수 차례 수난을 겪었다”며 “사회적 합의라는 이름으로 편을 가를 때 우리는 모두의 권리를 외쳤다. 권력 눈치를 보고 침묵할 때 우리는 차별에 저항했고 말하기를 시도했다”고 밝혔다.

이어 “차별금지법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평등 사회로 가는 길. 이제 정치만 남았다. 국회는 들으라. 지금이야말로 혐오에 휘둘려 인권을 거래한 과거의 오욕을 씻을 기회”라며 “평등을 염원하는 민심을 사로잡을 적기다. 평등에 협상은 없다. 비겁하지 말라. 시대의 준엄한 요구를 받들어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헌법이 보장한 평등과 인권의 가치를 실현하라”고 촉구했다.

아울러 “앞으로 60일 동안 21대 국회 전원의 발의 동참을 위한 집중행동에 돌입할 것이다. 전국 각지의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다양한 자리에서 권리를 외치고 평등을 선언할 것이다. 더욱 시끄럽고 소란스럽게 한국 사회를 차별금지법으로 뜨겁게 달굴 것이다. 평등이 오고 있다. 모든 국회의원은 차별금지법 발의에 이름을 올려라. 평등에 합류하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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