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이애슬론 선수
경주시청 가해자들
모두 입을 맞췄나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는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수영·사이클·마라톤) 분야 故 최숙현 선수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가해자들이 국회에서 혐의를 부인했다. 

법적 조언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이들은 관리감독 책임이나 도의적인 차원에서만 유감을 표했고 “경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스탠스만 유지했다.

6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긴급 현안질의가 열렸다. 최 선수가 끔직한 폭행과 괴롭힘을 당했고 여러 기관에 도움을 청했음에도 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는지 국회 차원에서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민주당 소속 전용기 의원과 임오경 의원이 질의하고 있는 모습. (사진=박효영 기자)

현장에 출석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소속 김규봉 감독, 선배 선수 A·B·C씨 등 가해자 4명은 폭행 사실을 부인했다. 때리고 괴롭힌 사람은 없는데 피해자만 있는 이상한 형국이 됐다.

이용 미래통합당 의원은 김 감독에게 추궁했고 김 감독은 “(선수단 내에 폭행이 있었는지) 그런 적은 없다. 감독으로서 선수가 폭행당한 것을 몰랐던 부분의 잘못은 인정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고인에게 사죄할 마음이 없느냐”고 따져묻자 여성 선수 A씨는 “폭행한 적이 없다”며 “마음이 아프지만 경찰 조사에 성실히 임할 것”이라고만 반복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정 의원과 임오경 의원은 최 선수가 폭력에 시달릴 때 뭘 하고 있었냐고 물었고 김 감독은 “폭행한 적이 없고 선수가 맞는 소리를 듣고 팀 닥터를 말렸다”며 어처구니없는 답변을 내놨다. 

최 선수는 변호사까지 선임해서 권리 구제를 받으려고 했고 녹취록이나 동료 선수들의 추가 피해 증언도 확보해뒀는데 김 감독은 이런 증거들에 대해 일체 부인 모드로 일관했다.

작년 초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의 미투 전후로 문화체육관광부는 전수조사와 함께 스포츠계 폭력 문화를 발본색원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최 선수는 책임이 있는 관계 기관 어느 곳에서도 보호를 받지 못 했다. 최 선수는 2016년부터 가혹행위와 폭력에 시달렸고 범행이 벌어지던 당시 트라이애슬론 선수는 27명이었다. 소수의 가해자가 있고 다수의 목격자 및 피해자가 존재하는 상황이다. 

최 선수는 최근 김 감독, 팀닥터 안주현씨, 선배 선수 2명을 고소했다. 지난 4월에는 대한체육회 클린스포츠센터, 대한철인3종협회, 대한트라이애슬론연맹, 경주시청 등에 피해 사실을 알렸다. 문서로 작성해 진정서로도 제출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박양우 장관(앞줄 가운데)은 사과의 뜻을 표하고 적극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사진=박효영 기자)

의원들의 질타를 받고 박양우 문체부 장관은 “최 선수의 유족과 선수들, 국민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특별조사단을 구성해 철저한 조사는 물론 기존 시스템의 작동 문제를 확인해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며 “다음달 출범하는 스포츠윤리센터는 수사 고발까진 할 수 있지만 강제권 없는 조사만 할 수 있다. 스포츠 인권의 독립기구로서 제대로 일을 하려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스포츠윤리센터에 특별사법경찰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기흥 체육회장도 “참담한 심정으로 철저히 조사하고 지도자들을 교육하겠다”고 밝혔다.

비슷한 시간 최 선수의 동료 선수들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그동안 보복이 두려웠던 피해자로서 억울하고 외로웠던 숙현이의 진실을 밝히고자 이 자리에 섰다”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은 감독과 특정 선수만의 왕국이었고 폐쇄적이고 은밀하게 상습적인 폭력과 폭언이 당연시되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감독은 숙현이와 선수들에게 상습적인 폭행과 폭언을 일삼았고 주장 선수도 숙현이와 저희를 집단 따돌림시키고 폭행과 폭언을 일삼았다”고 폭로했다.

선수들의 증언에 따르면 김 감독은 △2016년 8월 콜라 한 잔 마셔서 체중이 불었다는 이유로 20만원치 빵을 사와 최 선수에게 강제 취식해서 구토하게 만듦 △견과류를 좀 먹었다고 견과류 통으로 머리 폭행 및 벽으로 밀치고 뺨과 가슴을 폭행 △2019년 3월 복숭아 먹고 살이 쪘다는 이유로 술 자리에 불려가 폭행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뺨을 때리고 △부모님과의 회식 자리에서 부친께 다리 밑에 가서 싸우자고 폭언 및 모친께 뒤집어 엎는다고 협박 등을 일삼았다.

나아가 안씨와 팀 주장 장윤정 선수의 각종 만행도 폭로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수많은 취재진과 관계자들이 몰린 상임위 현장의 모습. (사진=박효영 기자)

김승원 민주당 의원은 최 선수가 4월8일 체육회 클린스포츠센터에 피해 사실을 신고한 뒤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던 점에 대해 질의했다. 무엇보다 센터가 팀닥터 안씨의 신상정보를 전혀 파악하지 못 하고 있다는 점도 비판 대상이었다. 안씨는 폭행의 주범이자 경북 스포츠계에서 영향력이 막강해 김 감독도 존대말을 쓸 정도라고 한다. 

이상헌 민주당 의원은 “선수들의 건강을 관리해야 할 팀닥터라는 사람이 선수를 폭행했다”고 말했고 무소속 윤상현 의원은 “팀닥터 한 명의 책임이라는 경주시 체육회의 발표에 동의하느냐”며 “지금은 조사가 아니라 수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한 의혹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요청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 장관은 “검찰에도 은폐 및 축소 의혹 수사를 요청하겠다”고 답했다. 

전용기 민주당 의원은 최 선수가 지난 1월 경주시청에서 부산시청으로 이적한 뒤에도 고통에 시달렸다는 점을 공개했다. 최 선수가 경주시청의 만행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자 부산시청이 팀 차원에서 막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 녹취록이 현장에서 공개됐지만 부산시청 감독 D씨는 “고인이 경주시청에서 맞은 일은 전혀 몰랐고 그런 일을 세상에 알린다면 응원하겠다고 말했고 공개를 막은 적은 없다”면서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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