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과의 20여분 질의응답
엄중하긴 하지만 민감 사안에 답변
당대표가 되면 바로 바로 입장 내놔야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사안을 엄중하게 보고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입버릇처럼 구사하는 워딩이다. 대권 주자로 체급이 올라간 뒤 지난 1월 당으로 돌아와서 그의 행보를 취재한 기자들은 매번 이 의원의 엄중론을 들어야만 했다. 

이낙연 의원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박효영 기자)

그런 이 의원이 7일 14시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의원은 출마선언문을 낭독한 뒤 공식 백브리핑 공간으로 와서 21분간 기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이 의원은 쏟아지는 기자들의 정치 현안 질문에 일일이 답변을 한 뒤에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앞으로 여러분들 자주 뵙게 될 것이다. 국난극복위원회를 맡았을 적에는 그쪽에 집중을 스스로도 해야 하고 또 언론도 그쪽에 집중해주길 기대해서 정치 현안에 대해서는 일체 말을 안 했는데 이제 좀 내가 풀려났기 때문에 여러분 자주 뵙겠다”며 “오늘 모든 걸 다 파내려고 하지 말고 조금 남겨두면 어떨까”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모 기자가 손을 들고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만큼 이 의원의 정치적 중량감에 비해 기자들이 그에게 듣지 못 한 이야기들이 너무 많았다.

이날 이 의원은 평소의 엄중론에서 한 단계 더 선명해진 답변을 내놨다. 물론 여전히 신중한 모드는 그대로였다. 

이를테면 기자들이 질문한 민감한 문제로 △차별금지법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 강남 아파트 대신 충북 청주 주택만 팔기로 한 것 △당권과 대권 분리 규정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 △증세 방안 △이스타항공 관련 이상직 의원 논란 △인천국제공항 정규직화 논란 등이 있다.

우선 경제 이슈와 관련 이 의원의 철학이 드러난 부분부터 살펴보면 대표적으로 ‘포스트 코로나 경제’와 ‘부동산’이 있다.

이 의원은 “위기를 겪으면 산업의 변화가 굉장히 가속화되기 마련이다. 그것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대비해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에 어떤 산업이 구상할 것인지에 대한 전망은 충분히 있다”며 “업계에서도 준비하고 있는데 거기에 법제가 따라오지 않는다면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 20년 전 IMF 외환위기 때도 그런 일을 통해서 IT 강국의 초석을 놓은 적이 있다. 그것과 비슷하게 이번에도 디지털 전환이나 바이오 헬스 산업의 육성이나 그린뉴딜 같은 것은 많은 법제가 따라야 한다”고 설명했다.

6.17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비판적인 여론이 거세다. 

이 의원은 “부동산 문제는 기본적으로 불로소득은 근절해야 하고 실수요자나 청년층, 생애 처음으로 집을 가지려는 전월세 입주자 같은 분들은 보호돼야 한다. 그런 대원칙 아래에서 부동산 시장이 지금보다 훨씬 더 안정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데 그러자면 정책의 큰 기둥은 공급 확대, 과세 강화, 과잉 유동성이 산업으로 흘러들어가도록 유도하는 일이 필요하다”며 “과세 강화는 정부에서도 이미 많은 것들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지만 다주택자, 고가 주택 소유자에 대한 세금을 대폭 강화해야 하고 누진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그 대신 실소유자, 생애 첫 주택 구입자, 청년층, 전월세 입주자 이런 분들에 대해서는 훨씬 더 세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공급 확대는 특히 수도권의 경우 공급이 부족하지 않지만 서울 시내가 올해와 내년에 약간 부족한 상황이 돼 있다. 공급을 제약하는 규제를 좀 더 완화하는 것을 서울시와 협의할 필요가 있다. 유휴 부지를 잘 활용해서 주택 공급을 늘리는 방안이 우선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 의원에게 수많은 기자들이 질문을 던졌다. (사진=박효영 기자)

민감한 질문에 대한 이 의원의 대처법으로 넘어가보면 가장 먼저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국회에서 충분한 논의가 신속히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차별금지법에 대해 당론을 정하지 않은 현 민주당 지도부와 침묵으로 일관하는 소속 의원들에 비해 동의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점이 눈에 띈다. 

노 비서실장 문제에 대해 이 의원은 “좀 아쉽다는 이런 생각이 든다. 아까 내가 말씀드린 것과 같이 합당한 처신과 조치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일반 국민 여론의 방향대로 그쪽에 서되 비난성 발언이 되지 않기 위해 신경을 쓰는 모양새다.

지지율 30%대로 대권 주자 1위인 이 의원은 결국 7개월짜리 당대표라는 취약점을 안고 있다. 반면 김부겸 전 의원은 2022년 대권 도전을 포기한다면서 2년의 대표직 임기를 온전히 수행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 의원은 “바로 그것 때문에 대선에 출마하고 싶은 사람은 1년 전에 사퇴하도록 돼 있다. 그 상황은 아직 오지 않았다. 질문의 취지는 알겠으나 그런 고민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국가적 위기가 있는데 그걸 외면하고 다른 것을 하는 게 과연 옳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당원 동지들도 공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면서 대권 도전을 당연시하는 세간의 평가를 일축했다.

무엇보다 “현재로서는 당헌당규를 그대로 지켜야 한다. 임기도 그대로 존중돼야 하고 대선에 출마할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 그것도 당연히 존중돼야 한다”며 당헌당규를 개정하지 않을 것임을 암시했다.

비문(문재인 대통령) 포지션에 있는 조응천 의원은 추 장관에 대해 쓴소리를 한 바 있다. 윤 총장을 향한 추 장관의 말폭탄에 대해 비판한 것이다.

이 의원은 “장관의 합법적 지시는 검찰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같은 불편한 상태가 빨리 정리되고 해소되길 바란다”며 추 장관의 입장에 섰다. 추 장관의 지휘가 적절한지 아닌지를 거론하지 않고 위법적이지 않다면 따라야 한다는 차원이다.

증세 문제에 대해서는 전형적인 화법이 나왔다.

이 의원은 “(부자 증세 및 여러 정책의 재원마련 대책에 대해) 그것은 지금부터 미리 말씀을 하기 보다는 세밀한 준비를 갖춰가면서 국민의 동의를 얻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미리 충분히 익지 않은 것을 꺼내서 논란부터 일으키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한다.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스타항공 창업자로서 이상직 의원이 자녀에게 상당한 주식을 물려줬으면서도 항공사 노동자들은 임금 체불에 시달리고 있다. 이와 관련 이 의원의 코멘트도 전형적이었다.

이 의원은 “사실관계가 더 확인될 필요가 있겠지만 본인이 공인으로서 합당한 처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인천국제공항 정규직화 논란도 무척 예민한 사안이다. 이 의원은 이 문제에 답변을 하면서 왜 신중론이 중요한 것인지 설명했다.

이 의원은 “기본적으로 견지해야 할 가치는 있다. 노동의 양극화를 완화해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계속돼야 한다. 당연히 청년들에게 공정한 기회가 보장돼야 하고 더 많은 좋은 일자리가 제공돼야 한다. 이런 대원칙은 당연히 지켜져야 한다”며 “다만 지금 현안으로 돼 있는 여러 문제들이 굉장히 중층적이고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정치권에서 한 두 말로 개입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는 이런 판단을 한다”고 밝혔다.

이어 “아시겠지만 인천공항 노사,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가 지난 3년간 대화를 해왔는데 지금 이런 상태가 된 것은 몹시 안타깝다. 그 주체들이 지금도 대화를 계속 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현명한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고 조심스럽게 지원하는 것이 좋겠다”며 “거기에서 정치인들이 이것 저것 구체적인 말씀을 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될 수도 있겠다는 조심스러운 생각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 의원은 질문에 답변하면서 두 손으로 마스크를 쥐고 있었다. (사진=박효영 기자)

이밖에도 이 의원은 통합당과의 협치 모색 차원에서 “내가 기회를 갖게 된다면 맨 먼저 김종인 위원장을 찾아 뵐 것이다. 김 위원장과는 이래 저래 35년의 인연을 갖고 있다. 그동안 좋은 선후배로 지내왔다. 내가 배울 것은 배우고 협조를 요청할 것은 요청하겠다”고 공언했다.

정부보다 당의 역할이 필요한 지점에 대해 이 의원은 “당의 역할을 확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금 부동산 문제를 포함해서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지원하는 문제 등에서 현장에서는 여전히 정책이 소기의 성과를 내는 데 지체되는 그런 현상이 있다”며 “아무래도 정부보다는 당이 현장에 밀착돼 있기 때문에 현장에서 생기는 여러 일이나 사각지대를 지적하고 보완하는 일을 우선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출마선언문 내용이나 질의응답 과정에서 정치적 욕망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여지지 않도록 경계했다.

이 의원은 “(다음 대선의 시대정신 관련 질문을 받고) 오늘 나의 선언문이 2500자 전후가 될텐데 거기에 정권 재창출은 없다. 지금은 국난 극복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지금 기자분이 물어본 것은 다음에 말씀을 나눌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건 다음에 말씀드리겠다”고 말했고 “(겸손을 강조하는 걸 보니 민주당이 겸손하지 않은 일이 있다는 것인지) 겸손이란 참 어려운 것이다. 어느 것 어느 것이 잘못됐다는 걸 말씀드리는 건 자제하는 게 좋겠다. 항상 경계해야 한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경계해야 한다. 한문으로 자계라고 하는데 그런 자계의 자세가 필요하고 그런 기운이 당 전체에 감돌도록 노력해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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