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시장의 성범죄 가해 내용
죽음을 택한 자와 그러지 못 한 피해자
기자회견으로 입장문 밝히게 된 이유 
2차 가해에 대한 고소
확산된 고소장 유포자에 법적 대응 예고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故 박원순 서울시장으로부터 성범죄 피해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알파씨는 비서직을 수행하는 4년 내내 고통스러웠다.

알파씨의 변호를 맡고 있는 김재련 변호사(법무법인 온세상)는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알파씨는 현장에 자리하지 않았고 그 대신 서면 입장문을 공개했다.

입장문을 통해 알파씨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련했다. 너무 후회스럽다”며 “처음 그때(최초 성범죄 피해를 당했을 때) 소리질렀어야 하고, 울부짖었어야 하고, 신고했어야 마땅했다. 그랬다면 지금의 내가 자책하지 않을 수 있을까. 수없이 후회했다. 긴 침묵의 시간 홀로 많이 힘들고 아팠다”고 밝혔다.

이어 “더 좋은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며 “그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꿨다. 거대한 권력 앞에서 힘없고 약한 나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공정하고 평등한 법의 보호를 받고 싶었다. 안전한 법정에서 그분을 향해 이러지 말라고 소리지르고 싶었다. 힘들다고 울부짖고 싶었다. 용서하고 싶었다.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법의 심판을 받고 인간적인 사과를 받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여성단체 대표들과 공동 기자회견에 나선 김재련 변호사(오른쪽)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그럴 수 없게 됐다. 박 시장이 9일 밤(10일 자정에 발견)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알파씨는 “용기를 내어 고소장을 접수하고 밤새 조사를 받은 날(8일 오후부터 9일 새벽까지) 나의 존엄성을 해쳤던 분께서 스스로 인간의 존엄을 내려놓았다”며 “죽음. 두 글자는 내가 그토록 괴로웠던 시간에도 입에 담지 못 한 단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자신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그래서 너무나 실망스럽다. 아직도 믿고 싶지 않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덧붙였다.

성평등한 사회를 위해 평생 노력해왔던 박 시장은 스스로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말 못 할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박 시장도, 알파씨도 둘 다 죽고싶을 만큼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알파씨는 남겨진 주위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감히 그런 상상을 해보지 못 했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버텨냈다.

알파씨는 “많은 분들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많이 망설였다”면서도 “50만명이 넘는 국민들의 호소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은 그때 느꼈던 위력의 크기를 다시 한 번 느끼고 숨이 막히기도 하다”고 하소연했다.

관련해서 정소담 작가는 11일 새벽 페이스북을 통해 “약자를 위하고 인권을 위한다는 기치를 내세우며 일평생 인권 수호에 목을 높이던 사람이 본인보다 약자인 이를 야비하게 지속적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짓밟았다”며 “피해자(알파씨)가 더 이상 참지 않고 목소리를 내자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대신 죽음을 택하며 자신의 가족에게만 사과의 말을 남겼다. 가해 사실의 인정과 사과를 요구한 피해자를 아예 동등한 같은 인간으로 상대조차 해주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시장의 죽음 이후 알파씨의 책임이 아니라며 그녀의 곁에 함께 하겠다는 여론도 존재하지만 더 큰 덩어리의 여론은 박 시장에 대한 추모 물결을 형성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5일장’으로 치러지는 박 시장의 장례는 의도치 않게 알파씨로 하여금 자신 때문에 박 시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죄책감을 갖도록 위력을 행사한다. 정치권 또는 일부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알파씨에 대한 배려없이 섣부른 발언을 쏟아낸다. 심지어 알파씨의 신원을 색출하겠다는 몰상식한 일부의 움직임도 감지된다.

알파씨는 “진실의 왜곡과 추측이 난무한 세상을 향해 두렵고 무거운 마음으로 펜을 들었다”며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지만 나는 사람이다. 나는 살아있는 사람이다. 나와 내 가족의 일상과 안전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피력했다. 

김 변호사가 박원순 시장이 알파씨에게 보낸 비밀 대화방 초대 문자를 공개했다. (사진=연합뉴스) 

김 변호사는 기자회견을 열기 전 이날 오전 알파씨를 향한 2차 가해 혐의자들을 추가 고소했다. 나아가 박 시장을 고소하게 된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이를테면 △알파씨와 1차 상담(5월12일)으로 개괄적인 피해 상황 파악 △2차 상담(5월26일)으로 구체적인 피해 내용 파악 △구체적인 법률 검토 돌입(5월27일) △알파씨가 사용했던 스마트폰에 대한 디지털 포렌식 진행 후 증거 자료를 수사기관에 제출 △알파씨가 비서직을 관둔 이후 박 시장이 2월6일 텔레그램 심야 비밀 대화방에 초대한 증거 제출 등을 해왔다.

김 변호사는 “(박 시장이) 텔레그램으로 보낸 문자나 사진은 피해자(알파씨)가 친구들이나 평소 알고 지내던 기자에게 보여 준 적도 있다. 동료 공무원도 전송받은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이런 성적 괴롭힘에 대해 피해자는 부서를 옮겨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며 “성폭력특례법상 통신매체이용음란,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형법상 강제추행 죄명을 적시해 7월8일 16시30분께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소장을 접수했고 다음날 새벽 2시30분까지 고소인에 대한 1차 진술조사를 마쳤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후 9일 오후부터 가해자가 실종됐다는 기사가 나갔고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고 덧붙였다. 

알파씨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관계도 바로 잡았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는 공무원으로 임용돼 서울시청이 아닌 다른 기관에서 근무하던 중 서울시청의 연락을 받고 면접을 봐 4년여간 비서로 근무했다. 피해자는 시장 비서직으로 지원한 적이 없다”며 “인터넷상에서는 피해자가 사직한 것으로 나오고 있지만 피해자는 이 사건 피해 발생 당시 뿐만 아니라 2020년 7월 현재 대한민국 공무원으로 재직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장에 수많은 기자들이 참석했다. (사진=연합뉴스)

인터넷에 떠도는 고소장에 대해 김 변호사는 “저희가 수사기관에 제출한 문건이 아니”라며 “문건 안에는 사실상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서울지방경찰청에 해당 문건을 유포한 자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수사해서 처벌해 달라고 고소한 상태”라고 밝혔다.

대략적인 성범죄 피해 내용이나 그 지속성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김 변호사는 “범행은 피해자가 비서직을 수행하는 4년 동안 그리고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난 이후에도 지속됐다. 범행 발생 장소는 시장 집무실과 집무실 내 침실 등이었다”며 “상세한 방법은 말씀드리기 어려우나 피해자에게 둘이 셀카를 찍자며 피해자 신체에 밀착하거나 무릎에 나 있는 멍을 보고 호 해주겠다며 무릎에 자신의 입술을 접촉했다. 집무실 안 내실이나 침실로 피해자를 불러 안아달라고 신체적 접촉을 했다”고 나열했다.

이어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에 초대해 지속적으로 음란한 문자나 속옷만 입은 사진을 전송해 피해자를 성적으로 괴롭혀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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