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만표가 버려진다
소수정당 지지자의 좌절감
거대 양당에만 유리
적대적 대결 정치
네덜란드 케이스
봉쇄조항이 있더라도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미래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2001년생 김은수씨는 이번 총선에서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했지만 절망감을 느꼈다. 원외정당을 지지하고 있지만 표를 줘도 당선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아니면 미래통합당을 찍었던 주권자들도 이른바 죽을 사(死) ‘사표방지심리’라는 것 때문에 억지로 표를 준 경우가 많다.

14일 14시 헌법재판소 앞에서 봉쇄조항 3% 폐지 헌법소원 청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씨는 △진보당·노동당·녹색당·미래당 △사회변혁노동자당(2022년 이내 창당 목표) △조기현 변호사(법무법인 대한중앙) 등과 함께 헌법소원 청구의 주체로 나섰다. 

공직선거법 189조 1항 1호에 따르면 정당 투표를 통해 의석을 배분받기 위해서는 전체 투표자의 3%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이번 4.15 총선에서 2789만9864명의 유권자가 정당 투표에서 유효표를 행사했는데 비례대표 후보를 낸 정당이 83만6995표(3%)를 넘겨야 의석을 배분받을 수 있다.

김은수씨(왼쪽에서 두 번째)를 비롯 미래당 활동가들이 피켓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미래당)

김씨는 “정치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진보냐 보수냐라고 묻는다. 진보라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본다. 내 친구에게 물어보니 문재인 대통령이 싫어서 핑크당을 찍었다고 한다. 선거는 올림픽이 아니”라며 “지금 기득권을 완전히 확보한 거대 양당은 선거 때마다 서로를 깎아내려 표를 끌어오기 바쁘다. 어차피 저쪽 아니면 우리쪽을 찍기 때문에 다른 정당은 아웃 오브 안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선거는 국민 표심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것이 기본적이다. 하지만 3% 봉쇄조항은 철저하게 거대 정당 소속 국회의원의 자리만을 보호한다. 3%는 80여만표다. 70만표를 얻어도 79만표를 얻어도 의석 1개를 배분받지 못 한다”며 “넘지 못 한 표는 전부 사표가 된다. 내가 행사한 표가 버려질 게 뻔하기 때문에 소수정당을 지지하더라도 투표에 대한 희망이 없다”고 토로했다.

거대 양당은 입버릇처럼 군소정당의 난립을 걱정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30개 정당이 얻어낸 304만3794표(전체의 10.45%)가 봉쇄조항으로 쓰레기통에 쳐박힌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하다. 전국에서 여섯 번째로 인구가 많은 기초단체 충북 청주시에는 84만2821명이 살고 있다. 서울 25개 자치구의 평균 인구는 40여만명 수준이다. 그런데 총선에서 304만표가 날라간다. 30개 정당이 손가락만 빨고 있을 때 오직 5개 정당(더불어시민당·미래한국당·정의당·국민의당·열린민주당)만 파티에 초대된다. 사실 거대 양당이 만든 위성정당으로 인해 나머지 3개 정당도 큰 손해를 봤다.

표의 등가성 차원에서 봤을 때도 지역구 국회의원이 2~3만표 차이로 당선되기 때문에 이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낙연 민주당 의원은 서울 종로구에서 5만4902표를 받았고 1만7000여표 차이로 황교안 통합당 후보를 따돌리고 당선됐다.

3% 봉쇄조항 폐지를 위한 헌법소원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는 모습. (사진=진보당)

김씨는 원외정당의 원내 진출을 이렇게 해석했다.

김씨는 “사실 이번에 첫 투표를 하면서 되게 많이 기대를 했다”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서 신생 정당 소수당들이 아주 많이 생겼기 때문에, 소수와 약자를 대변하고 보호한다는 당들이 출마했기 때문에 꼭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 아니라도 원외정당이 의석을 차지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고 운을 뗐다.

이어 “한 자리라도 차지한다면 그 의미가 정말 크다. 원외정당이 원내로 진입하는 통로가 될 수 있고 거대 양당도 우리를 의식하지 않겠는가”라며 “하지만 투표 결과는 절망스러웠다. 비례대표 투표율이 지역구에 비해 굉장히 낮을 뿐더러 한반도를 핑크색과 파란색으로 완전히 갈라놓았다. 양당 체제의 벽은 정말 견고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원외정당들이 아무리 머리를 짜내고 몸을 던져보아도 그 견고한 벽에 희미한 노크 소리조차 내기 어렵다”며 “국회에는 다양성이 너무 떨어지고 평균 연령은 59세, 남성 비율 83% 이런 국회가 어떻게 내 맘을 알겠는가. 청년들의 고충이 무엇인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도대체 어떻게 알 것이며 어떻게 대변하겠는가”라고 덧붙였다. 

(사진=진보당)
봉쇄조항을 깨부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김은수씨의 모습. (사진=미래당)

사실 진보당의 전신인 민중당(20대 국회 당시 1석 보유)과 원외정당들은 2019년 연말 비슷한 연대 활동을 한 적이 있다. 그때는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봉쇄조항을 오히려 5%로 상향하려는 움직임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한국 정치는 맨날 싸운다고 한다. 정치 혐오가 극심하다. 모든 정치학자들이 한국 정치를 한 마디로 ‘적대적 대결 정치’라고 규정한다. 1등당선제로 권력을 쥐게 된 대통령과 정당이 모든 것을 독식하기 때문이다. 독식 또는 쪽박의 양자택일 구도는 분노와 저주의 정치를 불러온다. 하지만 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등을 제외한 OECD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런 이상한 1등당선제 위주의 선거제도를 채택하지 않고 않다. 거의 대부분이 (전면 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의원내각제를 채택했다.

네덜란드가 대표적이다. 

네덜란드는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고 △상원 75명(지방의회 간선제)과 하원 150명(전면 비례대표제)을 선출하는데 △개방 명부(정당 투표 용지에 후보 명부 기재)인데다 △봉쇄조항이 없고 △다른 정당과의 정당명부 연합이 가능하다. 2012년 총선 기준 네덜란드 유권자 946만2223명(투표율 74%)이 투표했는데 이를 150석으로 나누면 6만3081표이고 이만큼만 넘기면 1석을 배분받는 것이다. 네덜란드 노숙자들이 선거를 앞두고 권익 상승을 도모하기 위해 노숙자당을 창당했다고 가정하면 6만표를 넘기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면 타 정당과 정책 협상을 하든 뭘 하든 합의를 해서 연합 명부를 만들면 된다. 

(사진=진보당)
김재연 대표는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하는 표심이 봉쇄조항으로 버려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사진=진보당)

김씨는 “소수정당은 소수니까 배제하자. 하던대로 하자. 소수정당의 생존권에 대해 다수가 찬반을 논하는 상황이 너무 이상하다”며 “우리는 여기 살아 있는데 눈감고 귀막으면 사라지는가? 정치 다양성을 막는 소수정당 봉쇄조항을 폐지하자”고 주장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는 “3%를 득표하지 못 했다는 이유만으로 노동, 환경, 평등, 평화를 염원했던 국민들의 꿈이 함께 버려졌다”며 “거대 정당만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에서는 정치적 다양성이 보장될 수 없다. 그 피해는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청년, 비정규직 등 우리 사회 약자들에게 돌아간다”고 역설했다.

물론 외국에도 봉쇄조항이 존재한다.

오태양 미래당 공동대표는 “봉쇄조항을 이야기할 때 준연동형의 모델 국가인 독일과 뉴질랜드와 비교를 많이 한다”며 “독일은 5% 봉쇄조항을 유지하지만 그만큼 소수정당도 의회 진출을 할 수 있는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100%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가지고 있다. 뉴질랜드도 5% 봉쇄조항이지만 대신 지역구에서 1석만 획득해도 정당은 비례 의석 배분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의 선거제도는 득표율을 의석으로 바꾸는 선거제도 자체도 거대 정당에 철저히 유리하게 되어 있고 또한 봉쇄조항은 높아서 소수정당의 의회 진출을 막고 있다”며 “봉쇄조항이 도입된 이래 1987년 민주화 이후 30년 동안 원외정당 중에 3%를 극복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오 대표는 “가장 결정적으로 왜 봉쇄조항의 기준이 3%인가에 대하여 어떤 법적, 사회적 기준에 대한 근거가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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