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의 포럼
부산을 흔들어 깨워보고
타이밍이 좀 쉽지 않다
아들 논란이 있었음에도
2012년 문재인과 붙어봤다면

[중앙뉴스=박효영 기자] 장제원 미래통합당 의원은 20대 국회에서 해볼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봤다고 말했다.

“4년 동안 청문회를 17번 했다. 정치개혁특위 간사, 사법개혁특위 간사, 예결위(예산결산특위) 간사, 수석대변인까지 했다. 국회의원이 이렇게 바쁠 수가 있는가 그랬는데. 3선 되고 나서는 지역구에 좀 더 집중하고 있다. 비대면 정치가 되다 보니까 행사가 거의 없어지긴 했지만 열심히 하고 있다.” 

지난 1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에서 장 의원과 청년들이 모였다. 

보수의 미래를 논하기 위해 2시간 가까이 대담을 했는데 이 자리에는 최원선 전 새로운보수당 부대변인, 우종혁 통합당 청년조직특별위원회 위원, 이윤환 세움정책연구소 소장, 김수민 정치평론가 등이 참석했다. 대담은 멤버들이 미리 준비한 2~3개의 질문을 장 의원에게 묻고 답변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장제원 의원이 2시간 가까이 청년들과 대담을 진행했다. (사진=장제원 의원실 김경석 인턴)

요즘 장 의원은 2개의 포럼을 만들어가고 있다. 

장 의원은 “정치인으로서 창조적인 일들을 하고 싶어서 지금 우리 당이 너무 김종인 비대위원장 원보이스로 가고 있다. 마이크가 독점돼 있다”며 “언론 조명을 전혀 받지 못 하던 우리 후보들이 대선 경선 링으로 올라가면 바른정당 경선 시즌2가 된다. 그때 남경필 대 유승민이 싸웠는데 지금도 유승민, 오세훈, 원희룡 뭐 이렇게 올라올 것 아닌가. 그래서 우리 후보들의 스테이지를 만들어줘야겠다”고 운을 뗐다.

이어 “내가 대한민국 미래혁신포럼을 물려받았다. 20대 국회에서는 최우수 단체였다. 결국 가장 권력이 센 대통령이 어떻게 혁신의 대한민국을 이끌어가겠는가를 들어보는 것이 혁신의 가치를 얘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무대가 아닌가 싶다”며 “그런 스테이지를 만들주고 싶어서 시리즈로 처음에 원희룡 선배 올렸고 오세훈 선배 올렸다. 8월에는 하강기니까 9월에 또 한 분 섭외가 끝났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포럼은 부산 혁신포럼이다.

장 의원은 “내년에 좋든 싫든 부산시장 선거 국면으로 넘어가니까. 부산 혁신포럼을 준비하고 있다”며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을 중심으로 하는 부산의 새로운 리더들이 한 60~70명 모여서 부산의 미래 가치를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 대한민국 포럼은 대권 주자 중심이라면 이것은 프로젝트 중심으로 준비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장 의원이 7월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미래혁신포럼' 초청 강연에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장 의원은 이미 총선 선거운동 기간에 “부산시장 한 번 하고 대통령을 하고 싶다”고 발언한 적이 있다. 부산 포럼은 그런 밑바탕을 만드는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최 전 부대변인이 대놓고 출마 의사가 있는지 물어봤다.

장 의원은 “답변이 길다”면서 “선출직이라는 게 타이밍이 굉장히 중요하다. 보편타당하게 누구나 물이 요만큼 차서 찰랑찰랑할 때 이 사람이 나가는 게 시기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한 번 붙어볼만하네? 그런 인식이 있어야 하는데 타이밍적으로 4월15일 당선돼서 6월1일 임기가 시작됐다. 그러면 연말에 출마 선언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6개월 만에 뱃지 떼고 나 시장하고 싶다! 했을 때 우리 지역구민들(부산 사상구)이 뭐라고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고 털어놨다. 

장 의원은 “부산을 흔들어 깨울 수 있는”이란 표현을 반복했는데 그만큼 부산이 경제적으로 침체돼 있다는 문제의식이 있다. 부산 포럼을 통해 새로운 경제 컨텐츠를 만들어낸 뒤 상황을 지켜보고 출마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장 의원은 “내가 출마를 안 하더라도 부산 포럼을 통해서 부산을 흔들어 깨울 수 있는 컨텐츠를 새로운 리더십을 가진 부산시장 후보자한테 제안을 하고 또 국회의원으로서 그걸 관철시키는 노력을 같이 한다면 내가 하는 것도 의미가 있고 다른 분이 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느냐”라며 “12월까지 내가 어떤 결정을 할지는 모르겠다”고 밝혔다.

현재 장 의원과 함께 김세연 전 의원, 서병수 의원(전 부산시장) 등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는데 장 의원은 출마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처럼 보여졌다. 

장 의원은 “개인적인 권력의지라고 할까. 정치인은 점핑을 해야 하는데 부산 국회의원으로 4선에 성공하더라도, 또 (2016년 20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됐다고 해도, 문재인 대통령이 (2012년 19대 총선에서) 당선된 여기는 험지 중의 험지라는 얘기를 해봤자. 내가 내 자랑하는 것밖에 안 되는 것”이라며 “어떤 정치적 진로를 택할 것인지는 3선의 위치가 중요하다고 본다. 정치적으로 더 큰 권력의지를 갖고 어떤 역할을 해야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전 부대변인이 “마음은 있는데 고민 중이시구나”라고 건네자 장 의원은 재차 “(부산의 활력 없음을 전제한 뒤) 정치인은 꿈을 팔아먹는 장사꾼이지 않은가. 그런 새로운 꿈을 만들어낼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멋있는 시장이 되고 싶은 꿈이 있다”며 “그걸 발판으로 정말 살아 꿈틀거릴 수 있는 도시로 만들어놓은 다음에 국민 여러분 부산 한 번 보시라. 이렇게 만들어놨다. 나에게 대한민국을 경영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얘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은 내가 낸 법안이나 투쟁 밖에 없다. (부산시장이 되어 성과를 낸다면) 그런 실적을 가지고 국민들이 선택을 하지 않을까. 당을 떠나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장 의원은 총선과 맞물리는 시점에 아들의 음주운전 및 운전자 바꿔치기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는 중이었음에도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됐다. (사진=연합뉴스)

사전에 멤버들은 장 의원의 아들 문제를 거론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장 의원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아들 논란이 진행 중이었음에도 부산 사상구민들이 압도적으로 자신을 밀어줬다는 맥락에서였다. 

먼저 장 의원은 “내가 좀 반성을 하자면 이건 젊은 사람들에게 정치인 장제원이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마흔살에 국회의원이 처음 됐을 때 아버지 잘 만나서 국회의원까지 해먹네? 내가 왜 국회의원이 돼야 하는지에 대한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면서 그 이후 두 번의 공천 배제, 국정농단 등을 겪고 당파성을 넘어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치를 다짐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3선이라는 무거움도 있지만 너무 감사한 것이 솔직히 이번 선거는 장용준으로 시작해서 장용준으로 끝났다”며 “진짜 이루 말할 수 없는 장용준에 대한 공격들이 있었다. 우리 아들이 2월말 첫 재판이 있었다. 근데 그게 코로나 때문에 휴정이 돼서 4월10일 사전 투표가 시작됐는데 4월9일 첫 재판이 열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악재를 가뿐히 뛰어넘었다.

장 의원은 “그게 악재로 작용했음에도 12개동에서 다 이겼다. 60개 투표소에서 57개를 이겼다. 내 능력이 아니라 우리 지역 주민들은 장용준 문제를 나의 선택의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당 지지율(33.84%)보다 압도적인 지지율로 10% 이상 높게(52.03%) 지지를 보내줬다. 물론 나도 당원으로서의 색깔도 분명 있겠지만 이렇게 하늘같은 사랑을 받았는데 좀 더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치를 해야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다”고 공언했다. 

2012년 총선 당시 새누리당 지도부는 손수조 후보를 부산 사상구에 박근혜 키즈로 이미지화해서 전략 공천했다. 그러나 문재인 후보에 큰 득표차로 패했다. (사진=연합뉴스) 

만약 장 의원이 2012년 총선에서 불출마를 하지 않고 문 대통령과 붙어봤으면 어땠을까. 결국 공천 배제라는 현실이 있었지만 장 의원이 그 당시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최 전 부대변인은 장 의원에게 “19대 때 불출마를 했는데 사실상 밀려난 것인데 만약 그때 나갔다면 그래도 대적할 수 있지 않았을까. 문 대통령 탄생의 약간의 원죄를 갖고 있다는 말들도 있다. 이런 표현이 좀 그렇지만 그걸 문 대통령의 시발점으로 보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고 물었다.

장 의원은 “공천에서 배제되고 등등이 있지만 내가 스스로 불출마를 아무 조건없이 한 것은 그 당시 이명박 정권이 말기였는데 박근혜 비대위가 새로 만들어졌고 아마 이명박 전 대통령 이름을 걸고 총선을 하면 우리가 참패했을 것”이라며 “(초선이었지만 나도 나름 친이계인데)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명박 정부가 잘못한 것에 대해 내가 유일하게 반발한 적이 있다. (2011년 5월) 저축은행 사건 터졌을 때 그때 정무수석(현재 5선의 정진석 통합당 의원) 책임지라고 한 것 외에는 이명박 정부가 잘못 가는 것에 대해 한 마디 해본 적이 없다”고 회고했다. 

이어 “오히려 강하게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얘기했다면 출마를 했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때 나의 반성이 있어서 그래서 한 번 쉬었다”며 “(2016년 총선에서) 무소속 출마를 한 것은 도저히 (공천 배제를) 납득할 수 없었다. 당시 여의도연구소에서 여론조사가 한 번 유출됐다. 결과를 보니 내가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근데 내가 공천을 못 받은 이유가 박근혜 키즈(손수조)를 줘야겠다는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불의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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